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오지 마세요”… ‘보복 여행’ 폭증에 몸살 앓는 지구촌 [세계는 지금]

유태영 2023. 7. 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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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관광’ 부작용에 대책 골몰
코로나 엔데믹에 유명 관광지마다 북적
2023년 1분기 해외여행객, 2022년比 86% 껑충
WSJ “유럽·미국인 수백만명 보복관광”
각종 혼잡·문화재 훼손·현지인 주거 불안…
수용가능 규모 넘어 환경·사회 문제 야기
“해결책 못 찾으면 관광지 수명 끝날 것”
방문객 분산·통제·관광세 부과 강화 등
伊·佛·그리스 등 각국 자구책 마련 나서
주요 유적 훼손·위험 행동 엄격 규제도
‘지속 가능한 관광’ 위한 고민도 본격화
전 세계 관광산업은 2020년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각종 방역 조치로 여객용 비행기가 곳곳에서 멈춰 서고 호텔 등 숙박업소 휴·폐업도 속출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21년 해외여행객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대비 10억명이나 줄었고, 관광수입도 1조달러(약 1273조원) 감소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파르테논 신전을 둘러본 후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침체됐던 해외여행 수요가 올해 완연한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주요 관광지는 과잉 관광 대책을 고심 중이다. 아테네=AP연합뉴스
관광업은 2021년 중반 이후 각국이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전환한 뒤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올해 1분기 해외여행객은 도착 기준 약 2억3404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억2553만여명보다 86% 늘었다. 2019년과 비교하면 80% 수준까지 올라왔다. 2019년 해외여행 소비가 2546억달러(322조원)로 미국인(1322억달러)보다 많았던 중국인 관광수요 회복세가 아직 60% 정도로 더딘 편인데도 그렇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백만 명의 유럽인과 미국인이 2020∼2022년 코로나19 영향으로 상실한 여행 기회를 만회하기 위해 이른바 ‘보복 관광’(Revenge Tourism)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광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은 방문객 증가에 반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용 가능 규모를 뛰어넘는 ‘과잉 관광’(Overtourism)이 야기하는 각종 혼잡·안전·환경오염 문제,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존중 부족과 문화재 훼손, 현지인 주거 불안 및 삶의 질 저하 등 문제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서다.

◆인원 통제·관광세 등 자구책 봇물

관광객 유입 증가세는 남유럽 국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리스는 올해 31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 2019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임대료 상승, 현지인 주거 불안정의 원인이 되는 단기 임대 매물은 지난 5월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62%나 증가했다.

현지 매체 그릭시티타임스 등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수도 아테네에 있는 고대 유적 아크로폴리스 신전에는 2019년보다도 80%가 증가한 인원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관람객들이 폭염 속에서 장시간 줄을 서는 모습에 그리스 정부는 이달 말부터 시간대별 입장권 판매, 단체 관람객 우선 혜택, 전자 발권 시스템 등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아크로폴리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에도 뚜렷한 방문객 관리 계획을 세우지 않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데모스코피카에 따르면 이탈리아 역시 6∼9월 유입 관광객이 2019년 같은 기간보다 3.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암절벽과 형형색색의 주택들이 어우러진 북서부 리구리아주의 5개 해안 마을 친퀘테레는 4월 부활절 연휴 이후 관광객 폭증을 절감했다. 혼잡도가 너무 심해지자 현지 관료들은 가장 유명한 등산로를 일방통행으로 전환했고, 이런 상황은 6월까지 반복됐다고 WSJ는 전했다. 5개 마을 중 하나인 리오마조레의 시장은 영국 주간 옵서버에 “관광객 유입 대처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며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관광지로서의 수명이 곧 끝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친퀘테레와 함께 이탈리아 최고 해안으로 꼽히는 남부 아말피는 절벽을 따라 난 도로의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지난해 버스·택시·현지 주민 차량을 제외한 차량의 홀짝제를 도입했다.

프랑스도 적극적인 방문객 분산·통제 정책을 시행 중이다. 한 해 300만명이 찾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의 바위섬 몽생미셸은 인파가 몰리자 지난달 유일한 교통수단인 버스 운행을 일시 중단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은 올 초부터 하루 방문객 수를 종전보다 1만5000명 줄인 3만명으로 제한 중이다. 마르세유의 칼랑크 국립공원은 해안 절경 및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방문 허가제를 도입, 성수기 방문객을 하루 400명으로 통제하고 있다.

과잉 관광 문제 해결책으로 자주 쓰이는 정책은 관광세이다. 관광객에게 일정 금액을 부과해 관광자원 유지·보수, 교통 등 인프라 확충, 현지인 지원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주로 숙박비나 항공료에 포함되며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어서 관광객이 내고도 눈치 못 채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 빈이나 잘츠부르크에서는 1인당 호텔 숙박비의 3.02%가 관광세로 붙는다.

최근 관광객이 급증하자 새로 도입을 검토 중인 곳도 많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스페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가 대표적이다. 범유럽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고레티 산마르틴 시장은 2025년부터 숙박 유형별로 0.5∼2.5유로(712∼3560원)의 관광세를 거두겠다는 전임자의 계획을 이어받겠다고 밝혔다. 그는 연간 최대 300만유로(43억원)로 예상되는 관광세 수익을 역사 보전, 지역 주민을 위한 주택 확보 등에 쓰겠다며 “관광산업을 즐기면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역시 내년부터 외국인 관광객에게 1인당 10달러(1만2600원)의 관광세를 걷기로 했다. 이미 숙박료에 관광세를 포함 중인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내년부터 당일치기 여행객에게도 3∼10유로(4274∼1만4248원)의 입장료를 받을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역내에 들어오려는 19∼69세 외국인에게 7유로(9973원) 방문 허가 수수료를 부과할 계획이었지만, 새로운 국경관리 시스템(EES) 도입이 늦어지며 덩달아 지연되고 있다.
사진은 도쇼다이지 절 금당의 모습. 뉴시스
◆위험하고 추한 행동 사절

지난 7일 일본 나라에서는 17세 캐나다 소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 도쇼다이지(唐招提寺) 곤도(金堂)의 목재 기둥에 손톱으로 ‘Julian’이라고 새기다가 적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곤도를 훼손한 이 소년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30만엔(275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관광객이 급증하면 이런 ‘진상’들도 늘게 마련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중요 문화유적을 훼손했다가 고액의 벌금을 물고 심지어 징역(최대 5년)까지 살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해 언론에 보도되는데도 유사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5일에는 독일에서 온 17세 소년이 로마 콜로세움 1층 내부 벽을 긁었다가 보안요원에게 체포됐다.

방문지 문화에 대한 무지 혹은 존중 결여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주요 관광지들은 엄격한 규제를 적용 중이다. 이탈리아는 유적 훼손 행위에 최소 1만5000유로(2137만원) 벌금과 최대 5년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다. 로마 스페인계단에는 앉기만 해도 250유로(35만원) 벌금을 낼 수 있다.

위험하거나 현지 주민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을 제재하는 방안도 이탈리아가 앞서 나아간다. 옵서버에 따르면 친퀘테레에서는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등산로를 걸으면 최대 2500유로(350만원) 벌금이다. 하도 많은 사람이 다쳐 산악구조팀에 과부하가 걸리자 도입한 제도이다. 북서부 해안 마을 포르토피노 도심에는 ‘셀카 금지 구역’이 두 곳 지정돼 있다. 이곳에 멈춰 사진을 찍느라 교통 흐름이나 보행을 방해하면 최대 275유로(39만원) 벌금이 부과된다.
◆‘지속 가능한 관광’ 고민 본격화

일부 국가·지역에서는 각종 규제책과 세금이 능사가 아니라고 보고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올리비아 그레구아르 프랑스 관광장관은 지난달 “20% 관광지에 방문객 80%가 몰린다”며 과잉 관광이 위험 수위에 달한 지역으로의 방문을 단념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수기·유명 관광지’ 중심 여행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안 시기와 지역을 제시하는 조직을 창설할 계획이다.

전체 인구(150만명)의 7배인 연간 104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미국 하와이에는 관광청을 해체·재편하는 내용의 법안이 주의회에 계류돼 있다. 과잉 관광으로 인한 쓰레기, 환경 파괴, 교통 혼잡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지인 관광세(1년간 50달러·6만3000원) 부과, 하나우마베이 등 유명 관광지 예약 시스템 등 여러 대응책을 내놨지만, 이제 초점을 ‘관광 진흥·마케팅’이 아닌 ‘지역사회와 관광의 조화’, ‘환경·문화유산 보호’ 등 지속 가능한 관광 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취지이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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