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탄생한 이 술, 인간 욕망을 자극했다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7. 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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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It’s there. Everest is the highest mountain in the world and no man reached the summit. It’s existence is a challenge.” (왜냐하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아무도 정상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의 존재가 도전입니다.)

어쩌면 최초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영국인 탐험가 조지 말로리(George Herbert Leigh Mallory·1886~1924)는 1924년 3월18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 하느냐’는 질문에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곤 에베레스트를 올라 75년 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말로리 이후 수십년 간 많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를 올랐지만 등정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에베레스트는 1953년에서야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1919~2008)과 네팔인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1914~1986)에게 정상을 허락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첫 등정 이후 1990년까지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률은 37%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죠.

조지 말로리의 인터뷰를 다룬 1924년 3월18일 뉴욕타임즈. [출처=nytimes.com]
왜 인류는 이토록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 했을까요? 생각해보면 오래 전부터 인류는 높은 곳을 유독 갈망했습니다. 굳이 신화인 바벨탑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여러 대륙에서 건설된 고대 피라미드들이 하늘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우려는 인류의 욕망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문명이 발달하고 고도화할수록 건축술은 발전했습니다. 중세의 여러 성들은 높은 벽을 쌓은 후 그 위에 세워졌습니다.

높은 곳에 대한 갈망은 현대에도 이어집니다. 높은 빌딩, 그중에서도 가장 높고 좋은 경관의 공간은 비싼 편이죠. 높은 건물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곳에서의 운동, 식사, 혹은 생활 그 자체를 SNS에 자랑하는 것은 이미 흔한 일 입니다. 우리에게 높은 곳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과거 현재 가릴 것 없이 확실히 특별합니다.

높은 곳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소개해드릴 와인이 높은 곳과 깊숙이 연관됐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높은 곳을 향한 욕망을 자극하는 와이너리, 엘 에스테코(El esteco)의 이야기 입니다.

엘 에스테코 와이너리. 고원에 위치한 다는 것을 보여주듯, 멀리 높지 않은 곳에 만년설 쌓인 산맥이 보인다. [출처=bodegaelesteco]
천국과 가장 가까운 와이너리
엘 에스테코는 천국과 가장 가까운 와이너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북서부 살타 지역의 해발고도 1660~3110m에 위치한 포도밭 1000에이커(404만6000㎡) 포도를 키우고 양조합니다.

약 500만년 전 아콩키야 산맥(Sierra del Aconquija)과 퀼메스 산(Mt.Quilmes)의 지각변동으로 융기한(솟아오른) 고원 지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와이너리입니다. 한라산(1947m), 백두산(2744m)과 비교하면 얼마나 높은 곳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고원은 큰 일교차를 보입니다. 특히 이런 초(超) 고도의 고원이라면 더욱 극심합니다. 해가 없는 동안은 고도 때문에 극도로 춥고, 해가 뜬 이후에는 오히려 고도 덕분에 햇빛에 더 달궈지는 것인데요. 여기에 연간 214㎜에 불과한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이 더해져 극한의 기후를 보입니다.

포도는 견딜 수 있을만한 최대한의 가혹 조건 일수록 더 응축된 과실을 만들어낸다고 하죠. 극단적인 기후와 융기 지형이라는 특성으로 엘 에스테코가 키워낸 포도는 과실의 집중도, 폴리페놀(Polyphenol),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 높고, 미네랄(광물) 뉘앙스가 강합니다. 전부 와인을 양조하는 데에는 반드시 필요한 캐릭터를 부여하는 요소, 떼루아(Terroir)입니다.

엘 에스테코의 와인메이커이자 양조학자인 알레한드로 페파(Alejandro Pepa)는 “기후가 포도나무의 생장에서 수확, 그 이후 관리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준다”면서도 “이것들은 잘 관리해낼 수 있다면, 노력을 초월하는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천국과 가장 가까운 와이너리라는 별칭답게 엘 에스테코 와이너리의 밤은 별빛이 가득하다. 워낙 높은 고원에 위치하다보니 별빛이 더 도드라진다. [출처=bodegaelesteco]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깨끗하게
지구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와이너리여서 좋은 점은 또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 대부분 와이너리들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에 직면해 있습니다만, 알레한드로는 “엘 에스테코가 위치한 칼차키 밸리(Calchaqui Valley)에서는 심각한 우려를 해야할 정도의 징후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와인의 꾸준한 품질을 보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와이너리가 가장 바빠지는 시기는 수확이 임박한 가을인데요. 포도 수확 시기 일주일 차이로 와인의 원재료인 포도 과실의 품질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이 있더라도 급격한 기후 변화에 직면해 자칫 적절한 수확 시기를 놓치면, 그 포도로 양조한 와인의 품질을 장담할 수 없게되는 것이죠.

또 엘 에스테코는 이러한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기농 인증(Ecocert)과 환경(ISO14001), 안전(ISO45000) 국제표준인증, 공정무역(FLOCERT)과 vegan wines(LIAF control) 공정 거래 인증도 마쳤습니다.

엘 에스테코 와이너리의 시그니처 와인, 알티무스(Altimus). 보르도 블랜드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매년 블랜딩 독특하고 반복할 수 없는 블랜딩 비율을 선보인다. [출처=bodegaelesteco]
강렬한 색, 신선하고 깨끗한 맛과 향
알레한드로에게 ‘어떤 와인을 만들고 싶느냐’며 양조 철학을 물었는데 “우리의 독특한 떼루아를 표현할 수 있는 와인” 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높은 일조량으로 생긴 다량의 폴리페놀을 통해 강렬한 색을 뽑아내고, 고원의 서늘한 대륙성 기후를 통해선 신선하고 깨끗한 맛과 향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는 직관적인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설명입니다.

그가 지난 2000년 엘 에스테코 와이너리에 합류한 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시그니처 와인, 알티무스(Altimus·라틴어로 ‘가장 높은’이라는 뜻)는 이러한 그의 양조 철학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알티무스는 보르도 블랜드 스타일 와인인데요. 보르도는 매년 시기가 미묘하게 다른 가을 장마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균일한 품질을 위해 조생종인 메를로와 만생종인 까베르네소비뇽을 기준으로 다양한 품종을 함께 섞어 양조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와인 업계는 이를 ‘보르도 블랜드 스타일’이라는 대명사로 부릅니다.

그런데 알티무스는 보르도처럼 다양한 품종을 섞지만, 오로지 그 해만의 블랜딩 비율을 만들어서 양조한다고 합니다. 생산년도의 작황과 포도 품종별 품질에 따라 매년 유니크한 알티무스가 만들어진다는 것인데요. 독특하고 반복할 수 없는 알티무스 생산에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겠다’는 알레한드로의 철학이 배여있는 셈입니다.

엘 에스테코 와이너리의 와인메이커인 알레한드로 페파. 그는 2000년 이후 엘 에스테코에서 23년째 와인을 양조하고 있다. [출처=bodegaelesteco]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와이너리와 거기서 생산하는 매년 특별한 블랜딩 비율을 지닌 흥미로운 와인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알티무스가 최고가 되고 싶거나, 최고를 향해 도전하고 계신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와인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 알티무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포도밭에서 생산된다는 스토리와 그 품질에 힘입어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 시그니엘 Stay 81에 납품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最高)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을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특별한 경험을 누리는 셈입니다.

*알레한드로 페파는 지난 6월 방한했습니다. 당시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짬을 내준 알레한드로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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