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퇴거" 시민 소원 좌절시킨 박병화…재판부, 판단 근거는
(수원·화성=뉴스1) 최대호 이윤희 기자 = 임차인이 연쇄성범죄자인줄 모르고 부동산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집주인이 '성범죄자 퇴거'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로 지난 2002년부터 6년간 홀로 사는 여성을 상대로 10여차례 성범죄를 저지른 죗값으로 15년을 복역한 뒤 화성시 봉담읍에 거주지를 마련한 박병화(40)에 관한 소송 결과다.
법원은 혹여나 있을 재범에 대한 걱정 등 주민 정서보다, 박병화 거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무엇인지를 우선 고려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은 지난 20일 집주인 A씨가 박병화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인도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이 검토한 쟁점은 두 가지였다. 박병화가 집주인을 기망해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는지 여부와 박병화 입주 이후 집주인이 계약해지를 주장할만한 손해 등 사정 변경이 있었는지 여부다.
소송에서 A씨는 박병화가 임대차계약을 하면서 자신의 성범죄전력을 감추기 위해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시점에 제3자의 여성(박병화 친모)을 내세워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계약 당시 박병화 친모가 '먼 조카뻘'이 살 것이라고 말하면서 박병화의 신분증을 제시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박병화가 A씨를 기망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그 증거도 없다며 A씨의 '기망'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사정 변경 관련해서 박병화가 입주한 이후 건물 주변에 경찰이 배치됐고, 입주자들은 박병화를 퇴거시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고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앞으로 임차인을 구하기도 어려워져 재산권 행사에 있어 큰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개연성이 명백하다고도 강조했다.
법원은 이러한 A씨의 사정변경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을 심리한 판사는 "A씨 건물 다른 방 계약자 1명만이 박병화 입주 이후 계약해지를 하고 퇴거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임차인이 계약을 체결했고, 월세 감액 규모도 3만원에 불과하다"며 "A씨가 박병화로 인해 손실을 입고 있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A씨가 제출한 증거들이나, 주장하는 사정들만으로는 사정변경으로 인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이 초래됐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건은 출소 성범죄자의 거주지 제한과 관련한 첫 법적 판단이어서 관심도가 높았다.
결과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아닌 이미 유발된 피해가 얼마인지를 우선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막연한 우려만으론 출소 성범죄자들의 주거지를 제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병화에 앞서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안산 거주를 막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이른바 미국에서 성범죄자들이 출소 후 공원이나 보육시설과 가까운 곳에 살지 못하게 하는 일명 '제시카법'이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 1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 방침을 밝혔지만, 기본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아직 별다른 상황 변화는 없는 상태다.
A씨 측 법률대리인 오도환 변호사는 이번 판결 직후 "(성범죄자들이) 출소 이후 머무르는 곳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은 상당하다. 그런데 그것을 해소할만한 공법적 제도가 미흡하다"며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니 국민이 개인적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각됐지만) 저희가 제기하는 법률적인 문제의식,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판결문을 검토한 뒤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항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박병화는 자신의 모든 범죄를 수원에서 저질렀고, 일부 가족이 수원에 사는 점에서 출소 후 그의 예상 거주지는 수원이 유력했다. 하지만 출소 당일인 지난해 10월31일, 박병화는 이미 화성시 봉담읍 한 대학가 원룸에 입주한 사실이 확인됐다.
화성시는 이에 지난해 12월1월부터 박병화 입주 건물 및 주변 순찰을 위해 안전지킴이 10명을 투입 중이다. 시는 안전지킴 운용을 위해 월 2850여만원, 현재까지 10개월 간 2억 8570여만원을 사용했다.
경찰도 박병화 주거지 인근 치안 확보를 위한 순찰 활동을 하고 있는데, 모두 8명이 교대근무를 해왔고, 지난 7일부터는 근무 인원을 6명으로 줄였다.
sun07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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