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청년 실업률 46.5%, 시진핑 “고통을 곱씹으라!”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82회>
“오늘날 중국의 대학에는 강의실마다 CCTV가 설치돼 있고, 강의 내용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최근엔 강의 중에 미국 경제 데이터를 사용했다고 경고받았다. 교수는 교안을 제출하고, 교안대로 강의해야 하며, 교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학교 당국의 지적을 받고, 다른 교수의 수업을 의무적으로 참관해야 한다. 미국에는 늘 제국주의라는 단어가 따라붙고,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사상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청년 실업률은 40~50%에 달한다. 권력 유지만을 신경 쓰는 시진핑이 2~3년 안에 진짜로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
최근 은밀한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전해 들은 중국 한 대학 어느 중국인 교수의 발언이다. 다른 모든 포인트는 차치하고 이 교수가 말하는 실제 청년 실업 40~50%는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
심각한 중국의 청년 실업률
세계 제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이 6월 말까지 석 달 동안 고작 0.8% 성장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이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인민은 체감하는 현실은 정반대이다. 소매 판매 부진, 부동산 투자 침체, 수출 실적 저조, 지방 정부 부채 등 산적한 문제로 중국 경제는 시방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지난 3월 국무원 총리 리창은 5%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중앙은행은 1년 만에 이자율을 다시 낮추는 강수로 소비 진작을 시도했지만, 중국 경제는 여전히 냉기를 못 벗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계속 증가하는 청년 실업률이 시진핑 정권에 짓누르는 골칫거리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발표에 따르면, 16세에서 24세까지 도시 지역 청년 실직률이 21.3%에 달했다. 올해 중국에선 사상 최대 수치인 1천 1백 58만 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쟁에 나선다. 2018년 이래 중국은 청년 실업률을 발표해 왔는데, 올해 중국 정부는 농촌 지역 청년 실업률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 얼핏 보면 청년 실업자들의 총수는 중국 도시 지역 잠재 노동력의 1.4%에 지나지 않지만, 대학 졸업 후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의 존재를 시진핑 정권은 무시할 수가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실로 위험해 보인다. 미국의 청년 실업률은 2020년 14.85%에 달했지만, 2021년 9.57%를 거쳐 2023년 현재는 6.5% 정도에 머물고 있다. 스페인, 핀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등 실업률이 높은 나라가 운집한 유럽연합의 평균 청년 실업률도 현재는 14% 이하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2019년 12%에 육박했으나 현재는 6% 정도이며, 일본은 4% 이하의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5년간 베트남과 필리핀은 5~7%를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경제 사정이 불안한 인도네시아도 13% 정도를 보인다. (macrotrends.net)
직접 선거나 국민투표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공산당은 오직 경제성장의 성과를 내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해 왔다. 1989년 톈안먼 대학살 이후 계속 인권과 자유를 제약당하면서도 중국 인민이 중국공산당을 지지해온 근본 이유는 경제성장의 결과 일자리가 늘어나고 살림살이가 나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중국에서 21.3%의 실업률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수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 통계국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는 도시 청년 절반이 실업 상태
베이징대학 경제학과 장단단(張丹丹)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3년 3월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을 46.5%에 달했다. 당시 정부에서 공표한 19.7%보다 무려 26.8%를 웃도는 수치다.
장단단 교수는 취업 준비생들 외에 상당수의 청년 노동력이 노동 시장을 벗어나 있다는 현실에 주목한다. 취업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의 노동력은 주변에서 관망하거나 무한정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면 자발적으로 노동력 시장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은 “좌절된 노동력” 혹은 “은둔성 실업 군체(群體)”라 불린다. 장 교수에 따르면, 국가통계국의 통계는 이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정확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실업률을 논하려면 반드시 노동 참여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3년 중국 국가통계국의 3월 발표를 보면, 16~24세 전국 도시 청년의 수치는 9천 6백만 명이다. 그중 3분의 2에 달하는 6천 4백만 명은 비노동 인력으로 분류되고, 나머지 3천 2백만 명만이 노동 인력이다. 노동 인력 3,200만 명 중에서 2,570만(80.3%)은 취업 인구이며, 630만(19.7%)은 실업인구로 분류된다. 문제는 비노동 인력으로 분류된 6,400만 명 중에서 진짜 학생은 4,800만에 불과하며, 나머지 1,600만은 실질적인 실업자라는 데에 있다.
그 1,600만 명은 현재 “탕핑(躺平, 납작 드러눕기),” “부궁쭤(不工作, 일 안 하기),” “컹라오(啃老, 부모 뜯어먹기)” 등을 하며 지내고 있는 이른바 “전업 자녀들”이다. 현실적으로 이들 1,600만의 비노동 인력은 실업 상태이므로, 중국의 실제 청년 실업률은 “(1600+630)/(1600+630+2570) = 46.5%”가 된다. 쉽게 말해 중국 국가통계국은 “납작 드러눕고, 일 안 하고, 부모를 뜯어먹는 전업 자녀들”을 모두 학생 신분으로 분류해서 지난 3월 청년 실업률을 억지로 19.7%로 축소했다는 지적이다.
“콩이지의 장삼,” 청년 실업자의 한탄
1919년 3월,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루쉰(魯迅, 1881-1936)은 다섯 쪽짜리 단편소설 “콩이지(孔乙己)”를 집필했다. 그 줄거리는 대충 다음과 같다. 1900년경 가상 도시 루전(魯鎭)의 한 선술집에는 잊힐만하면 나타나서 훔친 돈으로 따뜻하게 데운 술을 사서 마시면서 경전을 읊어대는 콩이지라 불리는 구시대 서생(書生)이 있었다. 날마다 좀도둑질로 연명하며 여기저기서 얻어터져서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는 절대로 남루한 장삼(長衫)만큼은 벗지 않았고, 외상값은 어김없이 갚았다.
쓸모없는 지식만 잔뜩 머리에 담고 밥버러지처럼 살아가는 비참한 지식인의 모습을 술집에서 허드렛일 돕는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20세기 초반의 이 이야기가 최근 중국의 인터넷에서 밈(meme)처럼 퍼지고 있다. 대학 졸업장을 갖고도 취업에 실패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서글픈 신세를 콩이지의 비참한 몰골에 빗대서 한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력은 못 내려오는 높은 누각이며, 못 벗는 장삼이라네.”
“콩이지가 장삼을 못 벗어 던졌듯, 나 역시 학력을 못 벗어 던지네”
“넌 콩이지가 아냐, 장삼 따윈 신경 쓰지 마!”
“왜 콩이지의 장삼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가?”
학력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밑바닥에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말자는 결의처럼 들리지만, 실은 대졸자 청년 실업자들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최근 7년 사이 대졸자가 736만 명(2015년)에서 1,158만 명(2023년)으로 무려 63%나 급증한 중국의 현실에서 입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콩이지의 장삼”은 결국 고급 인력을 수용할 수 없는 중국 경제의 현실적 한계를 상징한다.
고학력 실업자, “걸어 다니는 폭탄”
한국의 한 사회학자는 1960년 한국에서 대학 졸업한 후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려야만 했던 청년들 한 명, 한 명을 “걸어 다니는 폭탄”에 비유한 바 있다. 대졸 실업자는 “걸어 다니는 폭탄”이라는 비유는 중국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1989년의 경제 상황을 보면 당시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그토록 많은 학생, 노동자, 시민들이 합세했던 이유가 자명해 보인다.
당시 가격 개혁의 실패로 물가가 급등하고, 도시 실업률이 급증하고 (예: 1988년 상하이 실업률 14~25%), 인플레이션이 전년 대비 18~34%에 달하는 등 총체적 경제난이 중국 전역을 덮치고 있었다. 특히 15년에 40~60%의 증가 속도로 청년 인구가 가파르게 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률은 높아지고 있었다. 무섭게 성장하던 경제가 갑자기 침체기에 들어설 때 사회 불만이 고조되어 소외된 청년층이 신속하게 정치화할 수 있었다. (David G. Munro and Claudia Zeisberger, “Demographics: The Ratio of Revolution,” Insead, 2011)
반면 중국공산당이 1989년 베이징 도심에 탱크 부대를 보내서 대학살을 자행한 후에도 일당독재의 통치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바로 지속적인 고도의 경제성장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란 본래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이기 이전에 경제적 활동을 통해서 이익을 도모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이다. 경제적 풍요는 사회적 안일주의를 낳고, 경제적 궁핍은 정치적 모험주의를 부추긴다. 높은 청년 실업률이 청년의 정치화로 나아가는 계기일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25일부터 나흘간 중국 17개 주요 도시에서 성난 청년들이 일어나서 손에 흰색 종이를 들고서 “공산당은 물러나라! 시진핑은 물러나라!” 외치며 이른바 “백지 혁명”을 일으켰다. 놀란 시진핑 정권은 예상외로 서둘러 방역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덕분에 “걸어 다니는 폭탄”은 터지지 않은 채 일단 땅 밑에 묻혔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실업률은 더 큰 위기를 예시한다. 과연 시진핑 정권은 어떤 묘수를 써야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시진핑, “청년들아, 고통을 곱씹으라!”
지난 5월 1일 인민일보는 청년절 기념 시진핑 총서기의 연설을 대서특필했다. 1969년 산시(陕西)성 옌촨(延川)현에 16세 어린 나이로 하방(下放)됐던 신산스러운 과거를 회고하며 그는 청년들을 향해서 다섯 차례나 “스스로 찾아서 고통을 곱씹으라(自找吃苦)!” 촉구했다. 그는 “무수한 인생의 성공 사례가 보여주듯, 청년 시절 고통을 곱씹는 선택은 큰 수확의 선택”이라고도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한국어 속담과 비슷한 말 같지만, 그 속엔 섬뜩한 가시가 박혀 있다. 왜 하필 청년 실업률이 최고조로 달한 시점에서 시진핑은 문혁 체험을 언급하며 청년들의 고통 감내를 요구하고 나섰는가?
문혁 당시 산간벽지에 추방당했던 지식청년(知識靑年)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자신들을 희생시킨 최고 권력자의 음모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도시 청년 실업자들은 2천만 명에 달했다. 마오쩌둥은 그들을 농촌으로 보냄으로써 일거에 청년 실업의 문제를 해소했으며, 갈가리 찢겨서 서로 죽고 죽이며 무장투쟁에 나섰던 여러 도시의 홍위병들을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제압했다. (송재윤,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 [까치, 2022], 309~310쪽 참조).
그러한 문혁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은 진정 과거의 마오쩌둥처럼 도시의 청년 실업자들을 농촌으로 추방하려 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불만으로 가득 차서 “걸어 다니는 폭탄”처럼 도시를 배회하는 청년들을 향해 섣부른 행동일랑 생각지도 말라는 정치적 협박인가?
그 어떤 경우든 오늘날 중국이 언제든 필요하면 마오쩌둥처럼 청년들을 싸잡아서 산간벽지로 추방할 수 있는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국가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콩이지의 장삼”을 입지도 벗지도 못한 채 도시를 방황하는 중국의 청년 실업자들에게 고통을 곱씹으라는 최고 영도자의 요구는 무서운 선제공격이다. 마오쩌둥의 단 한 마디에 산간벽지로 추방당해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청춘을 빼앗겼던 50여 년 전 홍위병의 전설이 다시 현실이 되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계속>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