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폭우로 여름철 농사 망쳤다…서울 절반 면적 농경지 침수

임채두 2023. 7. 23.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박·복숭아·멜론 등 제철 농작물 직격탄, 수확 포기까지
"재난지역 보상금 적고, 애매한 피해는 혜택 없어" 아우성
폭우에 깨진 수박 (익산=연합뉴스) 지난 19일 전북 익산시 망성면의 한 수박 재배시설이 장맛비로 불어난 흙탕물에 침수돼 훼손됐다. 2023.7.19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수박 뿌리가 물을 먹어서…"

6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후 겨우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 전북 익산시 용안면.

이곳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조모(64)씨는 지난 20일에야 늦은 수확을 끝냈다.

하지만 대부분 수박 뿌리가 빗물을 머금어 내다 팔기 어려울 지경인 데다 빗물이 안으로 들어가 한껏 팽창한 수박도 있었다.

수박 잎은 황색, 갈색으로 갈라지더니 점차 흑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비닐하우스 안이 후텁지근해지다 보니 금세 수박 잎마름병이 든 것이다.

예년에는 비닐하우스 1동(약 661㎡)당 수박 약 570개를 수확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400개 정도만 겨우 건졌다.

이마저도 당도가 높지 않아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조씨는 이 정도의 작황을 '애매하다'고 표현했다.

농사를 완전히 망친 수준이어야 농작물재해보험의 혜택도 받는데 조씨는 보험 혜택도, 지자체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농민'이다.

그는 "수확기를 코앞에 두고 수박이 이렇게 되니 참 하늘이 야속할 뿐"이라면서도 "비 피해를 보기는 했는데, 다른 농가처럼 심하지는 않으니 농약대, 대파대 같은 재해복구비를 받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익산뿐만 아니라 이번 집중호우를 힘겹게 지나온 전국 대부분의 농촌이 이런 고충을 겪고 있다.

국내 수박·멜론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최대 산지, 충남은 집중호우로 농작물 피해가 유독 컸다.

특히 225㏊ 규모의 시설원예 단지가 있는 청양 청남면은 멜론과 수박 수확을 앞두고 직격탄을 맞아 망연자실한 분위기였다.

전수병 청소1리 이장은 "멜론 비닐하우스 다섯동(1천200평), 콩밭 6천평, 벼를 심어놓은 논 8천평이 모두 물에 잠겨서 아예 못 쓰게 됐다"면서도 "이 정도 피해는 양반이다. 이보다 더 심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수해 입은 비닐하우스 둘러보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 폭우로 제철을 맞은 부여 멜론도 못쓰게 됐다.

멜론 생산지인 부여에서는 부여읍과 규암면을 중심으로 110㏊의 농경지에서 연간 5천t을 생산하는데, 이번에 수확을 앞둔 멜론 65%(110㏊) 정도가 침수 피해를 봤다.

피해를 본 멜론의 절반가량은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 농민 정모(65)씨는 "9천900㎡ 규모의 시설하우스에서 멜론을 재배했는데, 이번에 5천㎡ 정도에서 침수 피해를 봤다"며 "정부가 부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보상을 한다는데, 금액이 너무 적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강원에서도 배추가 짓무르고 복숭아가 떨어지는 등 농가 피해가 잇따랐다.

강원 지역 각 시·군이 잠정 집계한 수해 면적은 약 13㏊이며 영월과 원주의 피해가 가장 컸다.

특히 충주댐이 수문을 활짝 열면서 원주 부론면 농경지 5㏊가 물에 잠기는 등 비 피해가 집중됐다.

원주 부론면에서 5천㎡ 규모로 복숭아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하천이 범람하면서 과수원에 어른 키만큼 물이 차올라 복숭아가 상품성을 모두 잃어버렸다"며 "밭이 펄 투성이라 약도 못 치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성일경(63)씨도 "농사를 35년 지었지만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면서 "2천400평짜리 밭이 죄다 잠겨 나무가 썩고 벌레들이 복숭아를 다 파먹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경북의 12개 시·군에서도 3천30.9㏊의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작물별로 보면 벼가 1천732.8㏊, 채소·밭작물 734.0㏊, 과수 438.6㏊ 등이었다.

또 농경지 395.6㏊가 유실되거나 매몰됐고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 18ha에서 피해가 났다.

폭우로 과수원, 논밭 등이 유실되거나 매몰돼 상당수 농가는 썩은 사과나 자두 등을 정리하면서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한숨만 짓고 있다.

육군 31사단, 수해복구 지원 (무안=연합뉴스) 지난 20일 전남 무안군 해제면 민가에서 육군 제31보병사단 장병들이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2023.7.20 [육군 제31보병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농가의 피해 호소가 잇따르면서 지자체가 복구, 보상 계획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의 각 시·군은 오는 24일까지 피해 신고를 접수해 내달 7일까지 정밀 조사를 실시한 후 재해복구비와 재해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낙과는 물론 가축 피해까지 겹친 경남도는 각 시·군과 협력해 시설물 점검을 강화하고 비 예보가 있는 주말에도 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다행히 별다른 피해가 보고되지 않은 인천은 추후 있을 폭우에 대비해 긴급 대응 체계를 꾸리고 비 피해가 발생하면 곧바로 조치할 방침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의 농작물 3만4천353㏊가 물에 잠기고 229㏊는 낙과 피해를 입었다.

이는 서울 넓이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닭과 오리 등 폐사한 가축은 82만5천마리로 집계됐다.

(김소연 강수환 이은파 최해민 정종호 양지웅 최은지 이승형 김형우 임채두 기자)

doo@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