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색깔로 버티며 일군 “꿈과 환상 파는 회사” [ESC]
패션 좋아 시작한 남성의류숍
‘슈트리’ 대중화로 기반 다지고
유행 바뀌어도 꾸준히 밀어붙여
‘바버샵’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남성 의류 전문점이다. 바버샵은 이발소를 뜻하지만 이름과 달리 옷을 팔고, 창업자 황재환(45)은 이발과도 남성 의류와도 상관없는 일을 했다. 수많은 편집매장 중 왜 바버샵을 특별한 브랜드로 봐야 할까? 경력도 인맥도 없는 가게가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세일 중이라 재고 상자가 쌓인 서울 종로구 사무실 앞에서 브랜드의 생존법을 물었다. 비결은 본인의 색깔대로 주관을 밀어붙인 정공법이었다.
“내가 좋아 만든 ‘남자들의 공간’”
ㅡ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광통신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대리 말이나 과장 정도 되면 자기 업무에 익숙해지잖아요. 그때 ‘뭘 하고 살면 행복할까’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 생각 끝에 창업하기로 했습니다.”
ㅡ의류 유통을 선택한 이유는요?
“단순히 옷보다는 거기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좋아했어요. 2006~2007년, 해외에서 ‘맨즈 패션’이라 부르는 일상복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패션 포럼 중에서는 흔히 말하는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니라 청바지 전문 브랜드, 구두 전문 브랜드를 논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저도 거기 빠져들었고, 그런 브랜드를 찾았습니다. 저는 미국 동부를 좋아해서 그곳의 액세서리를 들여왔죠.”
―처음부터 성공을 예상하고 한 일이 아닌 듯 보이는데요.
“전혀 아니죠. 내가 좋아하는 걸 했습니다. 옷가게에 ‘바버샵’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20세기 미국의 이발소가 남자들의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자니까 처음에는 그런 걸 원했어요. 마진 구조도 보통의 패션업 마진 구조인 2배수나 3배수를 취하지 않았어요. 제조업 마진 구조 방식으로 30%를 붙여서 판매했죠. 패션 유통에는 아마추어였어요.”
―유명하지도 않고 브랜드도 없는 물건으로 자리를 어떻게 잡았습니까?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6개월 정도 창업 과정을 담았어요. 가죽 장갑 샘플이 들어왔다, 국밥을 먹으러 갔다, 이런 식으로 저희의 캐릭터를 알렸습니다. 그게 인기를 끌었어요. 많을 때는 하루에 1500명까지 왔으니까요. 그렇게 나온 첫 히트 상품이 슈트리(구두 안에 넣어 모양을 잡아주는 나무 구조물)였습니다. 슈트리를 구두에 넣어 보관하면 가죽 구두를 오래 쓸 수 있습니다. 구두의 모양을 잡아주고, 나무가 구두 안에 들어 있는 냄새나 습기 등도 흡수해주거든요. 슈트리를 대중화한 면이 있다고 자평합니다.”
―지금까지 슈트리를 몇 개나 팔았습니까?
“3만개쯤 되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한 달에 300개씩 팔았으니까요. 지금은 1년에 1천개 정도 파는 것 같지만. 요즘은 저가 경쟁자가 많이 생겼어요. 품질은 낮아지고 가격으로 다투는 곳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품질을 올리며 가격도 올렸습니다. 그 싸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가격대와 품질을 높이는 건 품질에 치중하고픈 많은 유통업자나 제조업자들이 가고자 하는 길일 겁니다. 그게 안 되는 게 문제고요. 고객을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방금 이야기를 똑같이 블로그에 했어요. ‘슈트리를 10년 팔았는데 우리의 경쟁자는 가격만 낮췄지 다양화를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이 시장에서 벗어나겠다’ 그래서 판매량은 줄었지만 매출액은 비슷해요. 가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싶기도 해요.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사람들 반응이 좀 있었어요.”
ㅡ슈트리를 비롯해 양적으로도 성장했습니까?
“매출은 사이클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2010년 블로그를 해서 팬을 만들고 웹사이트를 만든 뒤 매장을 열고 서촌으로 온 2014년까지가 1기. 첫 달에는 전혀 수익이 안 나다 조금씩 수익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4년이 되니 전해에는 100장 팔리던 타탄체크 머플러가 20장밖에 안 나가는 겁니다. 고민을 하다가 동대문시장에 가 봤어요. 전에는 우리 것과 비슷한 걸 파는 도매업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도 안 남았어요. ‘맨즈 웨어’라는 유행이 끝나버린 거예요. 2014년에 저는 선택을 해야 했어요. 여기까지가 1기였어요.”
“현실과 타협 않는 ‘자기 색깔’ 응원”
ㅡ무슨 선택을 했어요?
“‘팔러’라는 구둣가게를 열었습니다. 저희가 좋아하던, ‘품질 좋고 이야기가 있는 남자 옷과 액세서리를 판다’는 콘셉트를 유지했어요. 다른 곳들은 그때 콘셉트를 바꿨어요. 당시 유행하던 스트리트웨어로요. 그때부터 버텼죠. 매출은 그대로인데 그걸 유지하려 엄청나게 발버둥을 쳤어요. 사실 팔러는 5년 동안 적자만 6억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트렌드가 또 바뀌더군요. 창업 후 10년이 지나 2020년쯤이 되자 다시 우리 쪽 물건에 관심을 갖더라고요. 그때 매장도 이전하고 더 쾌적하게 만들었습니다.”
ㅡ지금이 3기군요.
“네. 매출이 10억원대였던 2기에 견줘 3기에 5배쯤 올랐어요. 2021년 팬데믹 시기에도요. 저희가 취급하는 브랜드에 대해 대중들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어요.”
ㅡ브랜드를 연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바버샵이 구현한 ‘자기 색’을 꿈꿀 겁니다. 안 해본 걸 하고 싶고 숨어있는 걸 알리고 싶어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실과 타협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자기 색을 가진 사람들을 아주 응원합니다. 누구나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하지만 잘 안 되죠. 그런데 버티면 또 됩니다. 저는 블로그밖에 없었는데도 운이 맞았습니다. 많을 때는 한 달에 한국의 패션잡지 10곳에서 협찬 요청이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으니까요.”
ㅡ자기 색을 가진 사람들을 응원할 구체적인 계획도 있습니까?
“회사 근처에 남은 공간이 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을 열고 싶어요. 그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ㅡ앞으로 목표가 있습니까?
“위대해지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회사가 100년 가지 않아도 위대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중에 저희가 한 걸 캐냈으면 좋겠어요. ‘바버샵은 2023년에 이런 걸 만들었어’라고, 사람들이 나중에 발굴할 걸 하고 싶습니다.”
ㅡ그래서 사무실 건물도 한옥에 있는 건가요?
“멋있잖아요. 일단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사람들이 좋아하시고요. 주변에는 아파트형 공장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꿈과 환상을 파는 회사인데 그래서야 되겠어?’”
글·사진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잡지 에디터. ‘라이프스타일’로 묶이는 업계 전반을 구경하며 정보를 만들고 편집한다. <요즘 브랜드>, <첫 집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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