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야, 너 때문에 물가도 뜨거워”…기후플레이션의 공포 [주말엔]

김준범 2023. 7.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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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뜨거운 물가? 단연 채소 값이다. 푹푹 찌는 날씨만큼 뜨겁다.

자주 사는 시금치 한 단(250g 정도)이 7천 원을 웃돈다. 평소 가격은 3천~4천 원이었다. 평년 대비 거의 2배다. 오이 1개 값이 천 원 넘는 곳도 많다.

'아닌데, 우리 동네는 싸던데…' 이상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도 있을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싼 곳도 분명 있기는 있다.

그러나 전국 통계를 보자. 아직도 싼 곳이 있다면, 그곳이 특이한 것이다.


■ 한 달 전 "가격 안정세"

최근에 가격이 안 오른 게 어디 있나, 채소만 비싸졌나,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전반적인 물가 사정은 그럴 수 있지만, 적어도 채소에 대해서는 틀린 얘기다.

채소 값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안정적이었다. 일부 품목은 지난해보다 더 쌌다.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은 전반적 안정세"

한 달 전 농림축산식품부는 공식 자료를 통해 농산물 물가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6월 20일에 배포한 〈농식품 물가관리방안〉 자료 중 일부. 붉은색 강조 표시는 KBS 추가.


그랬던 채소 값이 한 달 새 급반전한 것이다.

이유는 날씨다.

장마가 온다 → 비가 계속된다 → 일조량이 줄어든다 → 채소 수확이 감소한다 → 출하해도 습기 때문에 쉽게 짓무른다 →유통 중 결손이 커진다….

여기까지는 한여름에 으레 있는 일이다.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 식당의 상추 인심이 박해졌던 이유다.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훨씬 나쁘다. 지난주부터 쏟아진 집중호우로 일부 채소의 주산지가 직격탄을 맞았다.

같은 농경지 침수라도 논과 밭은 다르다. 논은 적당한 시점까지 물 빠짐만 되면 아주 심각한 문제는 안 생긴다.

채소나 과일 밭은 다르다. 침수는 사실상 사망선고다. 빗물에 몇 시간 잠기고 나면, 뿌리는 썩고 잎이 짓무른다.

지금까지 피해가 가장 큰 채소는 시금치와 상추 등이다. 주산지인 충청권에 침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 기후(Climate)+고물가(Inflation)=Climateflation

극한 날씨로 식품 물가가 출렁이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우리는 덜한 편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이번 주 영국 BBC의 시사 프로그램 <뉴스 나이트>는 이 주제에 대한 기획 보도를 내보냈다. 'Climateflation' 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했다. 우리 말로 옮기면 기후로 인한 인플레이션, '기후플레이션' 정도 될 것 같다.

설탕값이 올라 다른 식품 가격이 오른다는 '슈가플레이션', 우윳값 때문에 다른 식품 물가 상승한다는 '밀크플레이션' 등과 비슷한 신조어다.

기후 위기가 사람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작물도 괴롭히고, 그래서 작황이 부진해지고, 결국 식품 물가가 뛴다는 뜻을 품고 있다.

BBC <News Night> 방송 화면. BBC 유튜브 채널에서 갈무리.


BBC의 보도는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포츠담기후변화연구소와 공동 연구한 보고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난해 국제 곡물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식량가격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밀 가격이 살인적이었다. 국내 라면 회사들이 지난해 라면값을 올린 배경이기도 했다.

당시 전문가 대부분은 전쟁을 원흉으로 꼽았다. 농업대국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과 수출이 막히면서, 곡물값이 폭등했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까. 다른 요인은 없었을까. 유럽중앙은행 연구팀은 이 점을 파고 들었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지난해도 유럽 여름은 펄펄 끓었다. 밀 작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동시에 가혹한 가뭄이 뒤따랐다. 라인강이 말라 운송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

연구팀은 전쟁요인과 기후요인을 구분했다. 그리고 전쟁요인을 배제하고, 기후요인이 별도로 물가를 끌어올린 결과를 계산했다. (기후위기 → 식품 물가 → 전체 소비자물가)

결론1 : 지난해 기후위기로 전체 물가 상승률이 0.67% 포인트 더 높아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올해 5월 보고서. 환경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독일 포츠담기후변화연구소와 공동 연구한 결과물이다.

[다운로드] 유럽중앙은행 보고서_The impact of global warming on inflation averages, seasonality and extremes.pdf
https://news.kbs.co.kr/datafile/2023/07/21/299891689838725477.pdf

■ 기후 인플레, 한국은?

지난해에 그랬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더 궁금한 건 과거보다 미래다.

연구팀은 기후 인플레가 앞으로 물가를 얼마나 더 끌어올릴지도 예측했다. 연구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분석 대상은 세계 121개국이다. 각 나라의 기후와 물가 데이터 최근 30년 치를 놓고, 기후요인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산출해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향후 탄소 배출 시나리오에 대입해, 기후 인플레가 미래의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상하는 방식을 썼다.

결론2 : 2035년에 기후위기는 세계 식품 물가 상승률을 3.0% 포인트 더 높일 것이다. 전체 물가 상승률은 1.0% 포인트 높일 것이다.

공개된 보고서의 결론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우리가 더 궁금한 건 한국에 대한 결괏값이다.

Q. 기후 인플레가 한국의 물가를 얼마나 끌어올릴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따로 없나요?

KBS는 연구팀에 이메일로 추가 질의를 보냈다. 연구팀은 신속히 답을 보내줬다.

결론3 : 2035년에 기후위기는 한국의 식품 물가 상승률을 2.0% 포인트 더 높일 것으로 예측된다.

쉽게 풀자면 이런 뜻이다. 기후위기가 없는 2035년에 우리나라의 식품 물가 상승률이 2.0%였을 것이라면, 실제로는 식품 물가가 4.0% 오를 것이라는 의미다.

겨우 2.0%에 무슨 호들갑이냐고? 한해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는 1년짜리가 아니다.

천 원짜리 라면이 매년 2%씩 오르면 10년 뒤에는 1,210원 정도다. 매년 4%씩 오르면, 1,480원 정도다. 이 격차가 30년 뒤에는? 라면만이 아니라 모든 식품의 물가가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인플레를 예상할 때 늘 국제 유가나 환율 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앞으로는 기후위기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겪어보지 못한 변수다.

그래픽 : 김홍식, 배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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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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