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임무 마치고 물러갑니다”…굿바이 병원선 ‘충남 501호’ [주말엔]
충청남도의 작은 섬 월도.
월도에 사는 최종승 어르신은 와상 환자입니다. 오랜 기간 누워 지내다 보니 엉덩이에 주먹만 한 욕창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요.
섬 안에 의료시설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거동이 불편해 육지로 나가기도 쉽지 않았던 어르신에게 병원선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습니다.
병원선 덕분에 욕창은 깨끗이 나았고 의료진을 마중 나올 만큼 건강도 되찾았다고 합니다.
충청남도 섬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충남 501호'의 순회진료에 동행해봤습니다.
병원선은 각종 의료장비와 시설, 의료인력을 갖추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선박입니다. 보건소마저 없는 작은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각 광역자치단체에서 운영하며, 현재 5척이 운항 중입니다. (충남 501, 경남 511, 전남 511, 전남 512, 인천 531)
* 숫자 5는 의료용 관공선에 붙는 기능표시
■ 45년간 약 900만 명의 환자 진료
지난 1978년 130톤급 선박으로 처음 닻을 올린 충남 501호.
2001년 새로운 배로 교체된 뒤 지금까지 도내 섬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왔습니다.
45년 동안 약 900만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고 하는데요. 섬마을 건강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온 겁니다.
현재 충남 501호에는 공중보건의 3명과 간호사 3명 등 직원 18명이 승선해 총 6개 시군(보령, 서산, 당진, 서천, 홍성, 태안) 32개 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순회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 흔들리는 배 안에서 침을 놓다
7월 7일 아침 8시 40분 충남 501호는 대천항에서 출항했습니다.
이날은 육지에서 약 16km 떨어진 고대도 주민들을 진료하는 날이었는데요.
섬마을 어르신 10여 분은 선착장에 미리 나와 충남 501호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 160톤급 선박은 섬 선착장까지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병원선이 섬 근처에 닻을 내리면 승선팀이 작은 보트를 이용해 주민들을 선내로 모셔오는데요.
파도가 심하진 않았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진료 보는 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흔들리는 배에서 침을 놓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적응해서 괜찮다"며 박연훈 한방과 공중보건의는 능숙하게 침을 놓았습니다.
모든 진료가 병원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 많은 섬은 의료진이 직접 소형 보트를 타고 방문하기도 합니다.
길미선 운영팀장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병원선까지 오시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며 "점차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져서 육상진료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병원선은 생명선이지"
병원선은 만성질환 환자를 중점적으로 관리합니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하면 합병증이 생길 수 있어 병원선을 '생명선'으로 여기는 어르신들도 계신다고 합니다.
"약은 잘 챙겨드셨죠?"
신태환 내과 공중보건의는 한 달 만에 뵙는 어르신들의 혈압과 혈당을 체크하며 약은 제대로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핍니다.
"아침밥 일찍 먹고 아까만치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슈."
전정화 할머니는 "육지로 나가려면 배 타고 버스 타고 꼬박 하루가 걸린다. 병원선이 없으면 큰일 난다"며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 "화장실이 하나에요"
충남 501호는 대천항에서 출항해 보통 하루 일정으로 진료를 마치고 복귀합니다.
매달 초 2박 3일이나 3박 4일 일정으로 운항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평소보다 승선원들의 어려움이 크다고 합니다.
병원선이 좁고 노후화됐기 때문입니다.
화장실이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여자 화장실은 하나인데 여 승선원이 10명이 넘다 보니 아침마다 씻기 위해 길게 줄을 선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금방 소진돼 찬물로 머리를 감아야 하는 일도 많습니다.
여기저기 고장도 잦습니다.
1년 6개월째 병원선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문수빈 기관사는 "고장이 나면 조금만 버텨줘 버텨줘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 22년간의 임무 마치고 퇴역
현재 운항 중인 '충남 501호'는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물러납니다. 빈자리는 새로운 병원선인 ‘충남병원선’이 대신하게 됩니다.
새로운 충남병원선에는 물리치료실과 치위생실이 신설되며 운영, 의료인력도 18명에서 22명으로 보강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화장실도 늘어난다고 하니 장거리 운항의 불편함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수빈 기관사는 "충남 501호에 정이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버텨줘서 고맙고 이제 노후를 편안히 보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보였습니다.
길미선 팀장은 "새로운 병원선인 '충남병원선'과 함께 '충남 501호'가 했던 임무를 충실히 이어받아서 32개섬 약 4,000명 주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로 다가가는 병원선이 되고자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다"며 밝게 웃었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3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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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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