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짓돈 된 업무추진비…63%가 밥값 [강원 기초의회 업무추진비]①

이청초 2023. 7.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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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민선8기 지방의회 출범 1년을 맞아 강원도 내 18개 시군의회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5,000여 건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장소·시간이 누락되거나 사용 목적이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사용 내역의 63%는 밥값이었는데, 여기도 곳곳에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주민의 선택을 받은 시·군의회가 출범한 지 1년이 됐습니다. 특히, 새로 구성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누구보다 권한이 대폭 강화됐습니다. 그만큼 주민들을 대신해 책임감 있게 열심히 뛰고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의원들의 활동은 조례 입안 횟수·정례회나 임시회 등에서의 질의 횟수·다양한 지역 행사 참여 등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방의회에서 쓰는 업무추진비도 이와 같은 의정활동 기록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활동을 했는지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지적되는 업무추진비와 관련한 방만한 집행, 이번엔 다를지 KBS는 차례로 '업무추진비'라는 렌즈를 통해 강원특별자치도 시·군의회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짚어봤습니다.

■ 지방의회 업무추진비란?

의원들은 의정활동비, 월정수당을 받습니다. 월급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 내 18개 기초의원 연평균이 4,100만 원 정도입니다.

이밖에도 업무추진비라는 걸 더 쓸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업무추진비 집행 규칙에 근거합니다.

※ 지방자치단체 업무추진비 집행에 관한 규칙 2조 (정의) 1항 나.
지방의회 의장ㆍ부의장ㆍ상임위원장의 직무수행에 드는 비용과 지방의회의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

종류는 2가지입니다. 의장과 부의장·상임위원장이 쓰는 '의회운영 업무추진비'와 의회 전체가 함께 쓰는 '의정운영 공통경비' 등입니다.


강원도내 18개 시·군의회의 올해 업무추진비 예산은 22억 원에 이릅니다. 기초의원 전체가 174명이니까, 단순 계산하면 의원 1명당 1년에 1,200만 원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쓰는 셈입니다. 의장단 월 평균은 200만 원 선이지만, 더 정확하게는 의장은 월 300만 원 안팎, 부의장은 월 150~200만 원 안팎을 씁니다. 업무나 행사 등이 많은 달에는 의장의 경우 500만 원까지 쓰기도 한다고 합니다.

돈이 있다고 아무데서나 원하는 시간에, 필요할 때마다 무조건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 업무 집행에 관한 규칙에 업무추진비 집행이 가능한 직무 활동 범위를 정해뒀습니다.

모두 9가지입니다. 적십자 특별회비·연탄 기부·사회복지시설 위문품 지급 등과 같은 불우이웃 격려가 대표적입니다. 언론관계자나 다른 기관에게 제공하는 의례적인 수준의 특산품, 현장 근무자(군부대·경찰서·소방서 등)에 대한 지원, 소속 상근 직원(의회 사무기구·소속 행정기관 직원)이나 퇴직예정공무원에게 지급하는 격려물품, 업무 추진을 위한 격려 식사 등입니다.

가장 큰 원칙은 직무수행과 의정활동에 써야 한단 겁니다.


행정안전부 훈령, '지방자치단체 회계관리에 관한 훈령'에는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법정공휴일 및 토·일요일
(2)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
(3) 비정상시간대 (23시~다음 날 6시)
(4) 사용자의 자택근처
(5) 주류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업종
-단, 직무 관련성이 입증된 객관적인 증빙서류를 제출한 경우에는 사용할 수 있다.

■ 업무추진비 공개 방식 제각각…'한 눈에 보기도, 분석도 힘들어'

지방의회의 업무추진비는 각 의회 홈페이지에 대체로 공개돼있습니다. 이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지방자치단체 회계관리에 관한 훈령, 각 지방의회별 업무추진비 관련 조례와 규칙 등에 근거합니다.

공개된 자료인 만큼 업무추진비 내역을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일단, 각 의회마다 올라온 업무추진비 파일 형식이 제각각입니다. 엑셀·PDF·한글(HWP) 파일 등 다양했습니다. 또, 사용 시간과 일시·목적 등을 기입하는 순서도, 항목도 다 달랐습니다. 이는 곧바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얘깁니다.

강원도내 시·군의회만 해도 이렇습니다. 원주와 춘천·인제·양구·고성·동해·삼척·속초·태백· 평창 등 10개 시·군의회는 엑셀 파일, 강릉과 양양·영월·철원·홍천·화천·횡성 등 7개 의회는 PDF, 정선은 한글파일과 엑셀을 혼용해서 올려뒀습니다.

엑셀 공개가 의무는 아닙니다. 하지만 의회 사무부서에서는 업무추진비 내역 대부분을 엑셀로 정리합니다. 원본이 엑셀 파일인데도 PDF나 한글 파일 등으로 올려놓는 겁니다. 이 때문에 KBS 취재팀은 주말 공휴일·심야시간 사용 여부, 식비와 기념품 구입 내역 등 항목별로 살펴보기 위해 일일이 엑셀로 변환하거나 수기로 입력해야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공개되지 않은 데이터가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철원군의회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7달 동안 업무추진비 내역에 '장소'가 기입되지 않았습니다.인제군의회는 지난해 3분기인 7월~9월 사이 '시간'을 쏙 빼놨습니다. 업무추진비를 쓸 수 없는 조건을 확인하려면 장소와 시간을 알아야하는데, 이걸 빠뜨린 겁니다.

사용목적은 두루뭉술했습니다. 대부분 '의정현안 논의', '업무 협의', '소속 직원 격려' 등이란 말로 적어뒀습니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의정활동을 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추가 취재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채워지지 않은 자료를 받아야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평균 기간이 열흘에서 2주였고, 자료 분석까지 2달 가까이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 "가족식당에서...복날이라...단둘이서"…수상한 사용 수두룩

강릉시의회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강릉에 있는 한 한정식집에서 11번 식사를 했습니다. 밥값은 270만 원 넘게 나왔습니다. 목적은 임시회나 행정사무감사·현안 논의 등이었습니다.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을 이용한 의원이나 직원들은 강릉시의회의 특정 상임위원회로 한정됐습니다. 식사 11번 가운데 10번이 특정 상임위원회나 상임위원장의 이름으로 결제됐습니다. 이용횟수가 많은 식당들을 보면, 의장이나 부의장·특정 상임위원회가 골고루 가는데, 유독 이 식당만 특정 상임위원회에서 자주 가고 있던 겁니다.

KBS 취재 결과, 이 식당은 해당 상임위원장의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KBS취재팀은 강릉시의회에 직접 찾아가 이 식당을 자주 이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해당 상임위원장은 "식당의 선택은 직원들의 몫"이라며 "자신이 관여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또, 직원들이 설령 해당 식당을 선택했더라도, 의원 입장에서 거절할 수는 있지 않냐는 되물음에는 "안 가는 것도 우습지 않냐","최대한 안 가려고 하다보니, 식당히 오히려 나로 인해 손해를 보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강릉의 한 식당. 강릉시의회 특정 상임위원회와 위원장 이름으로 9달동안 10번 식사를 하며 270만 원을 결제했다.


삼척시의회에서 지난해 7월은 정례회나 임시회 등 공식 회기가 없는 달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 공개한 공식 일정은 개원식과 정례 의원 간담회, 단 2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달에 소속 의원 8명과직원 대부분이 함께하는 '특별한 회식'이 이어졌습니다.

30명이 참석한 한 '개원 오찬', 20명이 참석한 '현안 간담 오찬' 등을 제외하고도 '직원격려' 등을 이유로 한 식사가 4번이나 더 있었습니다. 업무추진비로 밥값 200만 원을 썼습니다. 밥 한 번 먹는데, 의원들과 의회 사무과 직원까지 20~30명이 대부분 참석했습니다. 저녁을 함께 먹고, 이튿날 점심까지 연이어 먹는 날도 있었습니다.

국정감사나 지방의회 행정감사·시책추진 등의 현안업무가 있을 때, 직원 격려를 위해 의회 업무추진비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오찬과 만찬의 이유는 "복날이어서", " 인사발령이 있어서" 등이었습니다. 현안 업무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요? 이에 대해 삼척시의회는 "의원과 직원들이 다같이 식사를 하면서 안건 논의 등을 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춘천시의회는 유독 단둘이 의정활동한 경우가 잦았습니다. 이런 결제가 지난해 7월부터 9달 동안 25건 넘게 있었는데, 공개 자료에는 하나같이 '의정현안 논의'에 썼다고만 돼 있습니다. 같은 기간 다른 의회의 2명 식사 횟수는 원주시의회 5회·태백시의회 2회·화천군의회 2회가 전부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진호 춘천시의회 의장은 "다른 의원들이 쓴 것까지 알 수 없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의정을 논의하다가 점심 때가 돼서 밥을 먹으러 간 것으로 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업무추진비로 '해당 지방의회가 개최한 집회(정례회·임시회를 포함한다)에 참석한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식사 제공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 각종 집회는 의정활동과 구체적인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또 단순 의원간 모임·격려를 목적으로 집행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지방의회 업무추진비 사용 목적에 ‘의정 현안 논의’라고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다.


■ 업무추진비의 63% 가 '식사비'

KBS가 따져보니, 지난해 7월부터 9달 동안 강원특자도 18개 시·군의회가 쓴 업무추진비는 15억 원에 육박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63%가 밥값이었습니다.

시·군별로는 양양군의회가 73%로 식비 비율이 가장 높았고, 속초시의회·강릉시의회·고성군의회도 각각 70%를 넘어섰습니다. 나머지 시·군의회는 대체로 60%대 비율을 차지했고, 양구군의회가 45%로 가장 낮았습니다.

주민들의 대표인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위해 사람을 만나거나 회의를 하고 밥 먹는 일, 당연히 필요하고 이를 위한 지원도 있어야 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사례들처럼 업무추진비 집행 목적이나 과정이 주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서민들은 경기침체와 고물가에 살기가 더욱 팍팍해진 상황이니까요.

이밖에도 일부 의회의 '생색내기용' 지출이나, '특혜 의혹'이 짙은 사용 내역 등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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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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