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영화 ‘축제’의 무대/고기잡이 나간 남편·아들 무사히 돌아 오라고 작은 호롱불 켜고 간절히 기도하던 곳/수문해변 오토캠피장 해수욕·캠핑 한꺼번에 즐겨/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에선 피톤치드로 샤워
득량만 남포마을 앞바다에 손에 잡힐 듯 떠 있는 아주 작은 외딴 섬. 오늘따라 더 쓸쓸하다. 며칠째 오락가락하는 장맛비 때문일까. 해를 꽁꽁 감춘 하늘은 바다가 만나는 곳까지 물안개만 피워 내니 수평선에 점점이 박힌 섬들은 간밤에 언뜻 스쳐 간 꿈처럼 가물가물하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빌며 성난 파도 세차게 갯바위 때리는 섬에 올라 밤새 작은 호롱불 켜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머니. 소등섬으로 들어서면 가난하고 힘들던 작은 어촌마을 사람들의 팍팍한 삶이 고스란히 가슴으로 전해진다.
◆소설과 영화의 무대 소등섬에 오르다
5년 넘게 치매를 앓던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간 유명 작가 이준섭(안성기 분). 시집와서 혼자 시어머니를 모신 형수는 그동안의 설움을 쏟아내고 집안 돈을 훔쳐 달아났던 이복 조카 용순(오정해 분)까지 등장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이 극대화한다. 하지만 갖가지 해프닝을 겪으면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묵은 갈등이 서서히 해소되는 내용을 담은 영화는 1996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95번째 영화 ‘축제’. 같은 해 출간된 이청준의 장편 소설 ‘축제’가 원작이다. 이청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소설 창작과 영화 촬영이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장례식을 축제로 그린 영화와 소설의 무대가 전남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 남포마을과 무인도 소등섬이다.
바닷가 시골이 그렇듯,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을 달려 도착한 남포마을은 찾는 이 없어 한산하지만 득량만을 품어 아늑하다. 마침 물이 빠져 소등섬과 연결되는 마을 닮은 투박한 길 하나 덩그마니 놓였다. ‘소등’은 이름처럼 작은 등이라는 뜻. 먼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가족들이 불빛을 보고 무사하게 돌아오길 빌며 호롱불을 켜 놓았던 데서 유래됐다. 섬이 소의 등을 닮아 소등섬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섬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바다의 용이 승천하지 않고 섬 주변을 휘감아 영원히 머물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10분 남짓 걸어 소등섬으로 들어서면 정화수 앞에서 무릎 끓고 눈을 감은 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당 할머니 조각상을 만난다. 약 1000년 전 형성된 남포마을은 500년 전부터 소등섬을 신성하게 여겨 제단을 쌓고 매년 정월 대보름 마을의 안녕과 평화, 무병장수,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마을의 전설 때문이다. 어느날 마을 사람의 꿈에 백발 노파가 나타나 소등섬에서 제사를 지내면 고기가 잘 잡히고 마을 사람도 무탈할 것이라고 전했단다.
섬은 아주 작지만 한가운데 운치 있는 소나무 몇 그루가 산수화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런 소등섬 위로 떠오르는 득량만의 장엄한 일출이 유명하다. 특히 겨울철에는 민박집 창문만 열어도 소등섬 위로 붉은 아침 해가 불쑥 솟아오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봄에는 바지락, 겨울이면 맛 좋은 석화가 풍성해 미식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섬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 언덕 정자에서 소등섬의 매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정자 위 계단을 오르면 등불, 희망, 소원을 상징하는 ‘소등섬의 빛’ 조형물이 서 있다. 바다에 나간 어부의 길잡이 되는 등대와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촛불 모양으로 디자인해 어머니와 아내의 애틋한 바람과 기원을 담았다. 도착했을 때는 물이 빠져 좀 썰렁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금세 바닷물이 차오른다. 길은 점점 사라지고 정말 외딴 섬이 되면 그제야 소등섬의 감춰진 매력이 드러난다.
◆푸른 바다 넘실대는 남파랑길 걸어볼까
남쪽의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남해안을 따라 90개 코스, 1470㎞ 달한다. 남해의 수려한 해안 경관, 대도시의 화려함, 농산어촌 마을의 소박함을 모두 만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그중 남포마을이 포함된 남파랑길 79코스 정남진해안도로는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경도상 정남쪽에 위치한 정남진 지역을 지나는 구간이다. 장흥 원등마을회관을 출발해 상발마을∼죽청배수갑문∼정남진 전망대∼회진시외버스터미널을 걷는 코스로 ‘이청준 한승원 문학길’이 일부 포함돼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의 발자취를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상발마을 전망대, 갯벌 체험과 바다낚시를 즐기는 사금어촌체험마을 등에서 득량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고 정남진 전망대에선 섬들이 아련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만난다.
정남진 전망대는 최근 새롭게 단장을 마쳤다. 지하 1층, 지상 10층, 46m 높이로 지은 전망대 8층 북카페에 오르자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득량도, 소록도, 거금도, 연홍도, 금당도, 평일도 풍경이 장관이다. 카페 주인이 최근 바뀌면서 인테리어를 블루와 민트 계열로 산뜻하게 꾸몄고 커피 맛도 훨씬 좋아졌다. ‘조만간 가끔은 거꾸로 세상을 보는 것도 괜찮아’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다’ 등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귀도 벽면을 장식한다. 딱 요즘 감성이라 조만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를 것 같다.
남파랑길 79코스 종착지 회진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엔 충무궁 이순신의 흥미진진한 역사가 기다린다. 바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지은 수군 기지, 회령진성이다. 마을 뒷산을 활용해 1490년(성종 21년) 4월 축조된 회령진성은 동쪽으로 고흥의 사도진, 발포진, 녹도진에 연결되고 서쪽으로 마도진, 이진진, 어란진으로 연결된다. 또 앞바다의 덕도, 노력도, 대마리도, 소마리도, 대대구도, 소대구도 등 섬들이 진성을 호위하는 천혜의 요새다. 덕분에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회령진성에서 무기를 모으고 군대를 정비한 뒤 출정해 왜군을 크게 물리쳤는데 바로 유명한 명량대첩이다.
성벽 길이는 616m로 동문, 북문, 남문, 객사, 동헌, 사령창, 장청, 군기고 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현재는 북문과 동문, 동헌과 객사의 터만 남아있다. 사람들이 큰 원을 떠받치는 디자인으로 조각된 회령진성 역사공원 상징 조형물 ‘회령숭상’을 지나면 배 모양 석조 조형물 12개를 만난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으로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의 역사적 의미를 담았다.
◆아름다운 수문해변 즐기는 오토캠핑
남파랑길 78코스에는 여름휴가를 보내기 좋은 수문랜드 블루투어 오토캠핑장이 기다린다. 지난 2월 문을 열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올여름 럭셔리한 캠핑으로 여름휴가를 보내길 원한다면 안성맞춤이다. 높은 언덕 아늑한 숲에 들어앉은 캠핑장으로 들어서자 나무와 새들이 속삭이는 자연의 소리가 가득하다. 발아래로 수문항과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수문해변과 갯벌 풍경까지 어우러진다.
총면적 2만2226㎡에 카라반 7개동, 글램핑 4개동, 캠핑데크 15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캠핑테크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나무 탁자와 의자까지 갖춰 쾌적하고 편리하게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카라반은 시설이 끝내준다. 2인용 침대 1개, 1인용 침대 2개, 화장실, 세면대, 냉장고, 싱크대, 식기, TV, 에어컨, 히터 등을 갖춰 고급 호텔을 연상케 한다. 글램핑장 대형 텐트에도 2인용 침대와 냉장고, 에어컨, 전기 패널(히터)이 마련돼 있다. 유럽식 건물로 디자인한 화장실, 샤워장, 개수대도 이용할 수 있고 놀이터 2곳과 1.5㎞ 길이의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무엇보다 바로 아래 수문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백사장 길이 1㎞, 너비 300m에 달하는 수문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수온이 따뜻해 해수욕하기 매우 좋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도 장흥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숲으로 들어서면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편백나무가 쏟아내는 피톤치드 덕분에 덥고 습한 기후에 최대치로 높아졌던 불쾌지수가 순식간에 낮아지며 향긋한 숲내음이 비강을 가득 채운다. 편백나무는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가장 많이 내뿜는 나무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나무테크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편하게 걸을 수 있다. 4∼12월엔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진행돼 숲속 호흡요가, 활력 증진 기체조, 맨발걷기, 오감여행, 자연체험활동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