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한밤중 섈 위 댄스
# 동네 엘리베이터 공사가 한창입니다. 동별로 돌아가면서 공사 시기가 정해졌는데 저희 동은 하필 더위가 한창인 7월에 걸렸습니다. 한달 동안은 반강제로 다리 운동을 하게 생겼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올라가야 할 층수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10층 넘게 올라 다니는 분들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지요.
# 계단으로 오가는 일은 그렇게 일상이 됐습니다.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택배 등등 출퇴근이 아니어도 계단을 사용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집에 들어와 씻고 상쾌하게 있다 보면 외출은 가급적 삼가게 됩니다. 요즘처럼 푹푹 찌고 습한 날이면 나갈지 말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계단을 타다 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샤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어두운 밤, 그보다 더 어두컴컴한 계단을 오르는 일도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계단에 있는 센서등은 엘리베이터 앞 복도 천장에 설치돼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층과 층 사이에 있는 '계단참'에서 '반층'은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특히 4층 센서등은 둔감한 건지 웬만큼 움직여 지나가지 않으면 불이 켜지지 않습니다. 4층에선 일부러 몸을 크게 움직이며 계단을 오릅니다. 센서등을 향해 말하는 거죠. "나 여기 있어요. 어서 불을 켜주세요."
# 며칠 전입니다. 밤 12시가 임박한 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가방에 카메라 장비를 잔뜩 메고 계단을 낑낑 오릅니다. 아니다 다를까. 4층 센서등이 켜지지 않습니다. '그래, 한층만 더 올라가면 다른 불이 켜지겠지.' 어두운 계단을 오릅니다. 계단참에 도착하니 붉게 물든 그림자가 보입니다. 소화전 불빛이 빨간 조명이 됐습니다.
# 다리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보니 재밌는 그림자놀이가 펼쳐집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한쪽 발을 바닥에 꽂고 무릎을 굽혀봤습니다. 제 딴엔 최선을 다해 만든 실루엣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모습 같기도 하고 발레의 한 동작 같기도 합니다. 정체 모를 실루엣을 만들어가며 몇분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듭니다. 찰칵찰칵. 붉은 색으로 물든 아파트 계단, 전 마이클 잭슨이 되기도 하고, 발레리나가 되기도 합니다. 섈 위 댄스! 그렇게 고단함도 날아갑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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