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거역해?” 반기 든 정부 인사 잇따라 해임한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정부 인사를 잇따라 해임하고 있다.
21일(현지 시각) 올렉산드르 트카첸코 우크라이나 문화정보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 이번 사임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앞서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에게 트카첸코 장관 교체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앞서 트카첸코 장관은 “비록 전쟁 중이지만, 문화와 관련된 부분에 예산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 오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트카첸코 장관은 1350만달러(약 173억원)가 소요되는 우크라이나 대기근 관련 박물관 건립 등 여러 고비용 문화 프로젝트에 대해 지지를 표명해왔다. 우크라이나의 ‘마더랜드’ 동상에 새겨진 소련 시대 문장(紋章) 교체 프로젝트나 전쟁 관련 영화·프로그램 제작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화상 연설을 통해 “지금과 같은 전쟁 시기에는 국가의 최대 관심사와 뒤따르는 자원을 국방에 투입돼야 한다”며 “박물관과 문화센터, 상징물, TV 시리즈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국민들이 예산이 공정하고 올바르게 쓰인다고 느낄 수 있도록 지역 의회에 지출 억제를 호소했다고도 밝히며 “자갈과 도시 장식, 분수는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승리가 최우선”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트카첸코 장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를 묵살하는 취지였다.
이에 트카첸코 장관은 사직을 밝히는 페이스북 글에서 “전쟁은 영토뿐 아니라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라며 “전쟁 기간 문화에 대한 민관 자금 지원은 드론(국방 비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문화는 우리 정체성 및 국경의 방패”라고 했다.
같은 날, 외신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딤 프리스타이코 영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를 해임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해임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남긴 것이 이유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1~12일 나토 정상회의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을 두고 영국과 설전을 벌인 바 있다. 나토가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입과 관련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자 트위터에 “터무니없다”며 격앙된 태도로 공개비판한 것이다.
이에 다음 날 벤 월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우리는 ‘아마존(온라인 쇼핑몰)’이 아니다”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의 지원 탓에 영국에도 무기가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이를 당연시 여기는 태도가 배은망덕하다며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나서 장관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다”고 답했다. ‘엎드려 절 받기’를 원하니 그렇게 해 주겠다는 취지로 풀이됐다. 이 발언에 대해 서방의 분노가 악화되자 “영국에 늘 감사한다”고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프리스타이코 대사는 최근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아침에 일어나 감사를 표하겠다는 발언이) 약간은 비꼰 것 같다”며 “냉소가 건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우리(영국과 우크라이나)가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지적이 화근이 돼 해임으로 이어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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