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자랑 ⑩] 함양에선 기자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다

윤유경 기자 2023. 7. 2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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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지역주간지 '주간함양' 기자들에게 들은 함양 지역주민과 지역언론 이야기…10년, 500회 간 1면에 채워넣은 지역주민 인터뷰 기사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다들 지역언론이 위기라고 말한다. 지방분권시대라고 하지만 지역언론의 역할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지역이 소멸하고 있고 지역언론도 생사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한다. 지역언론은 상시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면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엔 턱없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자생력을 잃지 않으며 새로운 시도에 나선 지역언론이 있다. 지역의 소수자인 청년들의 공론장을 마련하고, 외지인이 '인턴기자'로 지역에서 한달을 살아볼 수 있게끔 창구를 만들기도 한다. 미디어오늘은 '전국언론자랑'을 통해 지역에서 건강한 언론의 역할을 해나가는 지역언론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최상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모두가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면, 외지인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최상의 방법은 지역언론 기자가 되는 것일 수 있다. 청년인구 유입을 위해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지역 한달살기' 프로그램은 청년들에게 지역에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촌캉스'(시골을 뜻하는 '촌'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시골에서 즐기는 휴가를 의미)라는 잘못된 가벼운 표현으로 홍보되는 것처럼 여행 후 떠나버리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 지역 내에서도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하지만 경상남도 함양에서는 지역언론 기자가 되어볼 수 있다. 한달 동안 지역 곳곳을 다니며 지역민들을 만나고, 직접 대화를 하고 촬영을 하며 기사로도 써낸다. 여행 후 돌아가는 것이 아닌, '내가 이곳에 산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자연스럽게 떠올려볼 수 있는 함양의 한달살기 프로그램 안에는 함양 지역주간지 <주간함양>의 역할이 있다. 지난 12일 미디어오늘이 만난 <주간함양> 기자, PD들은 지역언론으로서 '함양'이라는 지역에 대해 알리고 청년들의 네트워크 창구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 생각 안들게끔 해줘” 청년들이 주간함양과의 한달살기 선택한 이유

함양의 청년 한달살기 <고마워, 할매>는 '시골할매'와 '도시손녀'의 연결과 공존이 목표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선정돼 함양의 청년 농업법인 '숲속언니들'이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다. 시골에서 많은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노년 여성층과, 인구가 가장 적은 청년층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참가자들은 시장 가판대에서 물건을 팔아보기도 하고, 밤에는 공원 달빛체조에 함께하며 지역민이 되어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함양에서 '나'의 삶을 자연스럽게 떠올려볼 수 있는 이유다. 작년에 참여했던 참가자는 함양에 정착해 <고마워, 할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고마워, 할매' 포스터. 사진=숲속언니들 제공.

<주간함양>은 청년들이 한달살기를 '함양'에서 하게 될 이유를 만들어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할머니의 집을 찾아 음식을 배워 인터뷰하고, 레시피를 기록해 기사로도 완성해보는 '주간함양 인턴기자' 3주 코스다. 프로그램 교육 3일 중 하루는 인턴기자들에게 지역언론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데 할애한다. 지역언론은 '그들이 들어본 적 없는' 세계지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 알려주자는 취지다. 기자, PD들은 인터뷰와 촬영에도 동행한다.

▲ '고마워, 할매' 활동 사진. 사진=숲속언니들 제공.
▲ '고마워, 할매' 활동 사진. 사진=숲속언니들 제공.

청년들도 지역사회에 더 깊이 밀착할 수 있어 <주간함양>과 함께하는 한달살기를 선택했다. 인천에서 온 한아름 기자는 “지역에 와도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적은데, 인턴기자 체험에는 그 기회가 있어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김소연 기자는 “지금 4일차인데, 사명감을 느낀다. 주간함양 기자분들과 숲속언니들의 애정 어린 이야기를 들으니 열의에 찬다. 함양에서의 프로그램에 흠뻑 젖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 '고마워, 할매' 교육 현장에 놓여진 주간함양 신문. 사진=윤유경 기자.

“'프로그램이 끝나면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안 들게끔 해줬다. 주간함양과 숲속언니들이 인턴기자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보고싶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보통 새로 온 사람들이 지역민의 마음을 두들겨야만 하는 데 쉽지 않다. 이곳에서는 주최해주시는 분들이 나의 마음을 먼저 두드려줬다.” 서울에서 온 오예림 기자의 말이다.

함양은 도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지역이 아니지만, 지역언론은 함양을 알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주간함양>이 발품 팔아 발굴해 인터뷰한 지역민들을 타 언론사에서 취재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 지역민을 궁금해하는 타 언론사의 연락을 받는 건 <주간함양> 기자들에겐 비일비재한 일이다. 함양에서 '도하 비건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다솜씨는 <주간함양>과의 인터뷰 이후 KBS <한국인의 밥상>과 <생생투데이 사람과세상> 등에 출연했다.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지역언론의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다. EBS <고향민국>은 함양 청년들의 모습을 담았는데, 여기엔 최학수 주간함양 PD가 참여한 청년모임이 소개되기도 했다.

▲함양에서

<주간함양>은 올해 창간 21주년을 맞았다. 함양에 건강한 지역신문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최경인 대표가 직접 제작한 소식지를 시작으로 만들어졌다. 김경민 편집국장은 30대 초반인 4년 차 취재기자다. 적은 연차에 편집국장이 된 건 '젊은 사람들이 신문사를 이끌자'는 대표의 뜻이 컸다. 하회영 미디어국장은 “무조건 젊은 기자를 뽑았다. 경력기자들이 지역언론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신문사는 어느정도 토대가 마련돼있고 젊은 기자들과 함께 하면서 같이 성장하고 싶었다. 주간함양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청년기자들”이라고 말했다. 현재 취재기자, PD는 총 3명으로 모두 20대~30대 초반이다. 그들은 모두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주간함양>의 분위기를 강조했다.

군민주로 출발한 <주간함양>의 수익은 군민들에게 받는 구독료와 광고료, '지역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로 채운다. 함양 양민학살사건 희생자 유족을 1년 동안 인터뷰해 구술집으로도 발간하고 신문 지면에도 남겼다. 함양군 행정구역 중 한 곳인 마천면의 '지리산마찬면사' 발간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올해 4월부터는 청년기자들의 제안으로 카카오톡 채널을 통한 뉴스브리핑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톡 채널의 구독자들이 후원을 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고, 공연, 동창회 등 지역민들의 광고도 싣는다.

▲ 주간함양 홈페이지 갈무리.

10년, 500회 간 1면에 채워넣은 지역주민 인터뷰 기사

<주간함양> 기자, PD들의 주 관심사는 '지역주민들'이다. 함양은 인구가 3만7294명(지난 6월 기준)인 지역소멸 위험 지역인 공간이다보니, 어느 지역보다도 '사람'이 중요하다. 김경민 국장은 “지역소멸의 위험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라면, 함양에 사는 사람이 있다고 기록하는 게 지역신문 기자로서의 직업 윤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리산인>이라는 코너로 10년 간 매주 1면에 싣고 있는 주민들의 인터뷰는 <주간함양>의 자랑거리다. 1면 머리기사로 인물 기사를 싣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주간함양>은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느끼게 하기 위해' 약 500회 동안 빼놓지 않고 1면 배치를 결정했다. <주간함양>은 오마이뉴스와 제휴를 맺어 기사를 내보내고있는데, 지난해에는 <지리산인> 코너로 오마이뉴스 우수제휴사에 선정됐다. 500회동안 만난 지역민들의 이야기는 <주간함양>이 쌓은 귀중한 목소리다.

▲ 지난 17일 발간된 주간함양 1면. '지리산인' 이경일씨 인터뷰 기사가 담겼다.

햇빛이 뜨거웠던 지난 12일 오후 4시경 기자들은 <주간함양> 건물 뒤편에 있는 시장 골목에서 주차관리를 하고있는 이경일씨(69)를 만났다. “저 친절한 주차관리원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지역민들의 전화를 여러 통 받아 섭외했다. 기자들은 주차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 이경일씨 옆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이야기 듣고를 반복하며 인터뷰했다. 함양 지역에서의 삶, 주차요원으로 일하면서의 마음가짐 등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경일씨는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먼저 인사를 해주셔서 보람을 느낀다”며 <주간함양>과의 인터뷰 영상에 출연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군민들에 대한 친절함과 소통으로 이경일씨에게 먼저 음료수와 과자를 건네는 손님도 늘었다. 이씨도 연신 고맙다며 기자들의 손에 음료수를 쥐어줬다.

▲ 12일 이경일씨를 인터뷰하는 주간함양 김경민 편집국장, 곽영군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지난해에는 함양 언론사 최초로 지방선거 기간 군수 토론회를 주최하고 선거 투표방송을 생중계했다. 함양 주민들만을 위한 방송이 없었기 때문에 주간함양이 직접 나섰다. 김 국장은 “지역민들이 실제로 군수 후보들의 주장을 피부에 와닿게 알 수있게끔 하고 싶었다. 창원 등의 큰 방송사가 아닌, 함양 안에서 토론회가 이뤄졌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투표방송은 거의 광역단체장 중심으로 방송사에서 중계방송이 되는데, 시·군 정보는 나와있는 데이터 말고는 볼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곽영군 기자는 한 달에 한 번 기자가 직접 지역민의 직업을 체험해보는 <체험함양삶의현장> 취재를 도맡고 있다. '어떤 노동이든 다 가치있다'는 점을 함양의 노동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전달하고, 청년들에게 함양에 이렇게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바람도 담겼다. 곽 기자는 “지역주민들에 대한 더 많은 공감이 필요하다. 지역언론은 더 밀착해 세세하게 다뤄야 한다. 좋은 기사들은 한 걸음 더 취재한 기사라면, 세 걸음 더 나아가려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양파 수확, 아파트 청소 등의 직업을 체험하며 주민들과 소통했다.

지난 13일에는 지리산에 둘러싸인 뇌산마을의 수도를 검침하는 김은하 수도검침원의 직업을 체험했다. “검침 왔습니다” 집을 들어가며 외치는 곽 기자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2017년부터 일을 시작한 김은하 검침원은 뇌산마을에서만 100개, 총 20개 가량의 마을의 수도를 검침한다. 아직 원격이 적용되지 않고 땅에 계량기가 있어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점검해야 한다. 수도 뚜껑을 열면 온갖 벌레와 쥐, 뱀이 튀어나와 길쭉한 도구와 장갑도 필수다. 모든 검침원은 개에게 한 번씩 물리기도 했다.

뇌산마을에는 빈집이 다수였다. 7년째 매달 뇌산마을을 찾는 김은하 검침원은 이제 마을 사람들을 다 알고있다. 저번 달 온 집의 어르신이 더 이상 안 계시면, '돌아가셨구나' 하고 생각한다. 가끔 마주치는 어르신에게 김씨의 방문은 잘 지내고 계신지 안부를 묻는 인사이기도 하다. 뇌산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수도를 검침하는 김씨와 기자들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매번 빈집을 확인하고, 고령인구를 살피는 것은 공무원들도 다 하지 못하는, 지역에 있어서 소중한 일이다. 기자들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돌며 고령화의 현실,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배우고 담는다.

▲ 13일 수도검침원 직업을 체험하는 곽영군 기자와 촬영하는 김경민 편집국장. 사진=윤유경 기자.

청년이 소수자인 지역, 네트워킹 마련으로 '결핍'을 채우다

'끊임없이 내 존재를 설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젊은 사람 없는 지역의 청년들은 소수자다. 함양 역시 노인인구가 70~80%를 차지하고 청년층은 가장 적다. “시골에서 청년은 결국 주류사회에서 떨어져있다. 함양에 연고가 없는 귀촌 청년뿐만 아니라, 나같은 토박이 청년도 소수자다. '귀하고, 보이면 좋고' 그렇지만, 가끔은 지역사회 주된 세대들의 입장에서 '잘 모르는' 존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기성세대들은 지역사회를 속속들이 알고있지만, 청년들은 활동의 무대가 없다보니 어머니의 친구의 아들처럼 부모 세대를 거쳐서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결핍을 느껴왔다.” (함양이 고향인 최학수 PD)

결핍은 최PD가 직접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게 했다. 지난해 8월 최PD가 만든 청년모임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에서는 함양에 사는 60여 명의 청년이 모여 독서, 영화모임 등을 함께한다. “함양에 있는 꽃집이 경남 청년센터 사업에 선정돼 금액을 지원받아 원데이 클래스를 연 적이 있었다. 100명에게 무료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3회차 취재를 갔을 때 이미 100명 중 일곱 명 자리밖에 안남았었다. '내가 못보고있는 함양의 청년들이 많구나. 내가 느끼는 결핍을 다른 청년들도 느끼고 있구나'라는 걸 알았다. 그때 모임을 시작했다. 내가 목마르니까 만든 건데, 고맙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 EBS '고향민국'에 소개된'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 최학수 PD..

최PD는 '청년에게도 공간이 필요하다', '함양에서 이 청년은' 등 여려차례 지역의 청년에 주목하는 기획기사를 썼다. 기사를 쓰고, 청년들을 연결 짓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지난 6월에는 함양 청년 포럼을 열었다. 평소 청년들끼리 이야기하던 문제들을 공론화시킬 수 있는 자리였다. 지역 청년들은 일자리와 주거공간 부족 등 실질적으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문제들을 공유했다.

하회영 국장은 “다른 언론사에서는 '함양'이라는 단어도 찾기 어렵다. 포털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4만 인구도 안되지만, 그 사람들도 사람이지 않나”라며 “우리도 살고 있다. '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지역언론의 가장 큰 필요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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