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왜 '서이초 교사 사망' 보도 주저했을까[이승환의 노캡]

이승환 기자 2023. 7.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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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서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서초구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추모 메시지를 적고 있다. 2023.7.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사쓰마와리'는 사건기자를 의미하는 언론계 은어다. 한자로는 '찰회'(察廻)라고 쓰는데 '경찰서를 순회한다'는 뜻이다. 단어 의미 그대로 여러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사건을 발굴해 단독 보도하는 것이 사건기자의 주요 업무다.

6년여 전 사건팀 소속이었던 A기자는 그런 면에서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사건 단독을 보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조했던 그는 상사의 지시가 없어도 경찰서를 홀로 찾아 단독거리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 '사쓰마와리'는 왜 성범죄 기사 못 썼나

어느 날 저녁, A기자는 경찰서를 돌다가 마침내 사건을 파악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 관계, 이들의 직업을 고려하면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성범죄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기사화하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묻혀 있다. 당시 고참 선배가 보도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A기자의 마음고생을 잘 알던 필자가 더 격앙된 상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이유를 알게 되고선 말문이 막혔다.

"피해자가 '보도해도 된다'고 동의하지 않았고 기사화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기사를 보류했던 선배의 설명이었다. 보도가치를 보장하는 공익성보다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선정성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A기자의 일화는 필자에게 사건보도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였다. 이제와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만 해도 보도로 인해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들에게 발생할 2차 피해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때론 쓰지 않은 것이 저널리즘이 될 수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사쓰마와리' 생활이 이어지면서 성범죄 못지않게 신중히 보도해야 하는 사건도 알게 됐다. 바로 '극단선택'이었다. 극단선택 방법과 장소, 유서 내용 등을 적나라하게 썼다가 유족과 고인을 2차 가해하고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한국기자협회 제정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자살보도권고기준(다섯 가지 원칙)을 제정해 기자들에게 준수를 요청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상당 수 유족도 가족이 극단선택으로 숨진 사실이 한 줄이라도 기사화되길 원치 않는다.

지난 18일 학교에서 극단선택으로 숨진 '서이초 교사' 사건을 후배에게 보고받았을 때였다. 분명 주목도 높고 파급력 있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학생들이나 유족이 받을 2차 피해·2차 가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을 바로 보도해야 하는지 필자는 확신할 수 없었다.

타사 사건팀들도 비슷한 이유로 보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 발생 다음 날 저녁이 돼서야 일부 매체에서 첫 보도가 나왔다. 이후 언론사들이 추종보도하면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다면 '쓰지 않는 것'이 정답일까

무엇을 쓰고, 쓰지 말아야 할지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성범죄와 극단선택 사건은 최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데 또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

보도 후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 제도개선으로 이어지는 순기능이 있는데 독자의 알 권리는 배제한 채 비보도만을 고수하는 것이 맞는지 역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서이초 교사 사망도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 학부모의 갑질 문제와 교권 붕괴 실태까지 공론화되지 않았나.

무엇을 쓰고 쓰지 말아야 할지, 취재·보도 윤리는 현실적으로 어디 선까지 지켜야 하는지는 숙제 같은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 스스로 고답적인 기준에 갇힌 것은 아닌지 거듭 질문도 던져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성한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2차 피해·2차 가해 가능성은 물론 독자에게 미칠 영향을 꼼꼼히 살피며 써 내려간 기사와 전혀 그렇지 않은 기사는 완성도로 보나 공익적으로 보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기자가 고민한 흔적은 문장과 문장 사이마다 서려 있으므로 독자들은 끝끝내 그런 기사를 알아보고 신뢰를 보낸다. 사건 단독을 터트리는 특종 기자는 어느 시절에서나 주목받는다. 하지만 사건 보도의 이면을 고민하는 '사쓰마와리'는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하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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