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에 100일 간 3000송이도 피는 ‘무궁화’[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7.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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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국화로 정식 채택 기록없어…개화기 때 애국가 가사 삽입‘민족 얼’ 상징
아침에 꽃 피웠다가 해 지면 꽃잎 접고 밤이면 떨궈…하룻영화꽃
서양은 ‘샤론의 장미’…하와이 무궁화·덴마크 무궁화 친인척
무궁화 종류는 200종…배달계·단심계·아사달계, 홑꽃·반겹꽃·겹꽃
2021년 7월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옛 국방부) 뒤뜰 무궁화동산에 빗방울이 맺힌 무궁화 겹꽃. 무궁화꽃은 7∼9월 100여일 동안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왜 무궁화(無窮花)일까?

아침에 꽃을 피웠다가 해가 지면 꽃잎을 접고 밤이면 꽃잎을 떨구는 무궁화를 보고 중국인들은 ‘하룻영화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궁화는 ‘쉴새 없이 피고 지고 또 피어나는 꽃’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일 동안 피고지며, 한 그루에서 3000 송이 꽃을 피워내기도 하는 대단한 나무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라는 의미다. 무궁화는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싱징하기도 한다.

무궁화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 ‘히비스쿠스(Hibiscus)’는 이집트의 여신 히비스를 닮은 아름다운 꽃을 뜻한다. ‘syriacus’는 시리아를 뜻하는데, 서양에서는 시리아를 원산지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과 한국을 자생지로 본다.

무궁화는 영어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고 한다. 축복받은 땅 샤론에 피는 장미라며 그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덕수궁 석조전 인근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무궁화꽃. 무궁화 꽃의 빛깔은 흰색·분홍색·연분홍색·보라색·자주색·청색 등 다채롭다. 2020년 7월 초

무궁화는 쌍떡잎 식물로 아욱과 무궁화속의 낙엽관목이다.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2~4m의 아담한 관목으로 정원수나 울타리로도 이용된다. 가지를 많이 친다. 꽃의 빛깔은 흰색·분홍색·연분홍색·보라색·자주색·청색 등이다.

무궁화 종류는 200종 이상으로 꽃잎 색깔에 따라 순백색의 흰 꽃인 ‘배달계’, 꽃의 중심부에 단심(丹心·붉은 색)이 있는 ‘단심계’, 단심이 있고 꽃잎에 무늬가 있는 아사달계가 있다.

꽃잎 형태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 3종류가 있다.

2022년 6월26일 청와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 기념식수로 청와대 뜰에서 맨 먼저 피는 무궁화꽃이다.

무궁화에 대한 또다른 오해 하나. 흔히 우리나라 국화라고 알고 있는데, 정식으로 국화로 채택된 기록은 없다고 한다. 문헌을 보면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 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최치원이 당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 나라라 불렀다.

2020년 9월8일

중국에서도 우리나라를 오래 전부터 ‘무궁화가 피고 지는 군자의 나라’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서기전 3세기경에 편찬된 산해경(山海經)에 ‘군자국(君子國)에 무궁화’가 있다는 말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목근(木槿), 순영(舜英), 순화(舜華), 훈화초(薰華草),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 번리초(藩籬草)라 했다. 최치원이 당에 보낸 국서에는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 칭했다.

가을비 머금은 무궁화꽃. 용산 대통령실 뒤뜰 무궁화동산. 2020년 9월2일

구한말 이전의 고시조나 가사에서는 전혀 무궁화를 읊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이에비해 중국에는 당·송 시대를 비롯해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가 너무도 많아 대조적이다.

무궁화는 구한말 개화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무궁화가 애국가의 후렴구에 들어가게 되면서 사실상 국화로 자리잡게 되고 그후 국권을 상실하면서 그 전후에 무궁화를 읊은 시가는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나 그때의 무궁화 시는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시가 아니라 대부분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과 그 얼을 노래하고 무궁화가 피어난 조국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무궁화에서 위안받고 구국의 용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시에는 민족의 한이 담겨 있고 눈물이 배어 있다.국권상실을 전후로 무궁화가 본격 등장한 것이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무궁화를 읊은 한시는 불과 몇 수뿐이고 시조나 가사는 단 한 수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왕실화로 된 ‘오얏꽃’(자두나무꽃)을 숭상하고 무궁화꽃을 소홀히 했던 것이 그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구한말 개화기에 이르러 무궁화가 국화로 등장하면서부터는 무궁화에 대한 사랑이 애국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돼 시가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무궁화를 소재로 해서 읊은 고시조는 단 한 수도 찾아볼 수 없다. 구한말 한일합병 직전에 당시의 신문 등에 발표된 다음과 같은 시조 몇 수가 전해지고 있다.

고산 윤선도는 시 ‘무궁화’는 무궁화꽃을 지조와 절개의 의미로 표현했다.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빛나지 않는 것은/한 꽃으로 두 해님/보기가 부끄러워서다./날마다 새 해님 향해 숙이는/접시꽃을 말한다면/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 누가 따질 것인가>

무궁화는 어제 핀 꽃을 결코 오늘에는 볼 수 없다. 단 하루의 태양이 떠 있는 동안만 그 해에 의지해 꽃을 피울 뿐, 이튿날의 해를 또 바라보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중국 후주(後周)의 사람으로 사성(四姓)에 열 사람의 임금을 섬겨 20여년간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풍도(馮道)처럼 매일 새로운 해가 떠오르면 그 해에 충성하듯 꽃을 향해 서 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윤선도는 무궁화와 해바라기의 해와 관련된 특성을 잘 대비시켜 읊고 있다.

흰색의 아사달계 무궁화 겹꽃. 2020년 9월8일 용산 대통령실 뒤뜰 무궁화동산

다산 정약용은 무궁화를 시제로 한 긴 시를 두 편 남기고 있고 또 다른 시에서도 서너 곳에 무궁화를 언급한 시구절이 나온다. 따라서 구한말 이전에는 가장 많은 무궁화시를 남겼다.

우리나라에서 무궁화를 상찬한 수필을 처음 쓴 사람은 문일평(文一平)이다. 문일평은 수필 ‘목근화(木槿花)’에서 무궁화를 동방을 대표하는 이상적 명화로 표현했다.

‘목근화’ 수필의 일부다.

<이 꽃이 조개모락(朝開暮落)이라고 하나 그 실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드는 것이니 조개모위(朝開暮萎)라 함이 차라리 가할 것이며 따라서 낙화없는 것이 이 꽃의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거니와, 어쨌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지는 것은 영고무상한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적으로 피는 것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군자의 이상을 보여주는 바다. 그 화기의 장구한 것은 화품의 청아한 것과 아울러 이 꽃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것인 바 조선인의 최고 예찬을 받는 이유도 주로 여기 있다 .>

조선말 개화기를 거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부터 우리 국민은 무궁화가 정식 국화가 아닌데도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 겨레의 꽃으로 여기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무궁화는 국기를 게양하는 깃대의 깃봉으로 무궁화 꽃봉오리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문서나 휘장, 대통령 관저 등 많은 곳에 무궁화꽃이 도안으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훈장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 훈장도 무궁화대훈장이다.

무궁화 꽃말은 ‘사랑에 깊이 빠지다’ . 윤선도의 시에서 보듯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뜻한다.‘미묘한 아름다움’ 꽃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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