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가 PTSD 왔다"…의외로 공감 터졌다는 이 드라마 [이슈+]
이준호, 임윤아 주연의 JTBC 주말드라마 '킹더랜드'를 본 시청자들이 숨은 공감 포인트를 찾아내고 있다. 평범한 여성이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진다는 신데렐라 스토리와는 상반되게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진 '서비스직의 애환' 때문이다.
2년제 대학을 나온 천사랑(임윤아 분)은 학벌 차별과 텃세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규직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 묵묵히 궂은일을 해나간다. 훌륭한 외국어 실력에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우수 사원' 타이틀을 거머쥐었음에도 4년제 대학을 나온 동료들의 시선은 어딘가 곱지 않다.
승무원 오평화(고원희 분)는 높은 힐을 신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의사소통 오류로 외국인 손님의 겉옷을 쓰레기통에 넣은 후배의 실수까지 본인이 뒤집어쓰고 레이오버(환승을 위해 24시간 이내로 머무는 것) 때 세탁이 가능한 곳을 찾아다녔다. 손이 발이 되도록 부탁해서 결국 해내고야 마는 '캔디형 캐릭터'. 하지만 현실은 기내 판매 실적 꼴찌, 사무장 승진까지 거듭 실패하고 자신을 앞서간 후배에게 조롱당한다.
면세점 명품 매장 팀장인 강다을(김가은)은 리더의 정석으로 꼽힌다. 막내로 시작해 팀장이 되기까지 김밥 심부름 등 그가 겪어온 악습을 뿌리 뽑고자 노력한다. 진상 손님 응대도 능수능란하다. 손님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는 후배를 감싸고 '아닌 건 아니다'고 말할 줄 아는 똑 부러진 성격을 지녔다.
일이 끝나면 늘 고단함을 느끼지만 세 사람은 똘똘 뭉쳐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얻는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서비스직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한 번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반응이 나온다. 서비스직에 종사했던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보다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왔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보인다.
4년째 서비스직에 종사 중인 정모(32)씨는 한경닷컴에 "소위 갑질을 하는 손님들한테도 밝게 웃는 걸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동종 업계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고 전했다.
승무원 오평화가 살이 쪘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듣는 장면도 화제가 됐는데 또 다른 서비스직 종사자 김모(27)씨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외모에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유니폼을 착용해서 체중 관리는 늘 하려는 편이고, 스케줄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약속이 있더라도 컨디션 조절에 특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무례한 손님에 학벌 차별, 텃세, 매출 압박 등 서비스직에서 겪는 디테일한 묘사에 놀랐다는 시청자도 적지 않은데 '킹더랜드' 최롬 작가는 17년간 서비스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본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작가는 "호텔, 면세점,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전현직 동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구성했다. 더 사실적인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어 각 직업군에 대한 취재와 함께 자문을 받아 그 직업군에서 실제 있었던 내용들을 근거로 에피소드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가 3년 주기로 진행하는 근로환경조사결과(2020~2021)에 따르면 전국의 감정노동자 수는 약 1172만명이다.
감정노동 직군에는 고객을 대면하는 마트, 백화점, 승무원, 캐디, 택시, 버스 기사를 비롯해 비대면인 콜센터, 고객센터, 온라인 판매, 그리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민원 안내실, 경찰, 소방관 등 폭넓은 범위가 해당한다.
실제 감정 노동의 원인으로는 소비자와 사업장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소비자의 부당한 민원,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고객은 무조건 왕'이라는 잘못된 인식,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사업장에서 감정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거나 비정규직 등으로 안정적인 보호 체계를 마련하기 어려운 고용구조가 지속되면 이 또한 문제가 된다. 업무수행과 관련해 회사에서 요구하는 응대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전체 평균 12.7%에 그쳤다.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시청자 박모(23)씨는 "단순한 관심에 그치지 않고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장치 및 대응 매뉴얼 보완,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 등으로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공연장 및 컨벤션 분야에서 15년째 종사 중인 김모(34)씨는 "고충을 함께 공감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큰 힘을 얻는다"면서 "항상 고객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모두 나와 같은 사람임을, 근로자임을 이해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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