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딘가에…'디커플링'보다 더 무시무시한 '디리스킹'
✏️ 뉴스쉽 네 줄 요약
·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을 대신할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완화)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고립 전략인 디커플링은,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돼 바이든 정부까지도 이어졌으며, 미중 간 무역전쟁과 첨단 기술 패권 경쟁 등의 주요 원인입니다.
· 디커플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 미국의 동맹들이 먼저 디리스킹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디리스킹을 오히려 더 강력한 패권 전략으로 재정의하길 원하고 있고, 중국은 당연히 반대합니다.
· 엇갈린 해석과 셈법 속에, 우리 정부가 '미국 아니면 중국' 식의 선택을 내린다면 대단히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첫 만남에 무지개는 떴지만...
지난 7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이자 2인자인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를 만났습니다. 둘은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그 순간 리창 총리는 옐런 재무장관이 도착했던 날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며 운을 뗐습니다. 미중 관계에서도 이제 비바람은 지고 무지개가 뜰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방중에 앞서 지난 4월, 옐런 재무장관은 한 강연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De-Coupling)'은 '재앙'이 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미중 관계에서 디커플링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고립시키는 패권 전략을 뜻합니다. 옐런의 이런 경고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기후, 인플레이션 등 문제들에서는 전보다 중국과 더 많이 협력하지만,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반도체 등 특정 분야만큼은 따로 떼어내 관리하겠다는 '디리스킹(위험완화, De-Risking)'을 선언한 것이기도 합니다.
얼핏 들으면, 디리스킹은 미국이 한 수 접고 중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리창 총리는 큰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옐런의 방중을 앞두고 열린 한 포럼에서 "디리스킹을 확대하고 정치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해서는 안 된다"며 맞받아 쳤습니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여전히 매우 모호합니다. 나름의 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옐런의 첫 방중은 화답하듯 나타난 무지개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모호함만 더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디리스킹이라는 새로운 전략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 타임스'도 전문가의 입을 빌려 이유를 옐런의 첫 방중이 빈손으로 끝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뿌리 깊은 두려움
당시, 중국의 최대 위협은 미국이 아닌 국경을 접하고 있는 소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도 미국의 봉쇄 전략에 힘을 보탠 것입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중국과 1979년에는 국교를 정상화하고 1980년부터는 중국에 최혜국 대우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은 최상의 조건에서 미국의 강력한 소비 시장과 자본, 첨단기술에 의존하며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톈안먼 사태를 기점으로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은 자유주의 자체가 자신들의 공산주의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이듬해 CNN을 통해서 생중계됐던 걸프 전쟁은 중국에게는 또 다른 충격이었는데, 미국의 군사력이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화룡점정은 1991년 소련 붕괴였습니다. 전쟁 없이도 봉쇄 전략만으로 초강대국 소련을 무너뜨리는 것을 중국은 바로 옆에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이라는 위협이 사라진 순간, 중국 앞에는 미국이라는 더 큰 위협이 나타났습니다. 이 순간 가장 시급했던 일은 미국을 비롯해 주변 국가들에게 중국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미국이 소련 다음으로 중국을 봉쇄할 경우 머지않아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반격① : 미국의 손발을 묶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미국 의회는 중국에 최혜국 대우 지위를 부여할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혹시라도 의회에서 불승인 결정이 난다면 중국 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가뜩이나 냉전 이후 미국은 최대 위협으로 부상했는데, 그런 미국 의회에 이렇게 큰 약점을 잡혀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중국은 10년에 걸친 로비와 파격적인 양보로 2002년에서야 영구적인 최혜국 대우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중국은 도광양회라는 전략 아래서 그저 힘을 감추고 때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밥줄을 끊으며 위협하려 들더라도 대비할 수 있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걸어놨습니다.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인 셈인데, 유일한 초강대국이 돼버린 미국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경제는 물론, 정치, 안보 등 여러 영역에서 비슷한 전략을 전개했는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를 둘러싼 중국의 노력이 또 다른 예입니다.
중국은 소련 붕괴 이후 APEC을 가만히 놔뒀다가는 미국 주도 하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처럼 변모할 것이라 의심했습니다. 나토가 소련을 봉쇄하며 압박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것처럼 APEC이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될까 봐 우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1993년에 APEC에 가입한 다음 미국이 APEC에 패권주의적 의도를 투영시킬 때마다 어깃장을 놓으며 좌절시켰습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망가뜨려놓는 식입니다.
실제로, 1993년 의장국이었던 미국은 APEC 가입국에게 '새로운 태평양공동체(New Pacific Commnunity)'를 제안했지만 중국은 자신들을 압박할 의도가 있다고 보고 'APEC은 협력체(Cooperation)로 남아야지 공동체(Community)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훼방을 놨습니다. 심지어는 공동체가 되고자 한다면 첫 글자 'C'는 대문자가 아니라 소문자여야 한다며 처절하게 버텨냈습니다. 결국, 중국의 훼방 전략에 APEC는 미국이 구상했던 다자기구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 전략의 효과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의 행보와 비교하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러시아는 스스로를 미국과 힘을 합쳐 냉전을 끝낸 승전국이라 믿었고 가까운 미래에 자신들도 나토에 가입해 지역 안보를 함께 결정할 수 있으리라 꿈꿨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나토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은 과거 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을 포섭하며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깼고 러시아를 다시 고립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중국의 반격② : 수성전
미국과 중국을 세계 질서를 이끄는 두 패권 국가로 인식하며 'G2(Group of Two)'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특히, 미국 외교가의 최고 브레인으로 추앙받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지난 2009년 열린 미·중 수교 30주년 기념 학술행사에서 'G2 회의'를 주창하면서 더욱 부각됐습니다.
중국이 G2로 우뚝 부상한 2012년, 시진핑의 외교 책사로 잘 알려진 왕지스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은 "서쪽으로 행진하자(March West)"며 2012년 10월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에 기고했습니다. 지금 보면,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년 전인 2011년에 미국이 앞으로 권력의 축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옮겨두겠다며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했는데, 왕지스 원장의 제안은 이런 미국의 변화에 대한 대안이었습니다.
'미국이 태평양을 건너 동진하니 중국은 이를 피해 서진하자' 식의 단순한 접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강대국인 미국도 갖지 못한 중국만의 지정학적 이점, 바다를 거치지 않고도 드넓은 대륙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 있다는 강점에 기초한 전략이었습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에서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왕지스의 이런 제안은 이듬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구상 발표로 이어졌습니다. 서쪽으로 눈을 돌린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육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해상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려 한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일대일로가 지나는 국가들에 철도와 항만, 고속도로, 통신, 에너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거대한 인프라 투자를 하고, 그 대가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역적 패권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충지에 미리 성을 쌓고 수성전을 준비하듯, 중국은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한 것입니다. 급기야 시 주석은 이제는 아시아에는 미국도 필요 없고, 미국의 동맹도 필요 없다는 선언까지 나아갔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상우 기자 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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