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반대는 탈핵을 주장하지 않고 이길 수 없는 싸움"
[인터뷰] 용석록 탈핵신문 편집위원장
일본 정부 프레임 깔린 용어 그대로 사용 문제… '기준치 함정'에서 벗어나야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막지 못하면 더 큰 위협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사고 핵발전소 오염수 방출이 임박했다. 일본은 핵사고 뒤 12년 간 발생한 오염수 약 133만 톤을 최소 30년에 걸쳐 태평양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밝히면서 국내 정치권 공방이 연일 지면에 오르고 있다.
탈핵신문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듬해 창간했다. “2011년 3월, 가까운 일본에서 그렇게 큰 사고가 났다는 데 (한국 탈핵 운동가들이)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다. 전역에서 줄줄이 연대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보를 공유할 매체는 없었다. 그래서 만든 매체다.” 용석록 탈핵신문 편집위원장의 말이다.
탈핵신문은 여야 공방을 전하지 않는다. 최근 나온 7월호를 펼치면 오염수 관련 '10문10답'이 나온다. 월성 핵발전소 주민의 몸 속 삼중수소 농도와 영향을 조사한 결과 기사가 이어진다. 장을 넘기면 2011년 후쿠시마현에 살던 어린이들 사진이다. 어른이 돼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아 갑상선암 발병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도쿄전력은 '기준치 미만' 피폭이라며 암과 인과관계를 부인한다. 미국 사바나 리버 핵시설 노동자 피폭 산재를 연구한 소식도 있다. 핵발전의 피해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사람들의 질문으로 지면을 채웠다.
최근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10가지 문답으로 정리한 소책자를 발행했다. 오염수에 어떤 방사능 물질이 포함됐을까. 언론에 오르내리는 다핵종제거설비라 부르는 ALPS는 무엇일까. 정상 가동되는 핵발전소의 방사성 물질과 오염수의 차이는 뭘까. 한 부에 2000원인 소책자는 한 달도 안 돼 2만4000부 나갔다.
용석록 편집위원장은 소책자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 “너무나 놀랐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염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어했구나. 실감했습니다.” 그는 “오염수 문제는 핵발전 그 자체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국 정부는 오염수 투기를 옹호하는 한편 국내에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신규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핵진흥' 정책을 편다. 오염수 반대는 “탈핵을 주장하지 않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지난 15일 경기 남양주의 커피숍에서 용석록 위원장을 만나 정부와 언론이 오염수 방출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물었다. 울산에 사는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 언론사 기자를 거쳐 탈핵운동에 몸담았다. 2017년부터 탈핵신문을 만들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순식간에 1만 부, 정확한 정보 향한 욕구 이렇게 컸구나”
- 최근 탈핵신문미디어협동조합과 반핵의사회가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10문 10답> 소책자를 펴냈다. 초판을 찍은 지 20일 만에 3쇄를 찍었다.
“너무 놀랐다. 책자를 판매한다고 광고를 내지도 않았고, 너무 바빠 홈페이지 게시마저 못했다. 텔레그램 소통방을 통해서만 알렸는데 일주일 만에 1만 부가 다 나갔다. 2쇄와 3쇄도 비슷한 속도로 나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느꼈다. 일본 정부의 오염수 투기가 초읽기에 들어가니 언론엔 상반되는 이야기들 천지다. 사안을 모르는 독자라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언어가 주는 '느낌'과 프레임도 있다. '다핵종제거설비' 등 단어다. 기사로 쓰기엔 한계가 있어 책자로 펴냈다.”
- 탈핵신문은 어떤 매체인가?
“이름 그대로 '핵'을 주제로 신문을 만든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창간했다. 2011년 3월 핵사고에 한국 활동가들이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다. 사고 전엔 반전, 반핵이란 단어를 썼다. 나만 해도 핵이 뭔지 잘 몰랐다. 울산에 살고 아주 가까운 곳에 핵발전소가 많았다.
사고가 나고 며칠 뒤 활동가들이 설계수명을 넘긴 고리 1호기 폐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를 중심으로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라는 연대단체가 생겼고 부산과 광주전남, 고창, 대구, 경주, 경남 등 전역에 줄줄이 생겼다. 그 정도로 후쿠시마 핵사고가 한국에 가져온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한국엔 탈핵 관점으로 정보를 공유할 매체가 없었다. 일본은 이와 달리 탈핵, 반핵 운동이 활성화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겪었기 때문이다. 원자핵 전공 전문가들도 사회단체와 함께한다. 탈핵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만든 '반핵신문'이 있다. 한국에도 매체를 만들자고 뜻을 모아 2012년 초 창간 준비호를 냈다.”
- 신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다달이 16면짜리 신문을 발행한다. 27명의 통신원이 기사를 쓴다. 이들은 탈핵운동을 하는 활동가들로 경주, 부산, 제주, 청주, 대전, 광주, 고창, 춘천 등 전국에 퍼져있다. 예컨대 대표이사는 서울에, 나는 울산에서 활동한다. 구독료가 연 5만 원인데 늘 적자다. 그래서 후원 개념을 더해 월 1만 원 독자 확대를 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매달 자발적 독자 모임도 있다. 비용을 일부 지원하면서 장려하고 있다.”
- 어떻게 핵 문제를 취재하게 됐나.
“2013년 한 지역언론에서 일했다. 이전엔 노동운동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언론에 게재도 했지만 글 기사를 쓰는 건 달랐다. 뭘 써야 할지 방황할 때 핵발전소를 갔다. 너무 충격을 받았다. 고리와 신고리를 모두 가봤는데 주민들이 발전소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둘 사이) 이차선 도로 하나 있다. 그 전까지 울산에 살면서도 핵발전소는 너무 먼 존재였다. 그 때부터 시간만 나면 찾아갔다. 처음엔 주민들이 인터뷰도 안 해준다. 왜냐면 언론사를 너무 많이 접했는데 기사도 이상하게 쓴다는 거다. 계속 가니 또 왔냐며 커피를 한 잔 줬다. 그러면서 살아온 얘기와 힘들었던 이야기, 핵발전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 분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됐다. 이걸 기사로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론사를 나온 뒤엔 탈핵신문에서 하고 있다.”
'기준치'라는 함정, 반박해도 커져
'방류'에서 '제거설비'까지, 오용에 깔린 프레임
- 기존 오염수 관련 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를 꼽는다면?
“아무리 반박해도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주장이 있다. '기준치'라는 함정이다.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나 기준치에 기댄다. 문턱 없는 선량가설(LNT, Linear Non-Threshold, 문턱 없이 선량에 비례해서 위험성이 커진다는 가설)을 적용해야 하지만, 핵산업계는 반대 주장을 한다. 100밀리시버트 미만 피폭은 암을 유발하거나 인체에 유해한 것이 증명된 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학조사 결과 전국 핵발전소 반경 10km 내에 사는 주민의 암 발생율이 먼 거리보다 2.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치 미만 피폭이었다. 그런데 한국수력원자력은 '그 암이 방사선 때문임을 증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유튜브 광고로 '기준치 이하면 인체에 별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당과 친원전 전문가들에게서도 계속 나오는 얘기다.”
- <10문 10답>은 언론과 정부가 오염수에 대해 잘못 쓰는 용어를 바로잡고 있다.
“언론이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행위를 '방류'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책에선 '해양투기'나 '방출'이라고 표현했다. 방류(discharge는 대안을 모두 고려해 특별한 불확실성이 없는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투기(dumping)는 대안을 모두 고려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버리는 것을 말한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사고가 난 시설에서 발생한 데다 녹아내린 핵연료와 직접 닿아 방사성 물질 종류가 많고 독성도 크다. 한국의 여러 언론은 일본 정부 규정을 따라 ALPS를 '다핵종 제거설비'라고 부른다. 그러나 ALPS는 방사성 핵종을 제거하지 못한다. 농도를 저감할 뿐이다. 삼중수소와 탄소-14와 같은 방사성 핵종은 아예 줄일 수 없다. 특히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핵종이 64개라 주장하지만 그 외에 확인되지 않은 핵종이 존재한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처리 전후 농도를 7개 핵종에 대해서만 평가했다.”
- 국제원자력안전기구(IAEA)의 최종보고서를 읽고 먼저 든 생각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렸는데?
“제일 중요한 건 저자의 의도가 담긴 대목이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총장은 본문에 앞서 '처리수 방류는 일본 정부의 국가적 결정이며 이 보고서는 해당 정책을 권장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며 '여기 표현된 견해가 IAEA 회원국 견해를 반드시 반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고서 사용의 결과에 따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도 했다. 회원국과 협의하지 않았으며 투기 이후 책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보고서 위상을 규정한 대목이다.
그러나 IAEA는 보도자료에선 오염수를 통제하고 점지적으로 방류하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방사능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 정부를 비롯한 여러 나라도 'IAEA 검토 결과를 보고 우리도 입장을 취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 부분을 지적하는 언론은 많지 않다. 오염수 해양투기가 마치 과학적 검증 과정을 거쳤으며 문제없다는 입장만 전달하고 있다.”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놔두고 오염수 얘기만?
초가삼간 불타는데 다른 걱정하는 격
- 오염수 문제는 핵발전 자체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왜인가?
“일본 정부의 오염수 투기는 전국적으로 싸워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 정부의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추진을 막아야 한다. 후쿠시마보다 더 심각한 사고 가능성과 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수원은 설계수명이 만료된 고리2호기를 비롯해 3, 4호기 연장을 위한 서류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재해 위협은 커지는데 시설은 점점 취약하다. 기후위기가 오면서 태풍이나 폭염, 폭우가 많아지고 있다. 핵발전소가 몰린 부산과 울산, 경주는 특히 활성단층이 있는 국내 대표 지역이다. 특히 올 4월엔 정부가 이곳에 언제든 지진이 날 수 있는 활성단층이 16개이고 이 중 5개는 '설계고려단층'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시설을 설계할 때 고려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1~4호기 짓던 1970~1980년대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다면 우리는 후쿠시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일본에 비해 땅이 좁다. 후쿠시마엔 16만 명이 살았지만 고리 핵발전소 반경 30km엔 320만 명의 사람이 산다. 핵발전소 주변에 사는 주민 당사자로, 터전을 잃고, 피폭 되고, 건강을 잃는 피해를 한수원이나 국가가 책임질까? 이 문제를 같이 얘기하지 않고 오염수만 얘기한다는 건 초가삼간이 불에 탈 것 같은 상황에 멀리 있는 이웃집을 걱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정부는 왜 이렇게 오염수 해양투기 옹호에 적극적일까?
“총선을 앞둔 정권 다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원전 최강국을 만들겠다'는 구호를 걸었다. 핵 진흥 정책을 수정하면 자기 정체성에 타격을 받으니 오염수 문제도 정당화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오염수가 문제 있다며 방출을 반대한다면 핵발전의 위험성도 인정하는 것이 되고,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편 오염수 방출을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강원 삼척, 경북 영덕에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오염수 문제를 안전 문제가 아닌 진영 구도로 만들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기친 주범 장모는 거리 활보 중” 말했던 장제원에 대한 강렬한 기억 - 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MBC·한겨레 ‘취재 배제’에 일본 도쿄전력 취재 거부 - 미디어오늘
- [아침신문 솎아보기] ‘교권 대 학생인권’ 대립구도에 경향 “학생들에게 책임 전가” - 미디어
- “할 수 있죠?” 아산시장 ‘허위 네거티브’ 유죄 뒤엔 선수로 뛴 기자 - 미디어오늘
- “언론은 누구의 위기에 주목하나”…소외된 재난, 공동체미디어 해답 될까 - 미디어오늘
- “연합뉴스, 제목에서 너무 자극적인 것을 저렇게…” - 미디어오늘
- “명품 얘기는 하지 마시고” SNL코리아, 풍자 수위 약해졌다? - 미디어오늘
- “관저 후보지 답사, 천공 아닌 다른 풍수학자” KBS 보도 파장 - 미디어오늘
- 초등교사 사망에 ‘단독’ 달고 일기장·사적 면모 들춰도 되나 - 미디어오늘
- “중대범죄 주진우 검사, 尹 정권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영전”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