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비통한 일 없도록”… 눈물 속 채수근 상병 영결식 엄수

송민섭 2023. 7. 2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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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앞장서던 너는 내가 봤던 그 누구보다 진정한 군인이었다. 부디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

폭우에 따른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소속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이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해병대장(葬)으로 엄수됐다.

 국방부와 해병대는 당시 채 일병을 상병으로 한계급 추서했고, 순직 결정과 함께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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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앞장서던 너는 내가 봤던 그 누구보다 진정한 군인이었다. 부디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

폭우에 따른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소속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이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해병대장(葬)으로 엄수됐다. 채 상병 동기인 진승현 일병은 이날 추도사에서 “중대에 하나밖에 없는 동기를 다시 볼 수 없다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며 이 같이 밝혔다.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영현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해병대 장병,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국회의원,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고인 영현 입장을 시작으로 개식사, 고인에 대한 경례, 고인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헌화 및 분향, 조총 발사 및 묵념, 유족 인사, 영현 이동 순으로 이어졌다. 영결식이 진행되던 도중 채 상병의 가족과 친척들은 오열하거나 눈물을 흘려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조사를 통해 “지켜주지 못한 것에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부모님께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며 “고인이 남겨준 소중한 사명, 국민을 보호하는 데 목숨을 다했던 그의 헌신과 충성스러운 모습은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2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서 엄수된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채 상병의 동기를 안아주며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채 상병 어머니는 진 일병 추도사가 끝난 뒤 안아주며 한참 동안 울었고 끝내 실신해 응급치료를 받았다. 유족 대표는 인사를 통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수근이가 사랑한 해병대가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영결식 이후 채 상병 영현은 함께 근무했던 장병들 도열 속에 운구차로 이송됐다. 동료 해병대원을 비롯해 많은 참석자는 눈을 감거나 눈시울을 붉히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채 상병 영현은 화장을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된다.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해병대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채 상병은 지난 19일 오전 9시쯤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국방부와 해병대는 당시 채 일병을 상병으로 한계급 추서했고, 순직 결정과 함께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보국훈장은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훈장으로 광복장은 보국훈장 중 병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훈격이다.

채 상병은 전북소방본부에서 27년을 몸담은 소방대원의 외아들이다. 전북 남원이 고향으로 전주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1학년을 마친 뒤 올해 3월27일 해병대에 입대했다. 채 상병과 함께 근무한 통신부소대장 김한나 상사는 “채 해병은 부대에 전입한 지 얼마 안된 일병인데도 믿음직스러웠다”며 “업무를 가르쳐줄 때마다 항상 밝은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던 게 기억나는데 그 밝은 웃음을 다시 못 본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울먹였다.

송민섭 선임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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