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값 떨어질까 산사태 방지시설 반대? 사유지가 위험하다

한겨레 2023. 7. 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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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폭우][한겨레S] 현장
경북 산사태 피해
지난 15일 경북 예천군의 한천이 범람해 은풍면의 군도인 은풍로가 유실됐다.

산이 무너졌다. 경북 예천·영주·봉화 등이 산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명이 죽고 2명이 실종됐다. 장마가 폭우로 돌변하면서 경북 북부를 할퀴고 간 것이다. 물이 토석과 만나면서 중력에 의해 밀려 내려간 모습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산속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토석류는 크고 작은 바위와 20m가 넘는 나무 등이 엉켜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이번 산사태 피해 중에서 토석류가 가장 크게 휩쓸고 간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는 마을이 있던 자리가 크고 넓은 계곡이 펼쳐진 것처럼 모양이 변했다. 주택과 농경지, 도로가 하천까지 그대로 긁혀 나갔다. 농업용 트럭을 비롯해 승용차·트랙터·콤바인·굴착기 등이 장난감처럼 흙더미에 처박혔다. 집과 농업창고 등 건축물의 지붕 외벽 철판과 철골은 부러지거나 찌그러져 있었다. 마을 전체가 피해를 당한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감천면 벌방리, 은풍면 금곡리 등을 방문했을 땐, 주민들과 눈빛을 마주치기가 송구한 분위기였다. 직접 피해를 입은 주민이나 무사했던 주민이나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 경북 산사태 현장 영상

정부, 기후위기를 ‘유행’으로 인식

7월14일 경북 북부 지역의 호우는 오후부터 시작됐다. 봉화·영주 곳곳에서 오후 4~5시부터 도로의 아스콘이 빗물에 침수되기 시작했다. 밤이 되고부터 비는 더 강해졌고 산사태는 15일 새벽에 터졌다. 산사태 피해는 백두대간을 끼고 있는 지역(문경·예천·영주·봉화)에 집중됐다. 소백산 자락인 예천군과 영주시를 거쳐서 태백산 자락인 봉화군까지 피해가 나타났다. 인명 피해가 컸던 예천군 효자면(옛 상리면) 백석리는 백두대간 주 능선이 마을에서 1.2㎞ 떨어진 곳이다. 영주 삼가리도 4.7㎞ 거리다. 백두대간 산줄기에 갇혀 뭉쳐지기 시작한 비구름은 저녁부터 덩치를 더 키웠다. 예천에서 동북 방향으로 흘러가듯이 쏟아진 폭우는 곳곳에서 산사태를 발생시키면서 영주와 봉화로 흘러갔다.

7월20일 현재 조사 중인 산사태 현장은 문경·예천·영주·봉화 등에서 150여곳으로 추산되고 있다. 예천 금곡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농경지나 과수원 등 생활 공간 위쪽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금곡리에선 한국수력원자력의 양수발전소 관리시설에 산사태가 나면서 2명이 숨졌다. 발전소 관리도로의 노반 3곳이 무너지면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을 덮친 전형적인 인재였다. 앞으로 정밀한 원인 조사를 통해 산사태 발생의 인과관계를 밝혀야 할 것이다. 산사태는 최초 발생 지점이 중요하다. 어디서 터졌느냐가 물리적 양상은 물론이고 원인까지 규정짓는다. 산사태의 시작은 미약해도 끝은 장대하다. 빗물이 토석과 만나 중력에 내몰릴 때 폭발적인 힘으로 아래의 모든 것을 쓸어 버리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던 대형 산사태는 모두 4차례였다. 1996년 7월 철원 산사태로 5사단과 15사단 등 국군 장병 41명이 사망했다. 2011년 7월26~28일 서울 우면산 산사태로 17명이 죽었다. 그해 7월27일엔 춘천 마적산이 무너져 인하대 학생 등 13명이 숨졌다. 2020년 8월에는 전남 곡성에서 5명, 경기 가평에서 3명 등 전국에서 12명이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강우의 양상은 점점 강해졌고 2020년 여름 폭우는 기후위기가 한반도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 피해를 겪으면서 정부는 교훈을 찾고 대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은 크게 변한 것이 없음을 2023년 예천·영주·봉화가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변하지 않는 것은 인식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시대적 유행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계절이 바뀔 때부터 외국에서 전해 오는 기록적인 기후재난의 참변을 남의 일로 생각한다. 기후위기에서 재해재난은 적응대책에 포함된다. 그런데 환경부의 기후위기 적응대책에는 산사태건 산불이건 구체적인 문제의식과 고민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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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드론으로 촬영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산사태 현장. 이번 호우에 주택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곳으로 마을 뒷산 산태골 계곡 위쪽 9부 사면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주택 10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사태 취약지구? “부동산값 떨어져”

올해 피해 지역인 예천 백석리와 벌방리는 ‘산사태 취약지구’가 아니었고 ‘산사태 방지시설’도 없었다. 주변 산지가 사유지라 예천군과 경상북도는 지구 지정과 시설물 설치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산사태 정책과 대책은 국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유지는 ‘산사태 위험과 시설물을 공식화하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는 저항이 있었다. 정부도 국회도 법 개정을 통해서 사유지에 적극적인 산사태 방지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산불은 대형화·일상화해도 인명 피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사태 인명 피해는 오히려 늘어났다. 이번 장마도 경북·충남·전북에서 기후위기 재난의 양상을 똑똑히 보여줬다. 경북 산사태 피해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우리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경고음을 울려주고 있다. 치수, 산지 관리를 기후위기 적응대책 차원에서 전면 재구성하라는 요구다.

산사태 대책의 최우선 목표는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행정력을 동원하고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피해 발생 지역 복구 중심이 아닌 피해가 발생해도 인명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세밀한 매뉴얼이 가동돼야 한다. 호우예보가 있으면 읍·면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에 측정된 강수량을 확인하고 움직여야 한다. 일일 강우량이 30㎜ 이상이면 읍·면 단위로 재난 문자를 발송하는 것이다. 산사태 경고 대피 문자를 발송하면서 대피 위치도 특정해 전파하는 방법이 있다. 지금까지의 재난 문자는 시·군 단위 추상적인 내용뿐이었다. 또 읍·면사무소는 이장들과 실시간 소통하면서 곧바로 대피 지시를 하고 취약한 곳은 읍·면 직원이 직접 마을로 출동해야 한다. 산사태 위험이 큰 농산촌에는 인구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정책의 결심만 있으면 가능한 방법들이다.

지금까지 산사태 재해를 겪으면 정부는 항상 과거 대책의 연장선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같은 참사를 맞이했다. 국토의 64%가 산지인 우리 현실에서 산사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재해재난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주민들의 협력에 따라 인명 피해는 현격히 줄일 수 있다. 우리의 경제력과 사회 수준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은 충분히 가능하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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