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영의 케해석] 매일 입는 진, 매일 꾸는 꿈, 그리고 뉴진스

허지영 기자 2023. 7.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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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뉴진스 / 사진=어도어
[서울경제]

뉴진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마치 좋은 꿈을 꾸는 기분이 든다. 벅차오르는 감동이나 슬픔 같은 극단적인 음악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기도 하지만, 일상은 이런 가벼운 들뜸이 차곡차곡 쌓여 강해지는 법이다. '매일 입는 진'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던 뉴진스는 이번 신보로 듣는 이의 일상에 더욱 깊게 스며들 전망이다.

뉴진스의 미니 2집 '겟 업'이 21일 베일을 벗었다. 트리플 타이틀곡 중 제일 먼저 선공개된 '슈퍼 샤이(Super shy)', 양조위와 정호연의 호연이 돋보인 '쿨 위드 유(Cool With You)',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개된 '이티에이(ETA)'까지. 음악의 만듦새, 화제성, 콘셉트 삼박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그룹 뉴진스 / 사진=어도어

트리플 타이틀 곡 '슈퍼 샤이', '쿨 위드 유', '이티에이'는 스타일이 완연히 다르다. 미국 뉴저지의 저지 클럽, 영국 런던의 UK 개러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등 다채로운 장르를 뉴진스의 것으로 소화했다. 우선 제일 먼저 공개됐던 '슈퍼 샤이'는 저지 클럽 리듬과 신나는 비트를 가진 곡이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멤버들의 가벼운 보컬에 왁킹 안무가 더해져 뉴진스만의 여름 시즌 송으로 느껴진다. 이어 공개된 '쿨 위드 유'는 UK 개러지 리듬을 바탕으로 조금 더 차분한 비트와 멜로디 아래에서 멤버들의 음색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특히 후렴구 '쿨 위드 유'를 반복해 부르는 멤버들의 공기 같은 음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룹 뉴진스 / 사진=어도어

앨범 발매일인 21일 공개된 트리플 타이틀곡의 마지막 곡 '이티에이'는 브레이크 비트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근간으로 한 파벨라 펑크(Favela Funk)를 더한 곡이다. 선공개된 두 곡에 비교하면 가장 신나는 리듬을 가졌다. 제목은 도착 예정 시간(Estimated Time of Arrival)의 줄임말로, 'What's your ETA?'(너 언제쯤 도착해?) 등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가사에서도 해당 문구는 후렴구로 계속 등장한다.

곡은 빠른 비트에 '음색 깡패'로 불리는 혜인의 보컬이 얹어지며 시작된다. 빠르고 신나는 비트지만 뉴진스 특유의 절제되고 차분한 멜로디가 곡의 중심을 잡아준다. 멤버들의 보컬은 앞선 두 곡보다 단단하고 힘이 있다. 앨범의 서사와 흐름에서 가장 고점에 올라 있다고 느껴진다. 래퍼 빈지노가 쓴 가사는 아주 친근하고 익살맞으며, 직설적이다. '걘 여기저기에 눈빛을 뿌리네 / 지원이가 여친이랑 헤어진 그날 / 너무 멋있는 옷을 입고 그날' 등이 그렇다.

그룹 뉴진스 / 사진=어도어

뉴진스의 음악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에어리한 보컬', '미드텐션'은 이번 앨범에도 잘 드러나고 있다. 한 템포도 쉬어가지 않는 빠른 텐션, 이에 맞춘 강렬한 칼군무, '댄스'와 '발라드'로 양립되는 케이팝 대중음악에서, 뉴진스는 유연하게 자리를 잡았다. 몽글몽글하고, 구름 같고, 릴렉스하고 코지하다가도 가볍게 텐션을 끌어올리는 부담스럽지 않은, 일상을 닮은 음악을 내놓았다.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어렵다고 했다. 뉴진스의 음악은 덜어내는 과정에서 세련됨과 개성을 얻었다. 국내외로 유행하는 저지 클럽 리듬을 영리하게 해석한 것이다. 본디 저지 클럽 리듬은 '둥 둥 둥 둥' 하는 특유의 킥 박자가 특징이다.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전형적인 리듬이지만, 뉴진스의 폭신한 보컬과 입체적인 화성을 만나며 특유의 공격적인 느낌이 중화됐다. 그러나 빠르고 톡톡 튀는 템포는 살아남아 듣는 이에게 쉼표를 주지 않고 물 흐르듯 곡을 끝까지 이끈다.

그룹 뉴진스 / 사진=어도어

분절되지 않고 물 흐르듯 곡을 이끄는 요소에는 뉴진스의 잘 다듬어진 퍼포먼스도 있다. 케이팝 아이돌의 특장점으로 꼽히는 '칼군무'의 골자는 남기되, 개성을 살렸다. '뉴 진스'에서는 자유분방한 힙합 스타일을, '슈퍼 샤이'에서는 손과 팔을 힘 있게 뻗는 왁킹 댄스를, '쿨 위드 유'에서는 컨템포러리 장르 댄스에 도전해 새로움도 안겼다. '이티에이'에서는 힙합 댄스와 저지클럽 댄스 동작을 접목해 뉴진스 특유의 트렌디함을 놓치지 않았다.

보편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뉴진스의 정체성을 십 분 살린 협업도 이번 신보에서 주목할 만하다. 25주년을 맞은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파워퍼프걸'이 뉴진스와 손을 잡았다. 앨범의 프롤로그와도 같은 곡 '뉴 진스' 뮤직비디오는 멤버이 버니 양복바지를 통해 파워퍼프걸이 되는 모습이 담겼다. '이티에이' 뮤직비디오는 애플 아이폰14 pro로 촬영됐다. '쿨 위드 유' 뮤직비디오에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배우 양조위와 정호연이 출연해 호연을 펼쳤다.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뉴진스가 데뷔 때부터 견고히 쌓아온 서사에 몰입하는 것이다. 앨범 전체에 담긴 서사와 각각의 곡이 표현하는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멤버 하니는 소속사를 통한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은 트랙 순서가 되게 중요하다. 트랙 리스트 순서로 곡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그런데 노래마다 분위기랑 느낌이 다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룹 뉴진스 / 사진=어도어

신보는 정식 발매 전부터 심상치 않은 열기를 보였다. 첫 번째 선공개 곡 '슈퍼 샤이'는 발매 일주일 만에 미국 빌보드 싱글 순위인 '핫 100'에서 66위에 올랐다. '오엠지'와 '디토'에 이어 세 번째 '핫 100' 진입이며, 그룹 자체 최고 순위이다. '쿨 위드 유'는 공개 12시간 만에 도합 조회수 500만 회를 넘겼다. 정식 앨범이 나오기 전 선공개 음원으로 '핫 100'에 진입한 저력이 어마어마하다.

뉴진스는 지난해 7월 22일 데뷔해 오늘(22일) 1주년을 맞이했다. '매일 찾게 되고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jean)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1년 만에 수많은 사람의 일상에 차분히 내려앉은 기분 좋은 꿈이 됐다. 그룹이 갓 돌을 맞은 지금, 뉴진스의 정체성을 한껏 살린 음악을 내놓은 뉴진스는 어디까지 클 수 있을까. '하입 보이'로 단단한 주춧돌을 놓은 이들의 '겟 업'이 기대된다.

허지영 기자 he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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