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뒷북인 ‘50억 클럽’ 수사…‘맹탕’ 오명 벗을 수 있을까
뒤늦게 박 전 특검 영장 재청구·딸 공범 기소 가능성
[주간경향]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대 대선을 6개월 앞둔 2021년 9월이다. 기자(김만배)·변호사(남욱)·회계사(정영학)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대장동 일당’은 민관합작 개발 법인의 7% 지분만으로 1조원에 이르는 수익을 거뒀다. 이들의 역대급 ‘한탕’을 두고,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대장동 개발 당시 성남시장) 측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이들로부터 50억원을 약속받은 법조계 인사들을 뜻하는 ‘50억 클럽’ 의혹도 연이어 터졌다. 대장동 사건은 대선 시기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만큼 폭발력이 컸지만, 대선일까지도 양대 의혹(이재명의 뇌물수수 의혹과 50억 클럽)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1년 10개월이 지났다. 각각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속도는 달랐다. 검찰은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거액을 약속받았다는 ‘그분’을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서 이재명의 최측근인 정진상·김용으로 뒤집었다. 두 사람은 억대 금품을 받고 428억원을 약정받은 혐의로 지난해 가을 구속기소됐다. 이어 이재명 대표도 지난 3월 대장동 일당에 4985억원의 이익을 몰아줘 성남시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등으로 기소됐다. 유착 의혹의 몸통으로 여겨지던 이 대표의 뇌물수수 혐의(428억 약정 혐의)는 기소 단계에서 빠졌다. 이 대표 관련 대장동 수사는 ‘428억원 약정’을 추가 기소하느냐 여부만을 남겨둔 상태다.
50억 클럽 수사는 어땠을까. 정영학은 2021년 9월 검찰조사를 받으며 김만배·유동규·남욱 등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파일과 녹취록을 제출했다. 이 녹취록엔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별검사,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김수남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50억원씩 받기로 약속돼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형로펌 뺨치는 화천대유의 자문단엔 권순일·박영수·김수남이 포함돼 있었고, 화천대유에서 근무한 곽상도·박영수의 아들·딸은 상식을 뛰어넘는 고액 퇴직금·대여금을 받았다. 화천대유와 깊게 얽혀 있는 법조계 인사들이 사건 초기부터 드러났지만 검찰의 수사는 더뎠다.
22개월이 흘렀건만, 50억 클럽 수사결과는 ‘빈손’에 가깝다. 검찰이 유일하게 기소한 곽상도 전 의원은 1심에서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선고를 받았고, 지난달 ‘뒷북 수사’로 청구된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등은 지난 4월 50억 클럽 의혹 특별검사 임명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늦어도 올 12월에는 50억 클럽 특검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는 얘기다. 과연 올해 안에 검찰은 50억 클럽에 대한 ‘맹탕 수사’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늦게 시작해 더욱 험난한 박영수 기소
“지금 검찰은 과거 곽상도 전 의원을 수사하던 그 검찰이 아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현재 중앙지검 수사팀이 이 사건을 가장 독하고 집요하게, 끝까지 수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팀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월 30일 50억 클럽 특검법이 상정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출석해 한 말이다. 한 장관은 이날 이뤄진 박 전 특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고 “그런 차원에서(집요한 의지의 차원에서)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검찰 대 박영수’의 싸움에서 검찰은 박 전 특검에게 한 골 먹은 모양새다.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각 사유’가 중요하다. 법원은 통상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들지만, 이번엔 달랐다.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피의자(박 전 특검)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금품 제공 약속의 성립 여부에 관해 사실적·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검찰이 구성한 ‘범죄 성립’ 논리는 왜 법원을 설득하지 못했을까. 구속영장에 담겼던 박 전 특검 혐의의 뼈대는 이렇다. 2014년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었던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이 김만배 측 컨소시엄인 ‘성남의 뜰’에 참여케 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신의향서도 발급하도록 하는 대가로 측근인 양재식 변호사를 통해 200억원과 단독주택 2채를 약속받았다. 이후 우리은행의 컨소시엄 참여가 무산되면서 박 전 특검은 여신의향서 발급만 돕기로 하고 대가 역시 2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줄었다. 검찰은 50억원 가운데 8억원은 이미 박 전 특검에 건네진 것으로 봤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특경가법상) 수재 혐의를 적용했다. 이는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하거나 요구 또는 약속했을 때 적용하는 범죄혐의다.
법원은 일단 박 전 특검이 ‘특경가법상 수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금융회사 임직원’인지부터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자신이 이사회 의장을 지낸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과 무관하다는 박 전 특검의 논리를 법원이 일부 받아들인 셈이다. 반면 검찰은 2014년 11월 3일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됐고, 이에 따라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돼 2015년 4월까지 근무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법원은 아울러 8억원 수수 등을 둘러싼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특검은 8억원 중 대한변호사협회 선거자금으로 받았다는 3억원에 대해선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맞섰고, 나머지 5억원에 대해서도 “김만배와 이기성(박 전 특검의 인척)의 거래였고, 자신을 거쳐갔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김만배 등의 지시로 이기성이 조성해 박 전 특검에 전달한 5억원의 최종 ‘도착’지는 김만배다. 이기성에게 받은 5억원을 박 전 특검이 김만배에게 다시 보냈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이, 자신이 받은 5억원을 김만배에게 보낸 이유가 ‘50억원 약정’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나중에 받기로 한 50억원을 담보하기 위한 ‘화천대유 증자대금(지분투자)’ 성격으로 5억원을 보냈다는 것이다.
박영수 딸, 공범 기소되나
검찰은 지난 7월 18일 박 전 특검의 딸과 아내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며 영장 재청구를 위한 보강수사에 나섰다. 박 전 특검의 딸은 2016~2021년 화천대유에 재직하는 동안 임금 외에 대여금 명목으로 11억원을 받고 ‘판교 퍼스트힐 푸르지오’ 한 채를 저가 분양받아 8억원의 시세차익도 얻었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의 딸이 얻은 이익의 일부는 박 전 특검의 아내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를 통해 취한 경제적 이익이 25억원에 달한다고 보면서도, 정작 구속영장의 범죄혐의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제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곽상도·박영수의 아들과 딸이 받은 수십억원은 아버지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대목을 피해가며 수사하면 안 된다고 본다”면서 “곽상도 아들을 빼고 기소하려다가 곽상도마저 무죄가 나왔던 사례를 볼 때, 박영수를 제대로 처벌하려면 박영수 딸도 공범으로 기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의 곽상도 전 의원 뇌물수수 무죄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선 “검찰이 곽병채씨를 뇌물수수의 공범으로 수사·기소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판결”이란 지적이 잇따랐다. 검찰은 곽 전 의원 재수사에선 호반건설 압수수색 영장 등에 곽병채씨를 뇌물수수의 공범으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상도 사례’를 볼 때 박 전 특검의 딸도 결국은 아버지와 공범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검찰은 박 전 특검 딸을 압수수색하면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시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딸을 ‘청탁금지법 위반’의 공범 관계로 본 셈이다. 청탁금지법 위반은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공직자 등이 동일인에게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등의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면 성립한다. 박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에 재직(2016~2021년)하며 25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한 시점은 국정농단 특검 활동 시기와 겹친다. 검찰은 조만간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한다는 입장이다.
너무 늦었다
검찰의 칼날은 박 전 특검을 비롯한 ‘50억 클럽’ 인물들에겐 너무 무뎠다. 수사를 잘 아는 박 전 특검에게 1년여는 증거를 인멸하고 법리로 무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박 전 특검은 휴대폰을 부숴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만들었고, 사무실 PC 기록과 서류들을 없앴다고 한다. 박 전 특검을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 해도, 50억 클럽의 나머지 인물들 수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퇴임 두 달 뒤 화천대유 고문에 올라 월 1500만원씩 총 1억5000만원을 받았던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은 아직 해소되지도 않았다. 남욱은 “김만배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성남제1공단 공원화 무효소송을 대법원에서 뒤집었다고 말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이재명 대표 사건의 선고 시점에 김만배가 권 전 대법관을 8차례 방문한 기록도 나왔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김만배 부탁으로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수수 수사를 무마해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만배 공소장’엔 김 전 총장이 대장동 사건이 터진 2021년 9월 김만배를 만나 대책을 논의한 사실도 적시됐다고 한다. 검찰은 남은 시간 동안 이런 의혹들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까.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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