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신이 소중한만큼 남도 소중하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3. 7.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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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괴롭히는 어른이 사회에 존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 어른이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나이가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면 보다 성숙한 지적 능력과 감정, 행동 조절능력을 기반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지만 어른들 사이에서도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들이 나타난다. 오히려 어른들이 저지르는 괴롭힘은 아이들이 하는 것보다 한 층 더 교묘하고 악랄한 양상을 띈다. 

우선 성인이 성인을 괴롭히는 행동은 겉으로 봐서는 잘 티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괴롭힘은 거친 언어와 신체적인 폭력을 동반하는 등 힌트를 얻을 구석들이 있다. 그런 반면 한 성인이 다른 성인을 괴롭히는 행동은 보통 훨씬 정제된 언어와 부드러운 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신하는 등 앞에서는 상냥하다가 뒤 돌아 서면 칼을 꽂는 방식이 흔하다. 성인들은 괴롭힘의 증거가 될 만한 것들도 잘 남기지 않는 편이다. 삶의 경험을 쌓아 가면서 손 쉽게 타인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기술을 연마하기라도 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교묘하다는 특징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 본인도 괴롭힘의 존재를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편이다. 뭔가 기분이 이상해도 혹시 자신이 예민한 것은 아닌지 또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등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끔 만든다.

또한 어른들은 피해자를 탓하면서 자신이 행하는 괴롭힘을 ‘정당화’하는 능력까지 고도로 발달해서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다. ‘네가 xx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떳떳한 태도로 피해자를 비난한다. 

프로 급의 피해자 비난하기와 괴롭힘 정당화하기를 통해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여기에 권력관계까지 끌고 들어와서 괴롭힘을 당해도 손쉽게 대항하기 어려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별해서 뒤탈이 없을 것 같은 피해자에게 훨씬 악랄한 괴롭힘을 선사한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주어진 부당함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무기력에 빠져들곤 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손 발이 묶인 듯한 경험을 한다. 

여기에 점점 가진 것이 많아지고 자식의 존재처럼 큰 애정을 쏟는 대상이 많아지는 만큼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이기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타인을 해치는 스킬도 좋아지지만 해쳐야 할 이유와 동기 또한 더 많이 갖게 된다. 흔히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이타적일 것 같고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 또한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정 반대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특정인을 대상으로 지키고 싶고 도와주고 싶다는 애착을 크게 느낄수록 그 사람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무고한 제 3자를 향해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쉽게 휘두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어떤 상대에게 온 마음을 이입할수록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해치는 비도덕적인 행동도 불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존재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있으며 자신과는 상관없는 제3자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도 우리는 너무 쉽게 망각해버린다. 내 사람을 지키려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지만 이 또한 그다지 합리적인 생각은 아니다. 나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도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타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막 대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작은 권력 우위를 마구 휘두르고 타인을 짓밟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가 사랑하는 이 또한 그만큼 막 대해지고 짓밟혀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이기적으로 사는 세상에서 내 소중한 사람이 인간 대접을 받고 이타적인 행동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 세상에서 사람이 건강한 관계를 쌓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구를 해하는 행위는 결국 더 큰 업보로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벌써 각종 ‘진상’들의 존재로 인해 망가진 사회가 이런 사회에서 또 다른 진상들을 견디며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슬픈 미래가 어른들의 죄가 작지 않음을 말해준다. 우리 모두는 다 누군가의 ‘남’이고 ‘을’임을 기억하자. 

Farrell, A. H., & Vaillancourt, T. (2021). Examining the joint development of antisocial behavior and personality: Predictors and trajectories of adolescent indirect aggression and Machiavellianism. Developmental Psychology.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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