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음감도 불편한 불면인, 오늘도 숙면을 꿈꾼다 [ESC]

한겨레 2023. 7. 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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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자는 것도 일이야
모기가 물어뜯는 건 참아도 왱왱대는 건 못 참는
나는 선택적 소음과민증후군 ‘미소포니아’?
귀마개로 소란한 바깥세상 차단하고
혼자 노래방에서 질러대며 정면승부
게티이미지뱅크

“수면 시간이 평균 4~5시간이에요.”

방송에 나온 박칼린 음악감독이 한 말이다. 오, 반가워라. 불면증 동지였다니. 그는 잠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선잠이 일상이었다. 청각이 예민한 탓이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에도 진저리쳤고, 무소음 냉장고가 출시되면 1억을 주고라도 사겠다고 했다. 집 안에 시계도 없단다. 초침 소리가 선율로 들려서라나. “밤에 모기가 날아다닌다? 당연히 잡고 자야죠. 으으, 그 주파수 높은 소리!”

감독님, 저 그거 뭔지 알거든요. 모기가 물어뜯는 건 참아도 왱왱대는 건 못 참겠는 거. 동침하는 사람은 죄가 없지만 코 고는 소리는 죄가 되는 거. 째깍째깍 소리가 거슬려 멀쩡한 시계를 무소음 시계로 바꾸고야 마는 거. 몸부림치다 겨우 잠들었는데, 소음 때문에 깼다? 휴,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른 심정이 이해됩니다.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은 소리에 예민한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시력 나쁘지, 후각은 비염 있지, 웬만해선 다 맛있는 걸 보면 미각도 둔하지. 오감 중 유난히 발달한 게 청각이다. 피아노를 오래 쳐서인지 절대음감이다. 이게 좋은 게 아니다. 불편하다. 내가 무슨 임윤찬이나 조성진이나 손열음인 것도 아니잖나.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이라면 삶만 팍팍해진다. 일이든 글쓰기든 집중해야 할 때 남들처럼 이어폰 꽂고 음악 듣는 건 꿈도 못 꾸니까. 불면이 심할 땐 별거 아닌 소음도 천둥소리 같으니까.

‘미소포니아’라는 말이 있다. 오은영 박사가 방송에서 박칼린 감독한테 한 말이다. 그리스어로 혐오감을 뜻하는 ‘미소스’에 소리를 뜻하는 ‘포네’가 더해진 용어다. 나도 해당할까. 소음 때문에 못 자는 당신은 미소포니아일까,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소음에 민감하다고 무조건 미소포니아인 건 아니다. 기준이 뭘까.

미소포니아는 특정 소리에 불쾌해지는 거다. 이때 소리는 꼭 데시벨이 꼭 크진 않다. 이를테면 이런 소리다. 먹을 때 쩝쩝거리는 소리, 껌을 짝짝거리며 씹는 소리, 음료수 홀짝거리는 소리, 수저로 그릇 긁는 소리, 키보드 소리, 시계 초침 소리, 휘파람 소리, 볼펜 소리, 코 고는 소리, 양치질·침 뱉기·기침·딸꾹질처럼 입으로 내는 소리. 더러는 숨소리가 불편하다는 이들도 있다.

반면 이런 소린 어떤가. 공사 현장에서 들리는 굴착기나 드릴 소리, 꽉 막힌 도로 위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 요란한 전투기 소리 같은 거. 말 그대로 소음이랄 수밖에 없는. 귀가 찢어질 듯 시끄러운. 불쾌감을 느끼는 소리가 단지 이런 소리로 국한된다면 당신은 미소포니아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데시벨 높은 소리를 견디기 힘든 것일 뿐이다. 미소포니아가 ‘선택적’ 소음 과민증후군, ‘선택적’ 청각과민증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가만 보자. 나는 뭐지? 냉장고, 수도꼭지 소린 괜찮고. 쩝쩝거리거나 껌 씹는 소리 괜찮고. 음악 소리, 코 고는 소리, 초침 소리가 싫긴 한데, 항상 싫은 건 또 아니고. 미소포니아일까? 글쎄. 어쩌면 소리보단 상황이 관건인지도. 평소엔 무감하다가도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거나 잠을 잘 때 예민해지는 걸 보면 말이다.

방법이 있긴 하다. 귀마개. 안다. 고루한 방법인 거. 그래도 고수한다. 많이도 썼다. 침대와 책상 주변에 늘 굴러다닌다. 형광 빛깔로 존재감을 뽐내는 그 소박한 폴리우레탄 뭉텅이는 푹 자고 난 이튿날처럼 푹신푹신해서 정감 있고, 소란한 바깥세상과 나를 격리해주는 신박한 발명품이다. 내 안에서 뭐든 길어 올려야 할 때마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물꼬를 터준다. 집중의 중추요, 몰입의 생명수랄까. 잘 때도 끼는 것과 안 끼는 건 천양지차다. 수면에서 몰입의 궁극이 숙면이라면, 불면인에게 귀마개는 필요조건이라 해도 되지 않겠는가. 비록 불면이 완치되는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또 다른 비책도 있다. 다름 아닌 ‘혼노’(혼자 노래방 가기)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연차를 쓰기로 한 적이 있다. 못 잔 잠을 몰아 자려는 심산이었다. 휴대폰부터 무음으로 돌렸다. 알람 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암막 커튼도 쳤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나무늘보 되기가 목표였는데, 이런 젠장.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들려오는 굉음이라니. 하필 그날 이웃집 인테리어 공사라니. 귀를 틀어막고 자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아까운 연차만 날렸지 뭐…로 끝나면 내가 아니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소리에는 소리.

소음 때문에 못 잔 내가 찾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래방이었다. 대낮이다 보니 닫힌 곳이 대부분이라 한참을 헤맸다. “혼자세요?” “예.” “5천원 깎아드릴게요.” 할인도 고마운데, 30분 서비스까지. 역시 대한민국 인심은 죽지 않았다. 요새도 이따금 그렇게 논다. 댄스, 발라드, 트로트, 팝 등등. 혼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막 부른다. 그중 최고는 메탈과 록이다. 젠지 세대 앞에서 부르면 ‘늙다리 장르’ 취급받지만, 혼자 놀면 눈치 볼 필요도 없잖은가. 율동까지 해주면 더 좋다. 무슨 효과가 있냐고? 밖으로 나오면 귀가 먹먹해져 청각이 둔해지는 효과. 막춤을 추면 운동한 효과까지. 그날은 그렇게 기절하는 거지.

‘자는 것도 일이야’를 연재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안타깝게도 내 불면은 완치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잠 못 드는 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코너 덕에 단행본 계약을 하게 된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이제는 못다 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친다. 지면에 못 담은 이야기는 조만간 출간될 제 책으로 봐주세요…라고 쓰려니 민망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좀 뻔뻔해지련다. 전국 50만 불면인 여러분, 모쪼록 숙면하는 밤 보내시길.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요.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침실 시계는 치우거나 무소음으로 바꾸자. 초침 소리는 자꾸 시간을 의식하게 한다. 지금이 몇 시네, 이 시간까지 또 못 잤네, 좀 있으면 날 밝겠네, 같은 생각들. 안 좋다. 잠만 더 달아나니까. 혹자는 ‘공업용 귀마개’를 추천하더라. 멤브레인 소음감소용 필터를 장착하거나 초코송이같이 생긴 실리콘 제품인데, 나는 아직 못써봤다. 써보신 분들 후기 좀 들려주시라. 불면증 동지잖아요.★★★★★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방송기자를 거쳐 디지털 뉴스매체, 디지털 영화 매체를 맡고 있다. 엠비티아이(MBTI) 중 파워 제이(J) 성향이지만, 10년 이상 장기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책, 영화, 명상이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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