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화약 직판-대리점들 "대기업 갑질" 집단반발
한화 "일부 대리점 잇단 폭리 항의, 불가피한 조치"
[제천=뉴시스] 이도근 기자 = 한화그룹이 산업용 폭약의 직접 판매를 확대하면서 전국 화약 대리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충북과 강원 지역 대리점들도 생계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고 반발하며 시위 등 단체행동에 나섰다.
"대기업의 갑질"이라는 대리점들의 주장에 한화 측은 대리점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항의가 잇따르는 등 계약사를 보고하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강원 인제화약 이영희(65) 대표는 지난 20일 충북 제천시 송학면 한화 충북영서지사 입구에 플래카드를 걸고 1인 시위에 나섰다.
플래카드에는 '㈜한화는 영세대리점 다 죽이고 짓밟는 화약직판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대표는 "한화가 대리점들과 아무런 설명이나 협의도 없이 업체를 상대로 직접 판매에 나선 것은 결국 우리 보고 고사해 죽으라는 얘기"라며 서울 한화 본사와 여의도 국회,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예고했다.
앞서 지난 18일 한 일간지에는 전남서부화약, 충북 청원화약 임직원, 한화 화약 직판저지 충청·호남 대책위원회 명의로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 산업용 화약류 직판을 중단해 주십시오!'라는 호소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또 전남서부화약 등은 지난 4일부터 광주 광산구 양동 한화저장소 서부지사 앞에서 수차례 집회를 열고 한화의 산업용 화약류 직판을 비판하고 있다.
길게는 수십년 간 한화와 거래를 이어온 대리점들이 이처럼 반발하고 있는 것은 한화가 최근 산업용 화약류의 직판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는 지난해 10월부터 제천지역 현장을 시작으로 경기, 강원, 전남 등 대형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직판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급순위 상위권의 1군 토공전문건설업체들과 단기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최근에는 계약업체수를 배 이상 확대하며 직판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리점들은 특히 산업용 화약류 공급자의 지위를 가진 한화가 직판을 빌미로 대형 건설현장 거래처를 잠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행위는 전형적인 대기업의 갑질이라고도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한화 측이 지역 거점 역할을 해 온 대리점들을 무시하고 사전 협의 없이 직판에 나서면서 영세한 대리점들의 생존권을 짓밟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화의 폭약을 건설·토목현장 등에 판매하는 대리점은 전국 50여곳이다. 충북의 경우 제천·단양지역은 강원지사, 나머지 시·군은 서부지사가 관할한다.
개발이 한창이던 1970~1980년대에는 전국에 70여 대리점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개발사업 정체 등의 영향으로 크게 줄었다. 그나마도 업체별 순이익은 1억여원 정도로 사업규모가 영세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의 직판 확대로 대리점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전남서부화약은 1960년대부터 전남 일부 지역 건설현장 등에 산업용 화약을 판매해 왔으나 최근 매출 감소로 대리점을 유지하기 어려워 인근 3개 대리점을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화가 대리점이 공급하던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 관련 다수의 현장 등에서 직판을 시행하면서 40% 정도 매출이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충북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내 A대리점은 지난해부터 주요 거래처가 직판으로 돌아서며 경영상 위기를 호소했고, B대리점도 대형 건설현장의 일감을 빼앗기며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내 대리점 관계자는 "일부 거래처의 경우 지역업체 상생을 이유로 한때 계약을 되찾아오기도 했지만, 계약 문제 언급 등 협박성 발언에 결국 다시 거래처를 내줘야 했다"고 했다.
대리점들은 직판이 확대되면 지역의 영세 대리점들에게는 휴·폐업하거나 보유했던 저장소를 한화에 매각 또는 임차하고 사업을 포기하는 방법 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한화의 직판은 장거리 운반이 불가피해 안전사고 위험성도 커진다고 했다.
폭약은 이동과정에서 사고 발생 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이동거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동안 대리점들이 보유한 저장소가 폭약 운반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리점 저장소를 거치지 않고 폭약이 운반될 경우 길게는 수십㎞ 거리를 더 달릴 수밖에 없어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대리점들의 이러한 주장에 한화 측은 일부 대리점들이 화약 가격을 높이거나 별도의 웃돈을 받는 등의 항의가 수차례 접수돼 계약 공사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직판에 나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화 관계자는 "일부 지역 대리점의 경우 현장 독점 공급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남용, 판매가를 과도하게 높이거나 운반비를 별도로 책정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이 같은 민원이 회사로 접수되고 있어 기본계약에 따라 직접 공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화 계약업체가 아닌 비계약 업체의 현장이 공장도가의 130% 이상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있으며, 판매가를 높이지 못하는 현장에는 운반비를 별도로 받는 등 대리점 이익 만을 우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사고 우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대리점들보다 한화가 안전 부문에 더 많이 투자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단순히 이동거리를 가지고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화도, 대리점도 사실상 시장경제 안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한화가 직판하면서 중소 건설업체와 영세 발파업체들은 보다 합리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사회적인 효과와 이익도 더 크다"고 했다.
한화 측의 이런 해명에 대해 대리점들은 "화약 특성상 안전 관리나 운반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건 한화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영세 업체들의 밥그릇을 빼앗아가려는 명분을 만든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일부 대리점 대표들은 한화와 대리점들이 대화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는 "국내 화약시장이 줄어들면서 내 주변의 영세 대리점들은 이직을 생각하거나 사업을 접어야 하는 고민에 처해있음에도 대기업이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시간을 갖고 한화와 대리점 간 절차와 방법 협의로 풀어간다면 원만한 해결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nulh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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