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그림으로 달래는 강 건너 고향 생각

KBS 2023. 7. 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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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남긴 가장 큰 상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산가족입니다.

2000 년 8월부터 2018 년까지 모두 21 차례에 걸친 대면 상봉과 7차례의 화상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2019 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아예 열리지 못하고 있는데요.

전쟁이 멈춘 지 벌써 70년. 혈육과 다시 만난다는 소박한 꿈조차 이루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난 이산가족들도 많습니다.

남아 계신 분들이 크게 줄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갈 수 없는 고향...

만날 수 없는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를 예술 작품으로 풀어낸 곳이 있다고 해서 최효은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특별한 전시가 열렸습니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은 이산가족들.

[이용하/이산가족/88세 : "나는 15살 때 (북에서) 넘어 왔고, 우리 형님은 19살. (어떠세요.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 거지 뭐."]

전시장 한 편에 자리한 그림에도 눈길이 갑니다.

짙고 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펼쳐진 풍경.

봄의 전령인 남녘의 동백처럼 이제 막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듯한 모습은 고향의 봄을 연상케 합니다.

어딘가 낯익게 다가오는 바닷가 마을의 정취.

누군가에겐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모습입니다.

황해도 장연군의 작은 어촌 구미포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손기환/작가 : "아버님이 고향 사진, 흑백사진을 주면서 '한번 그려봐라' 그래서 흑백사진으로 그대로 그리긴 그렇고 컬러로 제 생각에 이런 분위기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린 겁니다. 아버지 고향."]

북에 둔 부모님과 동생들을 한평생 그리워한 아버지는 지난해 돌아가셨지만, 손기환 작가는 여전히 그림을 통해 아버지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손기환/작가 : "아버지 생각하면서 풍경화를 그려보는 겁니다. 아버지 부탁으로 여러 번 이걸 그렸는데 한번도 (아버지를) 만족 못 시켜드려서 수시로 한 번씩 아버님 생각하면서 그려보고 있어요."]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2세대인 손기환 작가는 여전히 분단의 시대를 고민하며 망향의 여운을 화폭에 채우고 있는데요. 그가 그림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분단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 작가는 조국의 강산을 표현할 때 다양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다고 합니다.

[손기환/작가 : "(땅) 건너가 물이고 그 다음에 뒤가 산이고 그 다음에 이 풍경을 오락가락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새들이 있는거죠. 꽃이나 이런 것들은 하나의 희망 또는 바람, 또는 갈망 같은 걸 상징한다 볼 수 있고 (남북의) 강산은 똑같은 거죠."]

실향의 슬픔과 귀향의 갈망을 표출한 작품들.

작가는 가족과 자신을 둘러싼 분단의 냉혹한 현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손기환/작가 : "저 같은 경우는 이산가족이다보고 제가 (입대 후) 최전방에서 근무하다보니 분단문제에 대해서 젊어서부터 관심을 많이 가졌고 그래서 이런 걸 지속적으로 하다보니 하나의 스타일이 됐죠."]

무뚝뚝했지만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던 아버지를 이제는 사진으로 추억해 보는데요.

[손기환/작가 : "아버님하고 대화한 거 모으면 30분도 안 될걸요. 아마."]

작가는 백령도와 임진각을 자주 찾은 아버지의 눈길과 마음이 항상 북녘을 향했다고 기억합니다.

[손기환/작가 : "(아버지가) KBS에서 이산가족찾기 계속 보셨거든요. 혹시나 거기에 소식이 있을까하고 그 모습을 제가 보고 고향 풍경하고 그 당시 이산가족 찾는 사람들의 뒷모습이거든요."]

작품에 투영된 아버지의 낡은 사진과 기록들.

[손기환/작가 : "(장연군) 대구면에 산, 여기 아버님 땅, 선산, 이런 것 까지 다 그려주시고. (집이 어디에요?) 여기 구미포. 제가 그리는 그림이 주로 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참여하면서 매우 특별한 만남도 가졌다고 합니다.

[손기환/작가 : "원래 프로젝트가 이산가족을 만나서 인터뷰 한 다음에 그 사람의 심상을 그리는 프로젝트였어요. 진짜 우연하게 아버님 고향 분을 만난 거예요. 이름을 아는 거야. 아버님 성함도 알고 그래서 금방 교감이 됐죠."]

전시회가 개막하는 날,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을 달래주던 임진각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이산가족과 작가들이 소통하면서 완성된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입니다.

이산가족의 과거의 경험과 그리고 현재 삶을 통해서 다양한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담았다고 하는데요.

노령의 이산가족과 다양한 관객들은 이렇게 작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북녘을 그려 봅니다.

60여 명의 참여 작가들이 회화와 판화, 사진, 설치미술로 현재진행형인 1세대 이산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는데요.

[하종구/'우리의 소원' 상임이사 : "(한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고 하는데 우리 얘기에요. 70년 분단의 고통과 보고싶은 이들을 겪어 오신 분들의 이야기죠."]

삶의 회한과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얼마 전 고인이 되었습니다.

고령이 된 1세대 이산가족들을 만난 작가들은 하나같이 이번 작업에 참여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김종억/'고향 잃은 설움' 작가 : "통일을 어떤 식으로 맞이 할건가 등 우리 2세대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느낌이 있는 거죠. 우리가 이 시대 얼굴을 담아 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죠. 작가의 입장에서."]

[김구/'반가사유' 작가 : "휴전선 같은걸 달고 태어날 수 밖에 없는 후리 후손들 우리 민족이 하나되려면 우리 민족끼린 계속 만나야 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산가족들에게 이 작품들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경재/이산가족/92세 : "이사람이 이 사람이고 이 사람이 이사람이고."]

1950년, 19살의 나이에 함경북도에서 피난 온 김경재 할아버지.

10살 터울의 누이동생이 아직도 어른거립니다.

동생과는 1991년,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다고 합니다.

이후,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7년간 일본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간의 세월이 이 그림에 담겼습니다.

[김경재/이산가족/92세 : "(편지에) 이북에서 도장찍은거 여긴 안 나왔지만 평양이라고 찍은게 여기 있었어요. (작가가) 그걸 여기다 넣은 거예요."]

몇 해 전, 동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김 할아버지는 아직 남은 바람을 전합니다.

[김경재/이산가족/92세 : "물론 고향가고 싶은게 제일 첫째지만 그건 불가능하고 편지만이라도 주고 받을 수 있음 좋겠다 하는데..."]

한때 13만여 명에 달했던 이산가족은 현재 그 수가 줄어 4만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말하는 마지막 소원, 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은 사상을 떠난 인류애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임을 전시회 작품들은 한목소리로 말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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