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4개월에 사람처럼 늙는 ‘킬리피쉬’...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이유

이병철 기자 2023. 7. 2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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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사는 물고기 ‘킬리피쉬’
수명 4개월에 암도 걸려 노화 연구에 최적
전 세계 과학계에서 연구 논문 급격히 증가
한국은 제대로 된 연구 생태계도 아직 없어
약 4개월의 수명을 가진 물고기 '킬리피쉬'가 최근 노화 연구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킬리피쉬를 이용해 노화를 연구한 논문이 전 세계에서 크게 늘고 있으나 아직 한국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막스플랑크연구소

최근 십여년 사이 노화 연구의 모델 동물로 킬리피쉬가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킬리피쉬는 인간과 같은 척추동물 중 수명이 짧은 편에 속한다. 암 같은 질병에도 걸려 노화 연구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장점 덕분에 전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이 킬리피쉬를 이용한 노화 연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관심 부족으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1일 과학계에 따르면 킬리피쉬를 활용한 노화 연구 논문 규모가 2021년 기준 연간 50편을 넘어섰다. 생쥐, 초파리, 제브라피쉬 같은 이미 널리 사용되는 실험동물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2000년대 들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성장 속도다. 전 세계 50여개국이 본격적으로 킬리피쉬 연구에 나선 만큼 앞으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에서는 단 한 곳의 연구 그룹만이 연구를 하는 상황이다.

킬리피쉬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와 짐바브웨 일대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다. 이 지역은 1년에 수개월 이상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지만 이따금 폭우가 내려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웅덩이에 사는 킬리피쉬는 웅덩이가 마르기 전 알을 낳기 위해 빠르게 성장하는 생존 전략으로 진화했다. 그만큼 늙는 속도도 빠르다. 킬리피쉬의 수명은 4~6개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킬리피쉬는 짧은 수명으로 노화를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노화 연구를 위해서는 실험 동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관찰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물학 연구에 주로 쓰이는 생쥐의 수명은 약 2년으로 킬리피쉬의 최대 6배에 달한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생쥐보다 수명이 짧은 효모, 초파리, 제브라피쉬 같은 동물을 노화 연구에 사용할 수 있지만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특징이 사람과 다르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킬리피쉬는 노화가 진행되면서 운동 기능 저하, 시력 약화, 학습능력 감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암에 걸리기도 한다. 단순히 노화뿐 아니라 노화와 관련된 생리현상과 질병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킬리피쉬를 연구하는 김유미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원은 “인공지능(AI)의 도입으로 신규 약물을 찾는 속도는 빨라진 만큼 신약 개발에서 동물실험을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며 “킬리피쉬 연구가 노화와 신약 연구에서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킬리피쉬를 주목하는 과학자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생물학 분야 데이터베이스(DB)를 제공하는 NCBI에 따르면 킬리피쉬를 주제로 삼은 논문은 1980년대 연간 10편 수준에서 2015년 100편으로 늘어 현재까지 꾸준히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노화와 관련한 논문만 추렸을 때도 2000년대 초반 10편 수준이었으나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연간 10편을 넘어섰다. 2021년에는 50편의 노화 연구 논문이 킬리피쉬 연구로 발표됐다. 전체 킬리피쉬 연구의 절반이 2021년 한 해에 발표됐다.

킬리피쉬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논문 숫자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킬리피쉬를 연구하는 국가와 연구그룹도 크게 늘고 있다. 킬리피쉬를 연구는 2013년 11개국 20개 연구진에 머물렀으나 2021년 31개국 52개 연구그룹으로 늘었다. 해외에서는 연구 기관을 중심으로 킬리피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라이프니츠연구소, 미국 스탠퍼드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적극적으로 기반시설(인프라)을 갖추고 연구에 나선 상황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노화 연구에 킬리피쉬를 활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킬리피쉬를 연구하는 연구 기관은 전혀 없고 연구 그룹도 단 한 곳 뿐이다. 최근에는 건국대병원를 비롯한 일부 기관에서 킬리피쉬 연구 시설을 도입할 계획을 세우면서 이제야 조금씩 관심이 늘어나는 단계다.

김 연구원은 “앞으로 노화 연구에서 킬리피쉬를 통해 알아내야 하는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며 “조만간 관련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국에서도 빠르게 국제 트렌드를 쫒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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