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두 얼굴] 챗GPT 시대, 보이지 않은 '미세노동' 착취 당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두 얼굴(19)]
'혁신' 커튼 뒤에 가려진 열악한 '미세노동' 문제
"인공지능 발전? 미세노동 형태가 대세 될 수 있어"
[미디어오늘 금준경, 박서연 기자]
'최첨단'의 이면에 낡은 방식의 '노동 착취'가 있다. 챗GPT의 놀라운 기능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때인 지난 1월 타임지는 케냐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해 주목 받았다.
케냐 노동자들은 챗GPT 개발 과정에서 아동학대, 폭력, 증오, 편견 등 발언과 단어를 분류하는 업무를 했다. 챗GPT가 문제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학습한 데이터 중 문제가 되는 내용을 걸러내는 '수작업'이 필요했다. 케냐 노동자들은 시간당 1.32~2달러 수준의 저임금을 받고 일했다. 타임지 인터뷰에 응한 케냐 노동자 4명은 혐오표현 관련 단어를 직접 읽고 분류하면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상담원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상담 기회는 없었다. 케냐 노동자 사례가 언론 보도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지게 됐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연일 언론의 'IT' '테크' 뉴스에 빠지지 않는 기업과 서비스들이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 유튜브와 구글 검색엔진에 이어 챗GPT 대항마 바드를 내놓은 구글, 그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이어 트위터 킬러로 불리는 스레드를 출시한 메타,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업체 테슬라와 트위터까지. 이들 업체는 우리의 삶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어준다고 강조하며 연일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
영국의 대안적 싱크탱크 '오토노미'(Autonomy)의 선임연구원 필 존스의 저서 <노동자 없는 노동>은 인공지능 등 기술 개발 과정에서 남반구 국가, 제3세계, 빈민 등의 '수작업'이 요구되는 초단기 임시직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미세노동'(microwork)이라 했다. 이는 관련 업체들이 실제로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메리 그레이와 컴퓨터 과학자인 시다스 수리는 사람들이 자동화됐다고 생각하는 기계 뒤에서 투명인간처럼 일하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유령 노동'(ghost work)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는 오픈AI만의 문제는 아니고, 케냐에서만 벌어진 일도 아니다. 챗GPT 대항마 구글 바드 역시 비슷한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구글이 바드가 내놓은 답변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지 검증하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관련 업무를 호주에 기반을 둔 데이터업체 아펜과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 등에 외주를 맡겼다.
이들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하는 노동자들은 특정 문장이 제시될 때마다 3분 내에 검토를 마쳐야 했다. 제시된 정보가 '독특한지' '새로운 내용인지' '일관적인지' 등 6가지 요소를 살펴보며 검토하고 답변이 선정적이거나 부정확하거나, 공격적인지도 확인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과로와 저임금에 시달렸다.
베네수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MIT테크놀로지리뷰에 따르면 테슬라 등 자율주행자동차 기업들은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에게 평균 시급 90센트를 지불하고 자율주행시스템 '라벨링' 작업을 맡겼다. 차가 이동 중 장애물을 발견했을 때 '사람'인지 '기물'인지 등 어떤 대상인지 하나하나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구글은 인공지능 검색 결과를 평가하는 채점자를 고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주로 필리핀 노동자들이 이 업무를 맡았다. 이 역시 저임금 체계로 구성돼 있다.
미세노동은 대부분 '외주' 구조 하에서 움직인다. 미국에는 미세노동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들이 활성화돼 있다. 외주를 담당하는 업체가 일감을 올리면 노동자들이 지원해 일하는 방식이다. 주로 단기 계약, 혹은 '건당'으로 이뤄지는 초단기 계약으로 이뤄지고 있다.
필 존스는 책을 통해 “노동자들은 의뢰받은 작업을 수행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 고용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취업과 실업 상태를 오가면서 하루 동안 많으면 수십에서 수백개 회사를 위해 일하기도 한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고용 계약 방식이라는 한 미세노동 업체의 주장에 관해 필 존스는 “이 계약의 진짜 수혜자는 표준적인 고용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의뢰인들로, 주로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IT대기업”이라고 비판했다.
미세 노동의 문제는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점이다. 식당에 소속된 배달 기사가 사라지고 배달앱 노동자로 전환된 것처럼 인공지능 개발 과정에서 업무를 맡는 인력들이 기업의 바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철저히 외주화되다 보니 노동자는 자신이 어떤 업체가 무엇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세노동'을 하는지 알기 힘든 경우도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미세노동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노동자에게 새로운 소득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노동 여건이 완벽함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실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급여는 너무 낮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모르는 상태”라며 “이러한 공포에 휩싸인 문화는 우리 모두가 원하는 업무의 질을 높이는 것이나 팀워크를 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미세노동'이 주로 후진국이나 경제가 붕괴된 국가, 난민과 빈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임지에 언급된 케냐 노동자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데이터 처리 회사 사마(SAMA)의 일감을 맡은 노동자들이었다. 테슬라 등의 '라벨링' 업무를 다른 국가가 아닌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이 맡게 된 점은 경제가 붕괴돼 '저임금 계약'이 가능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서구 국가들이 훌륭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하는 이면에 데이터셋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다”며 “주로 난민촌에서 생계가 막막한 분들, 케냐에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는데 옛날 인형에 눈알 붙이는 식의 노동과 다르지 않다. 규제가 완화된 시장에 진출해 일종의 노동 착취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필 존스는 “눈 앞에 펼쳐진 현상은 점점 더 많은 서비스직 일자리가 긱 노동, 미세노동, 크라우드 노동으로 변질되고 자동화가 주로 노동자와 알고리즘의 협업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라며 “미세노동의 경우에는 그 일자리란 것들이 거의 다 실직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많은 노동이 인공지능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딸린 심부름꾼'이 되는 유령 노동, 미세 노동의 형태로 하향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미래 노동은 미세노동과 같은 형태가 대세가 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광석 교수는 “정부는 산업을 강조하고, 사람들은 디지털이 가진 측면에 환상을 갖게 된다”며 “(노동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우리와 무관하다고 느끼며 살아오게 되는데, 불편하더라도 이런 것들을 자꾸 드러냄으로써 균형을 잡아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 연구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동화라고 부르지만 노동 없이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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