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고소하고…강낭콩의 ‘여름 전성기’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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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맞은편에 은행이 하나 있다.
잘 씻은 강낭콩을 밥할 때 슬쩍 섞어 소금 한꼬집을 넣고 밥을 지으면 밥솥 전체가 달고 고소해진다.
다양한 강낭콩의 색깔 때문에 그때그때 달라지는 콩물의 색깔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소금간 혹은 설탕 간을 조금 해서 먹는 콩국물은 또 다른 느낌의 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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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전후 수확량 늘고 제맛
밥·샐러드에 넣으면 ‘포만감’
색다른 콩국에 콩국수 변주
“할머니, 이거 강낭콩이에요? 색깔이 너무 예쁜데요?”
광장시장 맞은편에 은행이 하나 있다. 그 은행 계단 아래에 오랫동안 군밤과 은행을 구워 파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시는데 이렇게 더운 철이 되면 콩을 까서 옆에 놓고 같이 파신다. 할머니와 나는 10여년 된 사이다. 손짓을 하며 옆에 앉아보라 하신다.
“이게 딱 지금 제일 맛있어. 불리지 말고 밥에 넣어서 그냥 밥을 해. 지금 콩은 안 불려도 맛있어!”
여름콩은 완두에서부터 시작된다. 초록색 완두가 많이 보일 때즈음 강낭콩, 누에콩, 울타리콩, 호랑이콩도 줄지어 시장에 나타난다. 이후 가을까지 서리태, 쥐눈이콩, 백태 등이 계속 나오고 더 열거하기도 힘든 많은 콩 종류들이 또 줄을 잇는다. 왠지 콩 수확이라고 하면 가을이 절정을 이룰 것 같지만 사실 여름에, 특히 장마 전후로 많은 종류의 콩을 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할머니 말씀처럼 지금이 강낭콩의 전성시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한 자줏빛의 강낭콩(서양에서는 콩팥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kidney bean’이라고 부른다), 전체가 하얀 흰 강낭콩, 색이 얼룩덜룩한 호랑이 콩, 크기가 좀 더 크고 통통한 울타리콩, 연한 커피색을 띤 갈색콩 등 모두가 모양과 색·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른 ‘강낭콩’이다. 중국의 강남(장난)에서 온 콩이라 ‘강남콩’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올바른 표기는 강낭콩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껍질콩, 줄기콩으로 불리는 ‘스트링빈’도 껍질째 먹는 강낭콩의 일종이다. 스트링빈 역시 지금이 제일 맛있을 때다.
콩은 무조건 삶아 먹는다. 안 익혀 먹으면 맛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배탈이 난다. 익혔을 때 생기는 단맛과 고소한 맛도 물론 매력이다. 여름 콩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밥에 넣어 따뜻하게 먹는 것이다. 불릴 필요가 없어 무척 간단하다. 잘 씻은 강낭콩을 밥할 때 슬쩍 섞어 소금 한꼬집을 넣고 밥을 지으면 밥솥 전체가 달고 고소해진다.
흰 강낭콩이나 호랑이콩은 소금을 살짝 넣은 물에 15분 삶은 뒤 찬물에 헹궈서 샐러드에 토핑해서 먹는다. 마늘, 양파, 식초, 설탕, 간장, 올리브오일을 동량으로 넣고 드레싱을 만들어 비벼 먹으면 포만감까지 만족스러운 콩 샐러드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건강식 후무스도 강낭콩으로 만들 수 있다. 강낭콩을 15분 삶아 건져 물기를 빼고 마늘, 올리브오일, 약간의 소금을 넣고 되직하게 갈아 만들면 끝이다. 빵을 곁들여 상에 내면 근사한 요리가 된다.
껍질콩은 살짝 끓는 물에 1분 정도만 삶아 건져낸 뒤 마늘과 까나리액젓 몇 방울을 넣고 기름에 볶는다. 간단히 볶기만 해도 아삭한 맛에 감칠맛이 배어들어 반찬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뭐니뭐니해도 여름엔 콩국수인데 강낭콩으로도 콩국수가 가능하다. 15분 삶아 건진 콩에 콩 삶은 물과 두유를 살짝 더해 믹서에 곱게 갈아준다. 서리태나 백태처럼 진한 고소함이 느껴지는 대신 단맛이 강한 콩국물이 완성된다. 다양한 강낭콩의 색깔 때문에 그때그때 달라지는 콩물의 색깔이 왠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소금간 혹은 설탕 간을 조금 해서 먹는 콩국물은 또 다른 느낌의 신세계다. 껍질이 거슬리면 더 곱게 갈거나 체에 한 번 걸러서 마시기 좋게 만든다. 국수를 말아도 좋지만 강낭콩 콩국물엔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이 잘 어울린다. 달큰한 콩국물에 흐느적한 묵. 거기에 열무김치의 적당히 익은 새콤함을 더해주면 입안은 곧 축제다. 콩국물은 자연스레 소스처럼 입에 퍼지고 아삭한 식감의 열무가 상쾌하게 느껴진다. 흔하디흔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여름의 맛, 그러나 알고 챙겨 먹으면 횡재처럼 느껴지는 게 바로 여름 콩의 맛이다.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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