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 자신 있는데.." 김환기의 고뇌 '하늘 한 점'으로 [주말, 이 전시]

정자연 기자 2023. 7. 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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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인 김환기ⓒ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끝없이 펼쳐진 푸른 빛의 점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모였다가 저 멀리 심연으로 흩어진다.

광활한 기개와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장엄한 광경. 밤하늘 푸른 화면으로 유명한 ‘우주’(원제 ‘5-Ⅳ-71 #200’)로 잘 알려진 김환기(1913~1974)는 일본과 프랑스·미국을 오가며 치열하게 자신만의 추상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를 ‘점’으로 완결했다. 

김환기가 걸어온 40년 추상 여정을 총망라 한 대규모 회고전 ‘한 점 하늘 김환기’가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환기는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 어떤 사유를 담아냈을까. 

연꽃, 도자기, 매화가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나타나는 파상성문양의 산들이 표현돼 있는 '영원의 노래'(1957년) 정자연기자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전시는 달과 항아리 등 자연물과 한국적 정서에 몰두해 풍경과 정물을 재구성한 작가의 초기작부터 점묘화 등 대표작을 선보인다.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1부에서는 자연을 세련되고 서정적으로 표현한 김환기의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937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환기는 한국의 전통과 자연에 깃든 미학적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구성하는 데 몰두했다.

맨 처음 만나는 그의 초기작 ‘달과 나무’(1948)는 하얀 배경을 바탕으로 커다란 달을 그렸다. 자연을 대상으로 했으나, 제한된 색채와 단순화한 구도는 추상 예술에 대한 그의 의지를 드러낸다.

그 정점은 1950년대 파리 유학 시절 달항아리를 통해 드러난다. 달항아리는 김환기 초·중기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달항아리를 추상화하거나 여러 방식으로 구도를 달리해 캔버스에 그려냈다.

김환기가 1960년 작업한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 김환기 회화를 구성했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색면 위에 어울려 있다. 정자연기자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여인과 사슴, 항아리, 꽃, 산, 나무 등 1950년대 김환기 회화를 구성했던 거의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진 ‘여인들과 항아리(1960)’는 김환기 그림 중 최대 규모인 281.5×567㎝ 크기의 벽화다.

애초 1950년대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전시 준비 중 발견된 김환기 수첩을 통해 제작 연도가 1960년이라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그는 수첩에 이 작업을 하며 꽤 힘들고 고뇌했던 당시의 심경을 글로 남겼다.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괴로워 하기도 하며 다음 날은 지쳐서 종일 자고, 다시 의지를 다지는 마음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하늘 한 점 김환기' 전시가 열리고 있는 호암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정자연기자

2부 ‘거대한 작은 점’은 김환기의 미국 뉴욕 이주 시기인 1960년대 이후의 점화 작품을 보여준다. 이미 추상화 선구자로 자리를 잡은 그가 미국 무대에 진출하면서 겪은 실패와 도전, 예술가로서 본질에 접근하려는 고뇌와 예술에 대한 갈망이 드러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역경을 거치고서 마침내 김환기의 거대한 작은 점, 전면점화가 탄생한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동양적 사고와 시적 정서로 삶을 관조하는 전면점화라는 독창적 예술 세계를 이뤄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김환기의 점화 작품 시대를 연 대표작이다.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1970)’에서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김광섭 시인(1905~1977)의 시 ‘저녁에’ 속 시구를 인용했다.

“완성의 쾌감. 예술은 절박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1965년 1월11일) .

“아, 좋은 그림 그릴 자신이 있고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은 왜 이리 적막할까”(1965년 1월 13일). 

“내 재산은 오직 자신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 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1967년 10월13일) . 

작품 옆에 적힌 작업 일지엔 이미 최고의 위치에 섰으면서도 대중에게 인정받고 예술 그 자체를 끝없이 탐구한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결국 김환기는 그 작은 점 하나하나에 자연과 인간, 예술을 아우르는 보편적 세계를 담은 것은 아닐까.

김환기가 61세 사망 때 까지 예술적 고뇌 속에서 잉태한 화풍의 변화와 생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9월10일까지 이어진다.

삽화 스크랩 북 등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김환기 작가의 자료들. 정자연기자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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