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호기심에 한 마약 인생 망쳐”…제대로 된 재활치료 있었더라면 [주말엔]

홍혜림 2023. 7.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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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까지 파고든 마약 …적발은 늘어나는데 '재활치료와 예방 논의' 없어

며칠 전 대검찰청이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발표했습니다. 특이점은 '30대 이하 마약사범'이 4년 전보다 2배 많아졌다는 점이었습니다. 2018년 5천 명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더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은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사범'이 4년 사이 3배나 늘었다는 것입니다. 2018년 143명이던 19세 이하 마약 사범은 지난해 481명으로 확 늘었습니다.


통계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지요. '10대·20대 집단 마약 투약 사건', '1억 원대의 판매수익을 올린 10대 마약상 검거'…. 불과 몇개월 사이 '청소년 마약'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충격적 뉴스들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뉴스가 나와도 단지 수사기관의 적발에 초점을 둔 짧은 뉴스로 처리되는 것 같습니다. 몇년째 다크웹이나 SNS를 통한 청소년 마약범죄 실태가 많이 보도되면서 더 이상 새롭지 않은 뉴스로 여겨지는 걸까요.


마약에 왜 청소년들이 중독됐는지, 이후 '재활'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예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부진합니다.

■ "14살에 시작한 마약, 교도소 6번 다녀왔지만, 재활은 없어"… 40대 마약중독자의 고백

그도 그럴 것이 '마약청정국'을 자부했던 우리사회는 지금까지 '수사기관의 마약사범 적발-사회격리와 처벌'의 사이클로만 마약중독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마약중독은 범죄이기 때문에 단죄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 '단죄의 사이클'에 지난 30여 년의 인생을 맡겼던 47살 이성진(가명) 씨.

교도소에 몇년을 가 있어도 왜 마약을 끊어야 하는지 이유는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격리된 기간 몸을 회복한 뒤 출소하면 마약을 해야지 생각했고, 나가자마자 실행에 옮겼었다고 회고합니다. 14살에 호기심에 시작한 본드흡입으로 필로폰에까지 손을 대 6차례에 걸쳐 10년 넘게 마약류 관리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이 씨지만, 재활에 초점을 둔 교화는 받지 못했습니다.

마약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 씨에게 주어진 곳은 교도소와 정신과 폐쇄병동뿐이었습니다. 이 씨는 "요즘 청소년들은 더 쉽게 마약을 접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결국 주변을 봐도 마약의 끝은 죽음뿐"이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 청소년 마약중독 먼저 겪은 미국, 격리 아닌 '지역사회 공동 예방·재활치료'로 접근

미국에서도 1960년대 청소년들의 마약중독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학생들이 범죄혐의로 처벌된 뒤에도 개선되지 않고 마약범죄를 또 저지르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의 하나로 '마약중독 치료와 재활을 함께하는 기관'들이 설립됐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사마리탄 데이탑 빌리지' 입니다.

사마리탄 데이탑 빌리지는 미 전역에 60개의 센터를 보유한 대표적인 청소년 중심 마약중독 재활치료 기관입니다. 의사와 간호사, 전문상담사가 한 팀을 꾸려 마약에 빠진 청소년 재활을 전담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까지 집단 상담을 진행합니다. 마약 중독 청소년은 더 쉽게 미래가 없다는 실의에 빠질 수 있고, 주변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 착안한 프로그램입니다.

엄마와 자녀들이 함께 하는 마약중독 재활 상담.


일반적인 외래 치료 외에 집중관리가 필요한 만성적인 중독자를 위한 거주시설도 운영합니다. 청소년 중독자를 위한 거주시설도 따로 운영합니다. 이때 핵심은 마약중독자들을 외진 곳에 격리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안에서 소통하며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조절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약자를 돕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가 마약중독 재활치료에서도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정기간 집중 재활이 이뤄지면 청소년은 학교로 가고, 성인은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수준에 맞는 직업 훈련과 일자리 매칭도 이뤄집니다. 동시에 '예방이 가장 중요한 치료'라는 목표 아래 지역사회와 각급 학교를 중심으로 예방활동에도 주력합니다.

지역사회에서 마약중독 치료 모임을 함.


■ 한국 '급증 청소년 마약중독' 해결하려면… '재활치료' 건강문제로도 접근해야

그제(20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한 미첼 넷번 사마리탄 데이탑 빌리지 회장은 한국에서도 '마약중독은 질병과 같다는 인식'이 있어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마약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암 치료를 마쳐도 10년 후에도 재발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마약중독 치료 근간에 깔려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마약 중독 재활 치료를 받고 나서도 힘든 일이 생기면 다시 마약을 찾을 수도 있는데, 이때 '약쟁이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실패자 낙인을 찍어버리면 더 음지로 숨어드는 마약중독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재활치료 이수 뒤 다시 마약 유혹을 받을 때 언제든 상담할 수 있도록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고, 다시 중독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특별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美,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 문제에 처방없이 해독 스프레이를 공급중.


이런 기조는 좀비마약 '펜타닐과의 전쟁'에 대한 대응책에서도 보여집니다. 넷번 회장은 "펜타닐로 인해 지난해에만 미 전역에서 10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하다"며 "결국 생명을 살리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펜타닐을 흡입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함과 동시에 이미 노출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합성마약에 펜타닐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진단검사지와 흡입 후 문제를 상쇄시킬 수 있는 해독 스프레이를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미국에 펜타닐이 이슈가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른 마약에 비해 값이 싸다 보니 더 빨리 퍼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 '청소년 중심' 마약중독재활센터 첫발 뗀 한국…지역사회 공동 예방·재활치료까지 가려면 먼 길

그제(20일) 청소년 상담을 중심으로 한 마약중독재활센터가 대전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서울과 부산 단 두 곳에 마약중독재활센터가 있었는데,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센터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마약중독재활센터를 관장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늘어나는 마약중독 문제를 '재활치료의 질병 개념'으로 접근하기 위해 앞으로 전국 17개 센터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식약처는 '예방은 최고의 치료'라는 인식 하에 마약중독 예방 애플리케이션 등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딱딱한 텍스트 교재만으로는 청소년에게 다가서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또 예방 교육의 대상을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넓혀 마약예방교육이 정규교육으로 의무화됩니다.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큰 변화를 이룰 긍정적인 출발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인프라 측면에서 일상생활이 녹아들 수 있는 생활중심의 상담시설이 아니라 협소한 규모의 사무실에 책상이 놓여있는 교실같은 센터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측면에서도 밀착상담을 해 줄 인력이 부족합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제대로 된 마약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중요하다"며 " "양질의 상담인력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인증방법, 사후관리 등 여러 가지에 대한 용역연구를 진행 중이고, 연구가 끝나는 대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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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림 기자 (newsh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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