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혈증, 미래엔 '백신'으로 관리한다 [의술, 이게 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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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과 고지혈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콜레스테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습니다. 콜레스테롤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고, 등푸른생선은 많이 먹으면 좋지만 계란 노른자나 튀김은 좋지 않다는 의사들의 조언이 상식처럼 자리잡았죠. 하지만, 최근 의료계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LDL) 콜레스테롤'의 관리 목표 수치가 계속해서 낮아지면서, 이제는 몇 년 안에 0㎎/㎗에 근접할 수 있을 만한 수준까지 내려갔습니다.
물론 모든 질환에 문제가 있지만, 오늘(22일) 다룰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높은 경우'는 20세 이상 성인 중 20.4%에 해당됩니다. 남자가 18.6%, 여자가 22.1%로 성별 간 차이가 좀 나는 편입니다. 특히 60~69세 여성은 절반에 가까운 45.9%가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높은 상태입니다.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왜 나쁠까
저밀도 콜레스테롤의 목표 수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왜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나쁜지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세포를 일종의 건설현장으로 생각해 보죠. 세포는 생성과 분열 주기 속에서 세워졌다 무너지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건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철근과 자갈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됩니다. 콜레스테롤은 그 과정에서 가장 입자가 고운 시멘트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세포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재료입니다. 하지만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조금 다릅니다.
[권성욱 / 일산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아주 큰 분자구조가 분해되면서 생성됩니다. 이게 심장혈관 내피세포에 침투해 쌓이게 되는데, 이게 쌓이면 혈관 내 면역세포가 이물질로 인식해 잡아먹습니다. 그 과정에서 염증반응이 생겼다가 안정되고, 또 생겼다가 안정되는 과정이 반복되면 내피세포의 기능이 저하됩니다. 또 일종의 기름때까 점점 축적되면서 혈관 내경이 좁아지게 됩니다. 피가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협심증이나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저밀도 콜레스테롤 연구는 1990년대 중반에 이뤄진 '4S'라는 연구입니다. 심장 자체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란 혈관에 문제가 생긴 고 콜레스테롤 환자들에게 '스타틴'이라는 약을 사용했더니, 전반적인 사망률이 모두 감소하는 결과를 얻은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 이후 제시된 저밀도 콜레스테롤의 관리 목표가 120㎎/㎗였습니다.
이후 저밀도 콜레스테롤의 관리 목표치는 꾸준히 하강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90㎎/㎗을 목표로 제시하게끔 만든 연구가 나오더니, 2000년대 중반 들어선 60~70㎎/㎗까지 낮아지는 게 건강에 더 좋더라는 데이터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15년 새로운 연구(IMPROVE-IT연구)에서 50㎎/㎗에 근접한 목표치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수치는 201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의 목표치가 되었고, 이어 지난해 우리나라의 진료 지침에도 반영됐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진료지침은 기저질환 등 위험인자를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강한 목표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구성됐습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는 앞서 이야기한 관상동맥질환을 가장 위험한 인자로 구분했습니다. 당장 심장에 위험한 질환이니 더 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본 겁니다. 이 질환이 있는 경우엔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55㎎/㎗로(혹은 현재 농도의 절반 이하로) 낮추도록 했습니다.
이외 여러 심혈관질환이나 오래된 당뇨병을 갖고 있는 경우 70㎎/㎗, 이외 당뇨병은 100㎎/㎗, 중등도와 저위험군은 각각 130㎎/㎗와 160㎎/㎗로 설정됐습니다. 지금 건강검진표를 펼쳤는데, 저밀도(LDL) 콜레스테롤 농도가 160㎎/㎗를 넘는다면 의사와 상담을 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한때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너무 없으면 출혈성 뇌졸중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환자군의 혈압을 보정하지 않은 오류가 있었고, 보정 이후에는 뇌졸중의 증가는 없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의료계에서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낮으면 낮을수록 좋고, 심지어 0이 되는 것도 좋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 혈관이 전혀 낡지 않은 신생아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0에 가깝습니다.
[이해영 /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제가 실제 진료를 볼 때도, 그간 꾸준히 관리를 하신 환자분께 '의사도 공부를 하고 새 정보를 보는데, 예전보다 50㎎/㎗ 이하가 더 좋다는 데이터가 계속 나온다. 이전에는 좀 보수적으로 저밀도 콜레스테롤 100㎎/㎗ 이하를 목표로 했다면 70㎎/㎗ 이하까지 강화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환자가 뭘 잘못한 건 아니고, 인류의 지혜가 점점 올라가다 보니 약을 더 많이 써도 불편하지 않다는 데이터가 나온 거죠.]
약의 발전과 함께한 새로운 발견들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 있으실 것 같습니다. 왜 처음부터 이걸 밝혀내지 못하고 찔끔찔끔 목표치를 낮추고 있을까? 어쩌면 끊임없이 환자를 발굴해 부를 창출하려는 제약바이오 업계와 의학계의 농간이 아닐까? 그렇진 않습니다. 목표치를 일부러 천천히 낮춰가는 게 아니라, 당시엔 그렇게 낮은 수준까지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낮출 방법이 없었습니다. 약의 발달과 진료지침의 발전이 함께 이뤄진 겁니다.
처음엔 '스타틴'이라는 약이 있었습니다.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덜 만들도록 유도해 수치를 낮추는 약입니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고, 1985년 관련 연구가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약은 초창기엔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20~30% 정도 떨어뜨리는 데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심혈관질환 사망률의 극적인 감소를 불렀고, 현재도 가장 널리 쓰이는 치료제가 됐습니다.
이후 최초의 스타틴을 모태로 삼은 여러 스타틴이 등장했고, 현재는 국내 기준 2가지 스타틴이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토바스타틴'이라는 성분과 '로수바스타틴'이란 성분입니다. 두 성분 모두 최고 용량에서 최대 55% 안팎의 저밀도 콜레스테롤 강하 효과를 보입니다. 가장 강한 스타틴의 효과가 그 정도였으니, 의학계가 관측할 수 있는 효능도 거기까지였습니다. 수치가 190㎎/㎗인 환자가 있다면 70~80㎎/㎗를 만들어내는 게 한계였죠.
스타틴에는 애석한 효과가 하나 있습니다. 스타틴의 복용 용량을 두 배로 늘리면 딱 6%씩만 효과가 좋아집니다. 20% 강하 효과가 26%로 된다는 뜻이 아니라, 콜레스테롤을 50㎎만큼 줄이던 게 53㎎까지만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한국인을 기준으로 로수바스타틴 5㎎ 약을 복용하면 40~49%의 저밀도 콜레스테롤 강하가 일어납니다. 두 배인 10㎎은 42~50%, 그 두 배인 20㎎은 42~60%의 효과를 보입니다.
[권성욱 / 일산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부작용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합니다. 스타틴을 강하게 쓸수록 간수치가 올라간다든지, 근골격계의 증상을 유발한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있고요. 최근에는 기존에 본인이 갖고 있는 당뇨병의 발현을 당긴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스타틴을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 여부에 따라서는 상대적인 당뇨 위험도가 9%정도 올라가는 것으로 돼 있고요. 고강도 스타틴을 사용하느냐 일반 스타틴을 사용하느냐 대비 연구를 해 봤더니 15% 정도의 상대적인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돼 있습니다.]
정리하면, 낮은 용량의 스타틴은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30% 정도 낮췄습니다. 그걸 고용량으로 높이면 50% 안팎까진 효과를 키울 수 있었고요. 여기에 에제티미브를 추가하면 65% 안팎까지 효과가 좋아집니다. 이 결과로 과학자들은 50㎎/㎗ 농도의 저밀도 콜레스테롤에서 환자가 받는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콜레스테롤, 백신으로 관리할 수도
여기에 2010년대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한 약이 또 있습니다. 국내에선 올해부터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PCS-K9 억제제'라는 조금 복잡한 이름의 주사제입니다. 주사지만 당뇨 환자가 놓는 인슐린처럼 집에서 자가투여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이 약의 작동 방식은 약간 복잡합니다. 우리 몸 속엔 콜레스테롤을 잡아먹는 세포가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이 세포가 부족한 경우 쉽게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높아집니다. 이 유전의 빈도는 400분의 1, 유전 질환 중에선 굉장히 흔한 편입니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유독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약은 콜레스테롤을 잡아먹는 세포가 더 많아지도록 합니다(정확하게는 이 세포 수용체가 사라지는 걸 막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몸 전반에 작용하며 콜레스테롤을 효과적으로 줄입니다.
이 약은 단숨에 60%의 저밀도 콜레스테롤 강하 효과를 보였습니다. 여기에 고용량 스타틴을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75%, 에제티미브까지 추가하면 최대 85%의 강하 효과가 나타납니다. 수치 200㎎/㎗인 사람을 30㎎/㎗까지 낮출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제약바이오 업계와 의학계는 이제 이 약을 통해 0㎎/㎗에 가까운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고 있습니다.
[이해영 /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PCS-K9 억제제는 가족성 고지혈증의 유전에서 원인이 되는 기전을 조절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선 병의 원인을 해결하는 약입니다. 스타틴이나 에제티미브는 결과로 나온 찌꺼기를 해결한다면 이 주사는 원인을 해결하기 때문에 좋은 부분이 있고요. 현재는 2주에 한 번 주사를 맞는데 백신 기술이 발전되면 6개월에 한 번으로 늘어나는 게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6개월에 한 번으로 늘어난다면 약을 빼고 콜레스테롤의 치료도 백신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겁니다. 1년에 두 번 백신 맞고 콜레스테롤을 해결하자고 할 수도 있어서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국내 이상지질혈증 환자 1만2천여명 중 치료를 받은 환자는 8천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 환자 중 꾸준히 치료를 지속하는 환자는 5천명도 채 안 됐습니다. 2015년 기준 저밀도 콜레스테롤의 강하 목표 수치를 달성한 환자는 전체의 47.6%에 불과했습니다.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데 물론 약 말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살을 빼는 것입니다. 지방을 적게 먹는다,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다 하는 것은 큰 영향이 없습니다. 잉여 칼로리를 잘 관리해 몸에 영양 과잉 상태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유전 등의 이유로, 살을 아무리 적정 체중으로 줄여도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여전히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습관 개선으로 낮출 수 있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30㎎/㎗가 한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증상은 없지만, 심장은 높은 콜레스테롤의 영향으로 조금씩 다치고 있습니다. 의학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한 방법으로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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