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정보국 “中 조선 능력 美 233배”… 한국, 원자력잠수함 확보 절호의 기회
관급 사업으로 먹고사는 美 조선업
영원할 것 같던 미국 조선업의 영광은 일본과 유럽 등 경쟁국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군함 개발 및 건조 기술에서 세계 1등을 유지하는 미국도 자국 조선업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건함 능력이 쪼그라든 것이다. 높은 인건비와 열악한 설비 탓에 미국 조선소는 경쟁국에 비해 비용은 2~3배 비싸고, 납기는 늦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선사는 선박 발주처를 미국에서 한국과 일본, 유럽 등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주요 조선사는 자국 해군과 해안경비대가 발주하는 특수선 사업으로 먹고사는 신세로 전락했다.2020년 미 해군이 차세대 호위함 건조 사업자로 이탈리아 핀칸티에리를 선정한 것은 미국 조선 산업의 굴욕이었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록히드마틴과 제너럴 다이내믹스, 헌팅턴 잉걸스 등 미국 회사 3곳과 호주 오스탈의 미국 법인,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의 미국 법인을 합쳐 총 5곳이었다. 당연히 미국 업체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수주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미 해군은 이탈리아 핀칸티에리가 제시한 FREMM급 호위함 개량안을 채택한 것이다. 미 해군이 자국 업체들을 배제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탈리아 업체가 제안한 호위함 모델의 성능이 가장 우수하면서도 값은 저렴했기 때문이다.
미 해군의 자국 조선업계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건함 역사상 최악의 실패로 꼽히는 연안전투함(LCS) 프로그램이다. 미국은 LCS 프로그램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두 종류의 함정을 개발했다. 문제는 이들 함정이 '함장의 무덤'이라는 비판 속에서 취역 후 10년도 못 채운 채 연쇄 퇴역 중이라는 점이다. 당초 꿈의 전투함이라는 평가를 받던 줌왈트급 구축함은 1척에 4조 원 넘는 엄청난 건조 비용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후 비용이 늘어나 3척만 건조된 채 사업이 종료됐다. 초도함이 취역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아직 확실한 용도조차 정하지 못해 이런저런 개조 공사만 계속되고 있다. 미 해군이 1980년대 초반 등장한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설계를 40년 넘게 이리저리 뜯어고치면서 동형함을 100척 가까이 찍어낸 이유도 여기 있다. LCS 프로그램 등 신형함 개발 및 건조 계획에 잇달아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 조선사의 군함 건조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기에 이런 잡음이 생기는 것일까. 미국 군함은 대부분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자회사 일렉트릭 보트와 배스 아이언 웍스, 헌팅턴 잉걸스의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건조한다. 해군과 해안경비대가 발주한 선박을 주로 건조하는 곳이기에 조선소 면적, 도크, 각종 지원시설 규모가 한국·일본·유럽의 공룡 조선사들에 비해 영세한 편이다. 미국 최대 군함 건조 시설이라는 뉴포트뉴스 조선소 규모도 한국 HD현대중공업의 3분의 1,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의 절반이 안 된다.
美 원잠 수리받으려면 2년 기다려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21년 7월 특집을 통해 자국 조선업의 심각한 상황을 분석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상선 4만4000여 척 가운데 미국 선적은 200척이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해외 교역에서 자국 선적 상선이 담당하는 물동량은 1%가 채 안 됐다. 매년 1000척 이상을 찍어내는 중국과 달리 미국 조선소의 연평균 선박 건조 수량은 10척 안팎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함 수천 척을 찍어내고, 1만4000t 넘는 대형 수송선을 닷새 만에 만들 정도로 눈부셨던 미국 조선 산업은 이제 민간시장의 대형 선박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이다.미국 조선 산업이 관급 사업에 의존해 연명하는 처지가 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보호막 때문이다. 미국은 상선법, 일명 '존스법(Jones Act)'에 따라 모든 군함을 국내 조선소에서만 건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3곳뿐인 데다, 매년 미 해군이 안정적으로 일감을 발주해준다. 그 결과 미국 조선소의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 해군이 보고 있다.
최근 미국 조야에서는 자국의 열악한 조선 인프라를 잇달아 지적하고 있다. 만에 하나 중국과 충돌하게 된다면 승패는 바다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전투함을 마치 복붙(복사·붙여넣기)하듯 대량으로 찍어내는 중국과 달리, 미국의 군함 건조 속도와 유지·보수 능력은 형편없는 실정이다. 최근 유출된 미 해군정보국(ONI)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조선 능력은 미국의 23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조선 능력이 10만GT(Gross Tonnage·총톤수) 안팎인 것에 비해 중국의 조선 능력은 2325만GT에 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과 공격용 원잠을 연평균 각각 1~2척씩 건조하고 있다. 중국이 1년 동안 동시에 이지스급 구축함 5~8척과 호위함 3~4척, 원잠 2~3척을 건조하는 것과 대비된다.
방한 美 해군 당국자 "세계적 수준 조선소 찾았다"
이처럼 녹록지 않은 현실에 미국은 '플랜 B'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미 해군은 2월 7일 함정 프로그램 총괄책임자인 토머스 앤더슨 해군 소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했다. 대표단은 방위사업청에서 실무회의를 갖고,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HJ중공업을 차례로 방문해 각 조선소의 건함 능력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해군 보도자료에 따르면 앤더슨 소장은 "미 해군의 수상함 도입 전문가로서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조선 능력을 추구한다"며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조선소를 찾으러 왔고, 그것을 찾았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계의 건함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미 해군과 국방부는 "중국과의 건함 경쟁에 발맞춰 존스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언론과 정치권에 호소하고 있다. 미 해군이 주장하는 연평균 필요한 군함 건조 물량은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2척, 차기 호위함인 컨스털레이션급 4척, 버지니아급과 컬럼비아급 등 핵잠수함 4척이다. 중국의 해군력 팽창을 쫓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 조건이지만, 미국 조선 산업이 이를 충족할 수는 없다. 존스법 폐기 요청이 당장 받아들여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군 당국은 일본, 영국, 스페인 조선소에 군함 정비 계약을 발주하는 등 동맹국 인프라를 활용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동맹국의 군함 정비 능력을 빌리는 것 정도로 미국의 조선 인프라 부족을 해결할 수는 없다. 미 해군의 건함 계획을 살펴보면 당장 수상함 세력의 양적 팽창을 위해 단기간에 대량 건조해야 하는 컨스털레이션급 호위함 물량만 해도 상당하다. 특히 원잠 건조 역량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현재 노후한 미 해군의 공격원잠을 대체하기 위해선 2032년까지 신규 원잠 17척을 건조해야 한다. 여기에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개국 안보협의체) 회원국 중 호주 몫인 공격원잠 3~5척까지 더해져 미국 원잠 건조 능력은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한미 이해관계 일치점 '공격원잠'
한국은 수상함은 물론, 잠수함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건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북한의 SLBM 위협이 심화되면서 이에 대응할 공격원잠 도입 필요성도 높은 나라다. 원잠 수급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의 이해관계는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이 제공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이 공격원잠을 대량 건조하면 양국은 서로에게 절실한 안보상 급선무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 해군이 공격원잠을 대거 보유하는 것은 당장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미 선례도 있다. 미국이 오커스를 통해 호주와 하려는 협력을 한국과도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하면 된다. 이는 곧 정치의 영역이다. 한국 정책 결정권자들이 미국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보고 적절한 협상 카드를 꺼내 들 필요가 있다. 한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포인트를 공략한다면 한국은 공격원잠을 획득해 북한 SLBM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거시적으로는 한미동맹 강화와 국제 위상 격상 등 안보상 이득도 기대해볼 만하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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