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편파 판정으로 빼앗긴 금메달 되찾을 가능성은?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3. 7. 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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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도 “도둑맞은” “사기” 등 표현하며 소트니코바 우승에 문제 제기
KADA “뒤집힐 확률 현실적으로 희박한 게 사실”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14년 2월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 경기. 은퇴를 번복하고 은반 위로 돌아온 김연아의 금메달은 확실해 보였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클린' 연기를 했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올림픽 메달에 굶주린 러시아에서 열린다는 점이었다.

애초 올림픽 2연패를 향한 김연아의 대항마는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러시아)로 여겨졌다. 소치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개최된 유럽선수권에서 역대 3번째로 높은 점수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올림픽 단체전에서도 쇼트, 프리 완벽한 연기로 개인 최고점을 경신했다. 그러나 단체전 금메달의 성과로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이 많이 부담스러웠는지 싱글 경기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쇼트프로그램 플립 점프에서 넘어지면서 65.23점밖에 얻지 못했다. 앞서 연기한 김연아(74.92점)보다 무려 9.69점이나 낮아 금메달과는 멀어졌다. 

김연아(왼쪽)가 2014년 2월21일(현지시간)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운데, 금메달·러시아), 캐롤리나 코스트너(동메달·이탈리아)와 함께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뉴스뱅크이미지

홈 어드밴티지 소트니코바에 억울하게 1위 빼앗겨

러시아 선수가 리프니츠카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있었다. 소트니코바는 소련 시절부터 유명했던 종합 스포츠 클럽인 CSKA 모스크바 소속이었다. 러시아 스포츠 엘리트 중 엘리트 출신이라고 하겠다. 자국 내 대회에서는 이러한 배경 때문에 리프니츠카야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김연아가 우승했던 2013년 세계선수권 때는 9위에 그치는 등 국제대회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소치올림픽에서는 달랐다. 

소트니코바는 쇼트프로그램에서 74.64점을 받아 김연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점수 차이는 고작 0.28점밖에 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염려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스포츠에서 홈 어드밴티지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리프니츠카야가 쇼트프로그램을 망친 상황에서 소트니코바는 러시아의 '희망'이 됐다. 

결국 프리스케이팅에서 사달이 났다. 김연아는 밴쿠버올림픽 때 못지않은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모든 구성 요소 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소트니코바는 러츠 점프 롱 에지 착지, 회전수 부족, 연결 점프 두 발 착지 등 넘어지지만 않았을 뿐 크고 작은 실수를 했다.

문제는 롱 에지였는데도 가산점을 받는 등의 엉터리 채점이 나왔다는 것. 김연아의 스텝 연기는 레벨3 판정이, 부족했던 소트니코바의 스텝 연기는 레벨4 판정이 나오기도 했다. 심판의 주관적 판단을 억제하기 위해 예술점수보다 기술점수에 더 후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채점 방식이 바뀌었는데 기술 판정 또한 심판이 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익명으로 채점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김연아의 적은 은반 위에 있는 게 아니었던 셈이다. 우승은 개인 최고 기록을 무려 22.23점이나 경신한 소트니코바의 몫이었다.

후폭풍은 거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USA투데이 등 다수의 외신은 심판 판정에 의문을 품으면서 불투명한 채점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은 'Home-Ice Advantage(홈 아이스 어드밴티지)'라는 표현으로 메인 화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프랑스나 호주 언론 또한 '도둑맞은'이라거나 '스캔들' '사기' '편파'라는 격한 표현을 쓰며 뒤바뀐 챔피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뉴욕타임스처럼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보다 기술 수행 점수가 높았다"고 평하는 일부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심판의 판정에 따라 기술 점수도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소트니코바가 7월6일 한 유튜브에 출연해 소치 올림픽 당시 도핑 사실을 고백해 논쟁을 다시 일으켰다. ⓒTASS 연합

소트니코바의 "도핑 양성" 고백 후 논쟁 다시 불붙어

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9년이나 흘렀으나 김연아의 도둑맞은 금메달 이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너무나도 당당한 소트니코바의 '입'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소트니코바는 7월6일 러시아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2014년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나는 두 번째 테스트를 받아야 했고 다행히 두 번째 샘플에서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소트니코바의 도핑 양성 반응 고백이 파장을 일으키자 러시아 피겨계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해당 영상은 하루 만에 삭제됐다. 소트니코바는 이후 자신의 SNS에 "언론은 당시 내가 금지 약물을 사용했다고 단정 지었다"고 억울해하면서 "나는 '도핑 흔적이 발견됐다'고 말한 것뿐이다. 누구도 나에게서 중요한 것(금메달)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했다. 

소트니코바를 포함해 러시아 선수가 약물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2015년 말 내부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조사위원회는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반도핑기구(RUSASA)가 선수들에게 검사 일정을 미리 알려줬고, 수천 개의 샘플을 파괴했으며 도핑 감독관과 그의 가족들을 압박해 누락된 검사를 은폐하기 위해 뇌물을 받았다는 맥라렌 보고서를 내놨다. 러시아가 하계·동계 올림픽 전반에 걸쳐 국가 주도로 도핑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는 것. 소트니코바 샘플에서도 긁힌 자국(샘플은 강제로 열 경우 용기에 흔적이 남는다)이 발견돼 의심을 받았는데 조사를 통해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소트니코바는 "샘플에 긁힌 자국이 난 것은 운송, 보관 담당자의 책임"이라고 했다. 

대한체육회는 일련의 일들에 관해 한국반도핑기구(KADA)에 협조를 구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관련 문의 레터를 보냈다. IOC에 직접적으로 재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2017년 조사가 종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소트니코바의 샘플이 보관돼 있을지도 의문이다. 보통 올림픽 대회 샘플은 로잔 보관센터에서 10년간 보관하는데 모든 선수의 샘플을 보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트니코바가 말한 '두 번째 샘플'이 일반적 도핑 검사처럼 1회 채취된 시료를 A병, B병으로 나누어 담았는데 A병에 담은 시료에서 양성 판정이 나온 후 B병에 담은 시료를 추가 분석한 것이라면 샘플이 남아있을 확률은 더 낮아진다. KADA 쪽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재조사가 이뤄질 확률이 적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WADA는 러시아 도핑 스캔들 이후 모스크바 시료분석기관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확보해 현재까지도 재조사가 진행 중이다. WADA는 458명의 러시아 선수 중 지금까지 203명에 대해 제재를 부과했고, 73명을 기소한 상태다. 나머지 182명에 대한 재조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소트니코바가 포함돼 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만약 소트니코바가 명단에 있다면 결과에 따라 김연아는 뒤늦게 '소치 금메달리스트'의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한편 장미란 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75㎏ 이상) 4위에 올랐으나 3위에 오른 흐립시메 쿠르슈디안(아르메니아)의 금지 약물 복용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2016년 동메달을 인정받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B샘플이 남아있어 국제역도연맹의 재조사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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