어린이집·유치원비 지원 못 받는 외국 국적 아동…인권위는 “줘야”

손덕호 기자 2023. 7. 23.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내국인은 어린이집과 국·공립 유치원 거의 무료
외국인 아동은 혜택 제외…인권위 “아동 빈곤 이어진다”
교육청·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기도

정부는 아동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면 보육료(어린이집)와 유아학비(유치원)를 지원해준다. 덕분에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국·공립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는 거의 비용 부담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은 한국 국적을 가진 아동에게만 한정된다. 난민이 아닌 이상 외국 국적 아동을 둔 부모는 자녀를 어린이집·유치원에 보내려면 자비로 매월 수십만원을 내야 한다. 일부 지자체와 교육청은 ‘무상 보육’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면서 정부에 외국 국적 아동에게도 보육비·유아학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여대 부속유치원을 찾아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뉴스1

◇인권위 “유아학비 지원 확대해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8일 외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아동의 유치원비를 지원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충북에 거주하는 키르기스스탄 국적 A(4)군과 러시아 국적 B(5)양이 유아학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균등하게 교육받고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한 시민단체가 낸 진정을 조사한 뒤 이같이 결정했다.

A군과 B양의 부모는 외국국적 동포(F4) 비자를 갖고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동포일 뿐 국적은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현행법상 A군과 B양의 부모는 정부의 보육료·유아학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인권위는 교육부의 유아학비 지원 사업에 대해 “보호자 소득수준과 관계 없이 전 계층에 대해 만 3~5세 유아의 학비를 지원하는 것”이라며 “이주아동 또한 생애 출발선에서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 “이주노동자 부모의 상당수는 경제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한국어가 미숙하다”며 “이주 아동이 적절한 보육을 받지 못하면 아동 빈곤으로 이어져 사회 전체에 부담이 전가되고 사회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교육부가 외국 국적 아동에게 유아학비를 지원하지 않는 데 대해 헌법과 아동복지법, 아동권리협약이 담고 있는 아동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중앙행정기관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 유아학비 지원 확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부산 지역특화형 비자 외국인 유학생 채용박람회'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부산일자리정보망 회원가입을 하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는 원도심 인구감소지역(동구·서구·영도구)에 거주 또는 취업하는 조건으로 부산시장 추천을 받아 발급하는 '지역특화형 비자' 허용업종을 포함해 16개 지역 기업과 외국인 유학생 등 300여명이 참가했다. /뉴스1

◇어린이집·유치원 비용 지원 ‘내국인만’ 못박아

정부가 외국 국적 아동에게 보육료와 유아학비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현행 법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영유아보육법’에 의해 작성된 ‘2023년 보육사업’에서 “대한민국 국적과 주민등록번호를 유용하게 보유하고 있는 0~5세 영유아는 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 또한 유아교육법에 따라 수립한 ‘유아학비 지원 계획’에서 지원 대상을 ‘국·공·사립 유치원에 다니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만 3~5세 유아’로 규정했다.

그러나 ‘무상보육’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면서 소득에 관계 없이 국·공립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국적에 따라 지원을 달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와 시·도 교육청들은 자체 예산을 편성해 외국 아동 자녀를 지원한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한국 유치원에 다닌 외국 국적 유아 4211명 중 시·도 교육청으로부터 학비를 지원받은 유아는 2628명(62%)다. 서울·인천·광주·세종·강원·전북·경북 등 7곳의 교육청은 유아학비를 내국인과 동일하게 지원하며, 경기는 교육과정비만 지원했다.

서울시는 2020년부터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지만, 내국인처럼 전액 지원하지 않고 절반 정도만 지원하고 있다. 보육료는 국가가 45%를 부담하고 시·구가 나머지 55%를 부담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산이 한정돼 있어 3~5세 유아 보육료를 내국인의 50% 정도만 지원하고, 나머지 50%는 부모가 부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에서는 유치원은 외국 국적 아동에게 학비를 지원하지만 어린이집은 지원을 받지 못해 아이들이 전학을 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도 교육청과 지자체는 정부에 외국 국적 아동으로 지원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교육부에 2021년 5월 “국가가 외국 국적 유아에게 학비를 지원하지 않아 유아 교육 기회 불평등이 발생하고 유아 성장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학비 지원을 건의했다. 외국 국적 아동에게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는 서울시는 매년 보건복지부에 보육료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있다. 복지부는 특별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외국인 아동이 다른 시·도보다 많다. 외국인 아동이 있는 어린이집은 운영이 어려워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2020년부터 지원을 시작했다”며 “서울시만 보육비를 줄 게 아니고, 정부도 지원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건의했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