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說]"네 것도 내 것"…반간첩법으로 대만 반도체 탐내는 中

오진영 기자 2023. 7. 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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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 문 중화, 입 닫은 반도체②-대만
[편집자주]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 150조원 규모의 가전시장을 가진 중국은 글로벌 IT시장의 수요 공룡으로 꼽힙니다. 중국 267분의 1 크기인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호령하는 TSMC의 본거지입니다. 미국·유럽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과 어깨를 견주는 것은 물론 워런 버핏, 팀 쿡 등 굵직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았죠. 전 세계의 반도체와 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화권을 이끄는 중국·대만의 양안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중국과 대만 현지의 생생한 전자·재계 이야기, 오진영 기자가 여러분의 손 안으로 전해 드립니다.

중국이 대만을 탐내고 있다는 내용의 만평. / 사진 = 대만뉴스

"중국 현지에 파견된 직원에게 웨이신(위챗)으로 메시지를 보내다가 구속될 수도 있어 각별히 주의하고 있습니다."

21일 대만 반도체 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달부터 중국에서 시행된 반간첩법(방첩법 개정안)이 업계에 중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빌미로 대만 기업인들을 탄압하거나, 핵심 기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우려다. 이 관계자는 "미국 기업도 조사를 받는 판에 대만 기업은 말할 나위도 없다"라며 "현지에 지사나 파견 직원을 두고 있는 우리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중국 반간첩법의 칼날이 바다 너머를 향한다. 시진핑 총서기(국가주석)의 지휘 아래 '찌엔디에'(간첩)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포괄적이고 엄격한 규정을 제정하고 주요 기업을 감시하고 있다. 이른바 '못된 동생'인 대만이 주 피해자다. 이미 상당수의 대만 기업인이 출국 제한 명령을 받았거나, 계좌 동결 등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불황을 넘겨야 하는 대만 반도체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본토 의지하는 대만 반도체 기업들,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중국
/사진 = 조수아 디자인기자

중국 재계가 대만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고압적이다. 대만이 '중국 땅'인 만큼 기업도 중국 것이라는 인식이다. 국내에서 열린 한 경제단체의 행사에서는 중국 재계 인사들이 대만을 별도 국가로 표기한 우리 조치에 대해 단체로 항의하며 보이콧 엄포를 놓았다. 대만 경제를 책임지는 타이지디엔(TSMC)을 중국 정부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자주 제기된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공산당의 목소리와 같다.

당연히 대만 반도체 기업은 반간첩법의 1순위 적용 대상이다. 대만 반도체는 타이지디엔과 리엔디엔(UMC), 리엔파커지(미디어텍) 등 세계적 수준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가지지 못한 반도체 기술은 물론 우수 인력과 자본을 겸비했다. 중국이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하다. 대만 중앙통신은 "많은 대만 기업인이 반간첩법을 두려워하고 있다"라며 "(중국이)계좌를 동결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한 요구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국이 대만 재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은 대만 기업들의 높은 중국 의존도 때문이다. 같은 중화권이고, 한국·일본에 비해 대만 기업의 가격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대만 제품을 선호한다. 화웨이·비보 등 중국 중저가 스마트폰 업체는 대만산 모바일 AP(반도체) 없이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리엔파커지가 중국에 제공하는 모바일 AP는 전체 물량의 40% 수준이다.

타이지디엔 등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탈중국화' 주장이 나오지만 아직 중국 의존도는 해소되지 않은 숙제다. 타이지디엔의 매출 중 중국 관련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웃돈다. 리엔디엔은 연초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방) 수혜 기업으로 꼽히면서 주가 상승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만일 반간첩법에 반발해 중국을 벗어난다면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셈이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대만 반도체는 진퇴양난에 놓이게 됐다. 타이지디엔은 전날 2분기 매출 4808억 대만달러(한화 약 19조 6000억원), 세후순이익(당기순이익) 1818억 대만달러(약 7조 4000억원)이라고 공시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0.0%, 23.3% 줄어든 수치로, 자체 전망치에 따르면 올해 전체 매출도 10%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리엔파커지의 2분기 추정 매출도 918억 대만달러(약 3조 7000억원)로 악화가 확실시된다.

가오슝의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큰 시장이지만, 안보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 정부가 기술이나 계좌, 재무정보 등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늘리고 있다"라며 "대만 내부에서도 디리스킹(위험 완화)을 위해 생산 기지를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섣불리 투자를 포기할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라고 말했다.
중국 못 버린다지만…"우린 노예될 것" 반도체 거물의 경고
중국 국기와 대만 국기. / 사진 = 픽사베이

대만 반도체가 중국과의 오월동주를 이어간다면 중국에는 호재다. 미국의 제재로 자급 능력을 상실한 중국 반도체가 기술과 인력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해관(세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의 반도체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5% 줄었지만, 자체 생산량은 0.1% 증가에 그쳤다. 중국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중신궈지(SMIC)도 최근 첨단 공정을 포기하고 28나노 이하 성숙 공정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반도체가 실적 개선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타이지디엔은 지난 20일 중국 난징에서 생산하는 28나노 공정의 생산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리엔디엔도 244억 대만달러(1조원)를 투입해 중국 현지에 설립한 합작법인 지분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 리엔디엔과 중국 업체 허지엔커지 등이 합작 법인에 투입한 돈은 7조원이 넘는다.

다만 현지에서 중국 정부의 개입을 꺼리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차오싱청 리엔디엔 전 회장은 올해 초부터 "대만과 중국이 통일되면 대만인은 천민이 될 것"이라며 중국과의 연횡을 반대해 왔다. 장중머우 타이지디엔 창업주도 공개적으로 "중국 반도체의 성장 속도를 늦추려는 미국의 시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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