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성장 독려와 단속 강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북한의 산업미술법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출강 = 북한에서 디자인을 그린다는 것은 국가를 위한 '애국사업'으로 평가된다. 이는 북한 산업미술법 제1장 제6조에 창작원칙으로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다.
한마디로 북측의 디자인 행위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 이윤을 남기는 비즈니스보다 국가 번영과 인민 전체의 행복 구현이라는 공익의 목표가 우선한다는 이야기이다. 본인의 저서에서는 북한 산업미술의 이러한 특성을 두고 '집단주의적 사상우위 디자인'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북한디자인의 집단성, 사상성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타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내용과 형식에서 거의 불변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산업미술가들은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 형식 안에서 창작해야 하며, 외부 문화가 반영된 도안,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반(反)하는 자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것, 종교 관련 도안들은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사회주의와 조선문화에 뿌리를 둔 독특한 미감의 디자인을 북한 내부적으로 '주체적산업미술(노동신문, 2023년 4월16일 자)'이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은 사상강화와 문화단속을 계속하고 있지만, 산업미술도 외부 상품 유입으로 감독·통제 받지 않은 도안의 영향을 받아왔던 것 같다. 90년대 공업출판사에서 발간된 도안집에 해외 브랜드들이 무분별하게 등장했었고,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도 외부 디자인에 대한 경고성 논평들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 문양과 장식 스타일을 "부르죠아 생활문화요소"로 부르며 반 사회주의적 도안의 침투를 경계하라는 글이 실린 다음 해인 2016년에 ‘산업미술법’이 채택되고 상표법과 공업도안법이 수정·보충된 것도 시기적으로 우연은 아닌 듯하다.
북한의 산업미술법은 2012년 "산업미술을 발전에 대한 발표"를 한 김정은 위원장의 강령적 지침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11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1420호로 채택된 산업미술법은 2021년 6월에 1차 수정, 2023년 4월에 2차 수정·보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측의 상표법(1998), 발명법(1998), 공업도안법(1998), 저작권법(2001)이 이미 독립된 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왜 굳이 2016년 ‘산업미술법’을 만들고 또 2차례 수정·보충하였을까?
공·상업 활동에 중요한 내용을 담는 지적소유권 관련 법들과는 달리, 북측의 산업미술법은 국가 주도 성장을 위한 디자인 제도 마련을 위해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보여진다. 법률 제정 취지의 출발은 남한의 '산업디자인진흥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북한산업미술법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12월4일 채택)'처럼 디자인 지도통제에 관해 벌금과 처벌의 조항을 상세하게 만들어놓았다는 점이 우리와의 차이점일 것이다.
북한에서 디자인 위반으로 처벌받는 대상은 산업미술지도기관의 승인을 받지 않은 도안을 제작·이용한 경우, 심의 후 수정·위조한 도안을 사용한 경우들이다. 법을 어겼을 경우 손해 보상뿐만 아니라 벌금, 심지어 몰수와 노동교양 처벌, 형사적 책임도 물을 수 있다.
북한 산업미술법에서 특이한 점은 남한의 옥외광고물 관련 법과 비슷하게 '간판디자인' 내용이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법에 의하면, 간판 제작 단위는 산업미술지도기관이 선정하며, 승인을 받지 않은 단위에서 간판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면 상당한 벌금을 내야한다. 또한 미승인 단위와 개인이 간판도안을 제작할 경우 위법행위로 얻은 돈과 물품을 몰수 처벌할 수 있다.
북한의 산업미술법은 국가주도의 디자인체계 구체성과 사회주의에 맞지 않은 것들은 단속 처벌할 수 있는 문화적 엄격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 법은 산업미술가들에게는 주어진 창작과업을 하는 데 따른 보상의 '당근'을 준 셈이며, 다양한 취향과 개성을 찾는 일반 주민과 기업, 공장, 단체에게는 일종의 훈련용 '채찍' 역할을 하는 셈이다.
2012년 이후 북측 산업미술은 주민의 복지 증진과 자립적 경제발전의 기초라고 노동신문에서 연일 보도해왔다. 양적으로 보면 10년 동안 매해 열리는 대규모 전시를 보며 '짧은 시간에 북한디자인이 성장했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다.
이 성장의 급물살을 탄 시점에 산업미술법이 북한 사회에 이로운 법이 될 수 있도록 제도의 경직성을 줄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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