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모습 ‘소셜 로봇’…아직은 조작된 희망의 상징
사람 모습 로봇
사람 모습이라는 이유로 주목
‘인간과 대화 가능’ 느낌만 주는
‘인공일반지능’ 개념까지 나와
환상 키워 논점 흐릴 가능성
인간의 형체를 한 로봇들 중 사람과 대화하는 기능이 주된 기능인 것들을 ‘소셜 로봇’이라고 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의 아틀라스나 카이스트 로봇 연구실 출신들이 창업한 레인보우로보틱스사의 휴보는 운동 능력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소셜 로봇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소셜 로봇들에 대해 엇갈리는 시선들에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나 그 산하 기구들은 인간형 소셜 로봇을 동원한 미디어 이벤트들을 몇년째 거듭 개최한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사무국에는 소셜 로봇 마니아가 있는 듯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벤트는 2017년에 있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정기이사회장에서 아미나 모하메드 유엔 사무부총장은 인간형 소셜 로봇 소피아와 대화했다. 소피아의 스피커에서는 인류의 미래 창조를 돕기 위해서 왔다는 합성음이 흘러 나왔다. 모하메드 부총장의 능숙한 대응은 ‘자연스러운’ 대화 분위기를 연출하며 인공지능과 로봇은 유엔이 관심을 가질 만한 중요한 화두라는 점을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선 로봇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정보통신기술 전문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2017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선에 이바지하는 인공지능’(AI for Good) 행사의 일환이기도 했다. 40여분 동안 진행된 세션에서 몇년째 되풀이된 표준 답변들이 나왔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지 않을 것이라든지, 로봇은 인류를 정복하지 않을 것이라든지.
국제전기통신연합은 제네바에서 열린 행사를 유엔이 설정한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에 기여하기 위한 가장 거대한 ‘중매(matchmaking) 행사’라고 홍보했다. 여러 형태와 용도의 로봇 51개가 출품됐고, 수만명의 관람객이 로봇 시연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언론 홍보는 지속가능한 개발목표보다는 인간형 소셜 로봇에 치중됐다. 사실 소셜 로봇은 인공지능이나 로봇 개발자들이 주력하는 분야가 아니다. ‘기자회견’에서 각기 다른 역할과 능력을 지닌 것처럼 소개된 8개 로봇들의 제작자들도 많이 겹친다. (진행자는 로봇이 모두 9개라고 했지만 머리와 목 부분만 등장한 1개는 따로 소개되지도, 질문을 받지도 않았다.)
로봇 소피아 제작을 주도한 데이비드 핸슨과 벤 거츨이 각각 핸슨 로보틱스와 싱귤래리티넷 명의로 2기씩 출품했다. 이들의 활동 기반은 홍콩이다. 영국의 엔지니어드 아츠도 2기를 내놨다. 오사카대학의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는 본인이 멀리 오사카에서 조종하는 원격로봇 제미노이드를 선보였고, 제네바대학의 나디아 탈만 교수가 자신이 개발 중인 돌봄로봇 나딘을 소개했다. 제미노이드와 나딘의 겉모습은 제작자들을 닮았다. 누구나 곧 인공지능과 로봇이 커다란 사회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각오하는 지금, 인간형 소셜 로봇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로봇 미래에 후춧가루 뿌린 ‘페퍼’
현재까지 가장 많이 보급된 인간형 소셜 로봇은 2015년부터 판매된 페퍼다. 소프트뱅크가 페퍼를 개발한 프랑스의 알데바란을 인수했고 제작은 폭스콘이 맡았다. 2020년 제작이 중지될 때까지 2만7천대가 보급됐고 현재도 여러 곳에서 실험용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 첫선을 보인 페퍼의 기능은 대단했다.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감정을 읽으면서 상호작용하고, 터치스크린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기능을 갖췄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고, 무선인터넷으로 클라우드에 연결돼 인공지능이 계속 학습하면서 업데이트됐다.
그러나 실제 작동은 기대와 달랐다. 2017년 일본의 제3회 엔딩산업전(장례산업박람회)에서 닛세이 에코사는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에게 경전이나 경구를 외워주는 로봇 승려로 페퍼를 활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계속 고장을 일으키자 결국 포기했다. 장례식 도중에 오작동하면 끔찍한 재앙이 되리라는 이유였다. 스코틀랜드의 식료품 체인 마르지오타는 에든버러시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페퍼를 설치했지만, 고객들이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 때마다 페퍼는 “주류 섹션에서 찾아보라”고 계속 말하다가 결국 치워졌다. 귀여운 페퍼에 애착 감정을 느낀 몇몇 직원이 슬퍼했던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일본의 한 양로원에서는 입소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오락용으로 쓰기 위해 페퍼 3대를 들였지만, 계속 오작동을 일으키자 결국 임대계약을 해지했다. 영국의 로봇 공학자 노엘 샤키는 페퍼의 몰락을 다룬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페퍼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똑똑한 인지적 존재라는 잘못된 인상을 주어 진정한 로봇 연구에 많은 해를 끼쳤다”고 평가했고, 일본 지바공업대학의 후루타 다카유키 교수도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람 수준의 지능을 기대”했던 것을 실패 요인으로 지적했다.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는 점에 이끌려 잔뜩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환멸을 느낀다는 것이다.
전시 사업에서 시작된 로봇 산업
‘로봇’이란 단어는 1920년대에 나왔지만, 로봇을 전시하는 경제 활동은 18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발명가인 자크 드 보캉송은 1738년 파리에서 ‘플루트 연주자’라는 자동인형을 유료 전시회에 선보였다. 이 자동인형은 실제 플루트로 여러 곡을 능숙하게 연주했고 노동자 기준 일주일분 급료에 해당하는 비싼 입장료에도 몇달 동안 관중이 가득 들어찼다고 한다. 1938년 웨스팅하우스사는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기계인간(moto-man) 일렉트로를 선보였다. 일렉트로는 바퀴를 발바닥 밑에 숨긴 채 걷는 듯 움직였고, 사회자와 대화를 나눴으며, 사회자가 관객의 질문을 받아서 물어주면 스피커로 그럴싸한 답변을 했다. 별도의 원격 조종 없이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몇 음절로 소리내는지에 따라 자율적으로 반응했다.
전시·공연의 전통을 고려하면 올해 국제전기통신연합이 주최한 행사에 소셜 로봇을 출품한 세 회사(핸슨 로보틱스, 싱귤래리티넷, 엔지니어드 아츠)의 주 수입이 전시 임대료와 이벤트 출연료라는 점은 별문제가 아니다. 강연 에이전시들은 소피아의 강연료로 4만~7만5천달러(약 5천만∼9500만원)를 제시한다. 소피아를 만든 핸슨은 소피아를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로봇이라고 표현하는데, 다수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이런 식의 홍보를 강하게 비판한다. 소피아류의 인공지능 로봇들이 점점 더 많이 회자되면서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적극적으로 오도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연구 책임자인 얀 르쾽이 대표적인 비판자 중 한명이다. 심층신경망 연구를 함께 이끌었던 동료들이 인공지능 비관론에 힘을 실을 때도 르쾽은 인공지능 연구를 더 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올해 봄에 제안된 인공지능 연구 6개월 모라토리엄 구상이나 인공지능 규제 국제기구 구상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이다. 그러나 르쾽은 2018년 1월,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테크 인사이더’ 코너에 올린 소피아와의 인터뷰에 분노했다. ‘느끼고 생각하고 슬프다’(feel, think, sad)는 식의 동사와 형용사를 동원한 인터뷰 자체가 “완전히 헛소리”이며 그런 인터뷰를 게재한 매체를 향해 “이 사기의 공범”이라고 맹공했다. 단순한 챗봇을 반쯤이라도 지각이 있는 것(semi-sentient entity)처럼 제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이었다. 며칠 뒤 소피아 명의의 트위터 계정에 ‘르쾽의 말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글이 올라왔고 르쾽은 다시 한번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소피아의 반응으로 알려진 트위트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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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로봇, 아름다운 얼굴”에 취하면…
소피아를 공동 개발한 거츨의 활동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는 인공지능 연구서를 편찬하면서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학계에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소피아가 진정한 인공지능이 아니지만, “미소 짓는 로봇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인공일반지능이 실제로 가까이 있고, 실현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옹호한다. 인공일반지능 실현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곧 실현 가능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여러 현실적 문제가 파생된다. 제네바 로봇 기자회견장에서 오간 식상한 문답들은 인공지능 소셜 로봇들이 보편적인 지능을 지니고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런 문답이 이야기를 장악하면 사람들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현실로 여기고, 문제의 성격을 오독하게 한다. 당장 현실에서 벌어질 문제의 논점을 흐린다는 것이다. 일자리는 고용주-기술-구직자의 관계 문제이지만 손쉽게 인공지능과 사람의 문제로 착각된다.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에 책임을 떠넘기는 배달앱의 배차 문제, 보험 가입 거절 등등 일상에서부터 인공지능을 이용한 ‘감시 국가’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문제는 이미 널려 있다.
소셜 로봇이 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 만들어낸 전시물이 얼마나 그럴듯한지는 각종 요소기술(동작, 표정, 음성 및 화자 인식)을 엮어내는 솜씨에 달려 있다. 핸슨 로보틱스나 엔지니어드 아츠는 다른 회사나 연구소들에서 개발된 기술을 가져와 통합하는 솜씨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그런 노하우가 축적된다면 먼 미래에는 체계적인 기술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지난 17일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인공지능 국제 규제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소셜 로봇에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와는 달리 현실 기술에서 출발해 미래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과학저술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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