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이 달라졌어요…"1번 역할만 NO, 거리감 고민해"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원조 꽃미남 스타 조인성(41)이 한층 깊어진 매력으로 데뷔 25년 차 톱배우의 품격을 자랑했다. 인간 조인성으로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에선 연기력을 꽃피우며 독보적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조인성은 전작 '모가디슈'(2021)로 코로나19 팬데믹을 뚫고 361만 명을 동원, 류승완 감독과 새로운 충무로 흥행 콤비로 떠올랐다. '밀수'로 다시 의기투합하여 또 한 번 여름 극장가를 강타할 준비를 마쳤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해녀 조춘자(김혜수)와 엄진숙(염정아)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
극 중 조인성은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로 변신, 색다른 얼굴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권 상사는 사업가적인 면모와 악독한 기질로 부산을 장악하고 전국구 밀수 1인자가 되어 밀수판을 접수한 인물. 조인성이 그간 맡아온 캐릭터들과는 다른 결을 지니며, 남다른 아우라로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조인성은 '밀수' 출연 이유로 단연 류승완 감독과의 신뢰감을 언급했다. 그는 "류승완 감독님과 작업할 땐 대본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감독님의 머릿속엔 그림이 다 그려져 있고, 역할이 크든 작든 간에 배우들이 제 몫을 하고 나오는 캐릭터들을 만들고 캐스팅하신다"라며 "우리는 '모가디슈'로 이미 같이 고생을 한 번 했다. 국내가 아닌 타지에서 5개월 동안. 모로코는 한국 교민이 단 2명뿐이라, 그 곳에서 동양인이면 우리였다. 마을을 짓고 사는 것처럼 함께 살았기에 아무래도 대화도 많이 나누고 돈독해졌다. 또 감독님과 연달아 두 작품을 하니까 내가 안 나오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젠 류승완 감독님이 영화적 동지이자 큰 형 같다"고 끈끈한 애정을 과시했다.
류승완 감독에 대해 그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과 작업해 본 적은 없지만 류승완 감독님도 그분들처럼 정말 영화밖에 모른다. 다른 어떤 것도, 잿밥엔 전혀 관심이 없다. 쉬는 날에도 영화만, 오직 영화뿐이다. 생활이 영화이기에 영화가 없어지는 건 류승완 감독님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 성실함이 지금의 류승완 감독님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라고 존경심을 표했다.
'밀수'는 수중 액션이 백미인 작품이지만 조인성이 훤칠한 피지컬과 농익은 내공으로 액션의 진수를 발휘한다. 이 덕분에 지상에서의 액션 또한 압권이다. 조인성은 "바닷속에서 액션 활극은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물에 들어가면 큰일인데?' 싶었다. 시나리오를 두 번 읽고 확인해 보니 권 상사는 안 들어가더라(웃음). 그렇다면 '육지에서 최선을 다하리라'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또 감독님의 장기가 액션이지 않나. '모가디슈' 때는 카 체이싱 위주의 액션이라 호흡이 궁금했는데 '밀수'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감독님이 저를 빛나게 찍어주셔서 영화 안에서 기억에 남는 신이 됐다. 그동안 유독 못생기게 분장하는 영화만 찍다가 이런 식의 터치는 처음이라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또한 조인성은 '밀수'에서 선배 김혜수와 미묘한 멜로를 넘나드는 환상적인 케미를 형성, 대본에 없던 장면까지 탄생시키는 대활약을 펼쳤다. 그는 김혜수와의 호흡에 대해 "엄청 떨렸다. 카리스마가 워낙 넘치셔서 후배로서 더더욱 긴장했다. 근데 선배님이 전혀 긴장하지 말고 잘하고 있다고 더 좋은 배우가 될 거라는 말씀을 해주시니까, 나에게 없던 이상한 힘이 나오더라. 선배님은 진심에 없는 말은 하지도 않으신다. 극 중 라이터를 팅 켜는 동작이 제가 만든 제스처인데 선배님이 '해 봐, 해 봐. 너무 잘해. 어쩜 이렇게 잘해' 옆에서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니까 못할 수가 없었다. 선배님의 사랑을 받으면 어떤 것도 나온다. 김혜수 선배님의 사랑으로 모든 걸 키워낸 권 상사다. 권 상사는 선배님이 만든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보냈다.
조인성은 "만약 내가 '밀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난 어떻게 김혜수, 염정아 선배님을 알았을까 싶더라. 그 두 분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밀수'는 제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작품으로 남았다. 모를 때 물어볼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김혜수, 염정아 선배님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강렬한 애정을 고백했다.
그는 "김혜수 선배님은 태양이었고 염정아 선배님은 대지였고 류승완 감독님이 길을 내주시고, 후배들이 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밀수'라는 꽃이 피어난 거다. (박)정민, (고)민시, 해녀들도 모두 다 잘 해냈다"라고 '밀수'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내비쳤다.
특히 조인성은 '밀수'에서 다소 적은 분량임에도 강렬한 인상을 새기는 놀라운 존재감을 뿜어냈다. 주연만 고집하지 않고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에 집중하는 영리한 자세가 돋보이며 더욱 이목을 끌었다. 조인성은 "사실 '밀수'는 제 스케줄상 역할이 크면 출연할 수가 없었다. 디즈니+ '무빙'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3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비집고 들어가 촬영한 거다. '무빙'에서 머리를 아예 잘랐어야 해서 겹칠 수가 없었다. 권 상사는 새 국면으로 전환시키고 판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브리지(bridge) 같은 역할이었는데 분량이 많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거다. 근데 분량이 적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더라. 설명이 충분히 안 되니까, 뉘앙스를 잡기 위해 개인적으로 리딩을 정말 많이 했다"라고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인성은 "권 상사가 '밀수' 라인업 순에서 20번째쯤 될 거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역할의 작고 크고는 의미가 없다. 앞으로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면 할 생각이다. 그래서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옛날엔 수행 능력만 있던 배우라면 이젠 적극 참여하는 경력이 되기도 했다"라고 연륜이 묻어난 여유로움을 드러냈다.
그는 "달라진 계기는 제가 아니라, 대중이 그렇게 만들어줬다. 그간 많은 사랑을 받았고 25년 정도 활동하니 알게 모르게 서로 쌓이는 신뢰들이 있다. 저를 변화하게끔 허락해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의도를 갖고 한다고 해도 못하는 건데, 이렇게 지금의 제가 될 수 있게끔 만들어주신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대중을 찾아가려 노력할 거다. 저도 이전엔 조급함이 있었는데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나. 지금 현재에 충실히, 현실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겸손하게 얘기했다.
최근 조인성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엿볼 수 있다. '밀수' 개봉에 다음 달 9일 OTT 디즈니+ '무빙' 공개, tvN 예능 '어쩌다 사장3' 미국 촬영까지. 그는 대중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열일' 행보를 걷고 있다.
조인성은 "코로나19 시국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해봤다. 대중이 스타라고 불러주는 연예인들을 보면 보통 화면에 덜 나오기도 하고, 안 보이는 게 미덕이라고들 그러지 않나. 근데 그러다가 진짜 멀어지겠다 싶더라. 이런 식으로는 관객과 거리감이 더 생길 수 있겠다 싶었고, 뭘로 빨리 찾아뵐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어떻게 덕목을 다 하면서 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결과, SNS 계정을 개설한 것이고 예능도 시작하게 된 거다"라고 털어놨다.
"궁금한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조인성. 그는 "연기의 한계를 늘 느낀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제로 값'에 놓인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덜 부리려 한다"라면서 "행간이 재밌는 배우였으면, 궁금한 배우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다"라고 진솔하게 전했다.
조인성과 류승완 감독의 두번째 호흡이 기대를 모으는 '밀수'는 오는 26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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