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0억 싱가포르 장관이 뇌물을? ‘청렴국가’ 정치경제학[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3. 7.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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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내총생산(GDP) 아시아 1위, 국가 청렴지수 아시아 1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아시아 1위, 외국인직접투자 성과 지수 아시아 1위. 어느 나라인지 아시겠나요? 바로 싱가포르입니다. 천연자원도 나지 않는 영국 식민지였던 작은 도시국가가 1965년 독립한 뒤 급성장한 스토리는 아무리 봐도 놀라운데요.

싱가포르가 요즘 초대형 부패스캔들로 들썩입니다. 워낙 부정부패 없는 청렴한 국가로 명성이 높은 싱가포르라서 이 사건이 더 흥미로운데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게 부패척결에 나서온 싱가포르 이야기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싱가포르인데, 설마 장관이 뇌물을?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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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거물과 교통부 장관의 부패스캔들

‘S 이스와란 장관은 부패행위조사국(CPIB)이 밝혀낸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이 7월 12일 이런 내용의 짤막한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곧이어 이스와란 교통부 장관과 말레이시아 출신의 부동산 재벌인 옹벵셍 호텔프로퍼티(HPL) 설립자가 전날인 11일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아니, 싱가포르의 내각 장관이 부패사건으로 체포됐다고?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부패행위조사국이 내각 각료를 조사를 한 게 1986년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형 부패 스캔들이 싱가포르에선 참 오랜만인 건데요.

조사 중인 사건의 내용은 일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해마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스트리트 서킷에서 열리는 포뮬러원(F1) 야간 대회와 관계있을 거란 관측만 나옵니다. 호텔∙리조트 재벌인 옹벵셍 회장은 2008년 F1 대회를 싱가포르에 유치한 당사자이죠. 지금도 F1 싱가포르 대회를 운영하는 싱가포르 그랑프리 조직위(싱가포르GP)를 이끌고 있고요. 싱가포르GP는 지난해 F1 측과 2028년까지 경주를 열기로 계약을 연장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힘을 보탠 정부 관계자가 바로 S 이스와란 교통부 장관입니다.
이스와란 장관(왼쪽)과 옹벵셍 회장(오른쪽), F1의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CEO가 다정하게 셀카를 찍고 있다. 이스와란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사진.
특히 언론은 옹벵셍 회장에 주목하는데요. 싱가포르∙영국∙몰디브∙세이셸에서 고급 호텔∙리조트를 운영하는 기업 오너인 그는 ‘마이더스 손’으로 통합니다. 1980년 HPL 창업 이후,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뒀기 때문인데요. 싱가포르 자산 순위 24위인 그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자비한 사업가’란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인 리콴유 전 총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친구로 유명하죠.

이번 사건을 계기로 1996년에 옹벵셍 회장과 고 리콴유 전 총리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의혹도 재조명되는데요. HPL이 리콴유 당시 총리와 그의 아들 리셴룽 당시 부총리(현재 총리)에게 고급 아파트 4채를 할인해주는 특혜를 제공했단 의혹이었습니다. 당시 조사 결과 리콴유 총리 부자 모두 무혐의로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말이죠.

이번 부패행위조사국의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잘 나가던 61세 교통부 장관 이스와란의 정치생명엔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1997년 정계에 입문한 이스와란은 2006년 내각에 임명돼 교통부와 함께 무역관계 장관을 겸임 중이죠. 싱가포르경영대학의 유진 탄 법학 교수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결과와 상관없이 ‘부패에 대한 무관용’ 원칙인 싱가포르에서 이번 조사가 이스와란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부패하지 않음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싱가포르에 확실히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못 피한다…초강력 부패조사국

지난해 열렸던 싱가포르 야간 F1 경주. F1 홈페이지
이쯤에서 싱가포르 부패행위조사국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도대체 어떤 기관이길래 내로라하는 현직 장관과 재벌을 조사는 물론 체포까지 하는 걸까요. 부패행위조사국의 역사를 알면 싱가포르가 왜 국제투명성기구 선정 청렴국가 세계 5위(아시아에선 1위)에 올랐는지를 알 수 있는데요.(참고로 미국은 24위, 대한민국은 31위)

부패행위조사국은 영국 식민정부 시절이던 1952년 처음 생겨났습니다. 조사관 13명의 작은 조직이었죠. 그 시절 싱가포르는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가난하고 무질서했습니다. 부패는 매우 흔했고,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죠. 특히 경찰의 뇌물 수수가 만연했는데요. 영국 식민정부가 이를 척결하려고 경찰 내부에 ‘반부패부서’를 만들었지만 당연히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래 가지곤 안 되겠다, 독립기관으로 만들자 하고 별도의 조직을 설립한 게 부패행위조사국의 시작이었죠.

1959년 36세 나이로 자치정부 초대 총리가 된 리콴유는 ‘부패에 대한 무관용’을 내걸고 부패행위조사국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1960년 부패방지법을 만들어, 공공과 민간의 모든 부패행위를 조사할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죠. 부패가 저질러졌다는 믿을 만한 정보나 합리적인 의심이 있으면 영장 없이 체포하고 증거를 압수할 수 있게 했습니다. 부패행위조사국은 총리에게 직보하는 독립기관의 위상을 갖게 됩니다. 다른 장관이나 정부기관에는 보고조차 하지 않죠. 부패행위조사국 설립 60주년(2012년) 기념 책 서문에서 리콴유 전 총리는 이렇게 썼습니다. “만약 총리가 조사 진행을 거부하면 부패행위조사국은 대통령에게 사건을 가져갈 수 있다. 즉, 아무도 면제되지 않는다.
펄럭이는 싱가포르 부패행위조사국 깃발. CPIB 홈페이지
부패행위조사국은 갈수록 세를 확장하며 대형 부패사건을 속속 적발∙폭로합니다. 처음엔 마약∙도박조직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경찰에 집중했지만, 1975년 인도네시아 사업가로부터 방갈로를 받은 정부 장관을 해임시키면서 명성이 한층 높아졌죠.

1986년엔 국가개발부 장관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기소 직전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리콴유 총리는 “국가개발부 장관처럼 저명한 장관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대중이 알면 뉴스가 야생처럼 퍼질 것”이라며 처음엔 비공개 조사를 요청했는데요. 일주일 뒤 부패행위조사국이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들이밀자 결국 공개조사를 승인했죠. ‘아무도 면제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통한 겁니다.

물론 때로는 부패행위조사국이 너무 오버한다는 비판도 있긴 합니다. 불과 1싱가포르달러(약 950원)의 뇌물을 받았다며 지게차 운전자를 기소∙투옥한 적도 있기 때문인데요. 진짜 무관용인 거죠.

그래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대부분은 이런 원칙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2022년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6%가 ‘싱가포르의 부패통제 노력이 좋다’고 응답했는데요. 특히 부패를 잡겠다는 정치권의 의지, 부패범죄에 대한 중형(10만 싱가포르달러 이하 벌금+5년 이하 징역형), 무관용 문화가 낮은 부패율에 기여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장관 연봉 10억, 총리 20억원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 동아일보DB
리콴유 전 총리는 왜 그렇게 부패 척결에 집착했을까요. 부패 없는 깨끗한 나라가 돼야만 싱가포르에 희망이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요. 천연자원도 나지 않는 작은 도시국가가 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일단 ‘청렴국가’가 돼야만 한다고 본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리콴유 총리는 1994년 공무원 연봉을 대폭 올리는 개혁을 단행합니다. ‘최고 인재에 최고 대우’를 내걸고 공무원 연봉을 깜짝 놀랄 수준으로 확 올려버립니다. “싱가포르가 장기적으로 정직하고 유능한 리더십을 가질 수 있으려면 관료들에게 적절한 급여가 지급돼야 한다”(리셴룽 현 총리 2011년 취임식 발언)는 논리입니다.

싱가포르 공무원 연봉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인재들이 민간기업에서 받는 수준과 비슷하게 맞추는데요. 특히 장관급이 되면 연봉이 확 뛰어서 110만 싱가포르달러, 우리 돈으로 10억5000원이나 됩니다. 장관 연봉은 민간 최상위급에 가깝게 맞춘다는 급여공식에 따른 겁니다. 싱가포르 시민 중 소득 상위 1000명의 중간소득을 뽑아서, 그 60%를 초급 장관 연봉을 정하는데요. 총리는 장관의 두배를 받기 때문에 연봉이 220만 싱가포르달러(21억원)입니다.

참고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연봉이 40만 달러(약 5억2000만원)입니다. 싱가포르 총리 연봉이 미국 대통령의 4배 수준인데요. 전 세계 국가지도자의 공식 연봉 중엔 단연 1위이죠.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관료들의 기념사진 촬영 모습. 싱가포르 공무원은 높은 연봉과 함께 민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 채용 홈페이지
그런데 돈을 많이 주면 부패 없는 깨끗한 나라가 되는 게 맞을까요? 사실 그 상관관계가 명확히 밝혀진 건 아닙니다. 다만 2013년 미국 경제학자 르네 보웬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선 주지사가 더 많은 돈을 받는 주에서 최저임금이 더 높고, 전체 세금 중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는데요(따라서 주지사 월급을 올려주면 유권자가 살기 좋아진다는 결론).

어찌 됐든 적어도 싱가포르에서는 공무원에 높은 연봉을 주는 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는 2007년 고위공무원 연봉을 대폭 인상할 필요성을 설명하며 이런 유명한 발언을 남겼죠.

“알다시피 ‘대화의 치료법’는 무능한 정부를 위한 것입니다. 그걸 얻으면 싱가포르는 다시 통합되지 않을 겁니다. 자산 가치는 사라질 거고, 안전은 위험에 처할 거고, 우리 여성들은 다른 나라에서 가정부가 될 것입니다. 난 그걸 택할 수 없습니다!

부패와 FDI의 명확한 상관관계

부패 없이 깨끗한 나라라는 청렴국가 이미지는 싱가포르의 국제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다. 게티이미지
공무원한테 후하게 연봉을 줬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싱가포르의 청렴도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은데요.

싱가포르는 사실 대규모 제조업을 유치할 정도로 인건비가 싼 것도 아니고, 천연자원이 나는 것도 아니죠. 그럼에도 외국인직접투자가 밀려듭니다. 인베스트먼트 모니터가 각국의 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FDI) 성과를 평가한 점수에 따르면 싱가포르가 전 세계에선 8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선 1위인데요.

왜 다른 나라 기업이 싱가포르에 투자하려 할까요. 흔히 다문화 사회, 영어구사력, 물류적 접근성, 비교적 낮은 법인세율(17% 고정 세율) 등이 그 이유로 꼽히는데요. 동시에 매우 중요하게 거론되는 게 낮은 부패율(높은 청렴도)입니다.

부패는 외국인직접투자를 얼마나 갉아먹을까요. 좀 오래된 1997년에 나온 연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데요. 전미경제연구소(NBER)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청렴도 높음)에서 멕시코(부패율 심함) 수준으로 국가의 부패 수준이 높아지는 건 법인세율을 약 21%포인트 높이는 것과 같은 외국인직접투자 감소 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국가의 청렴도가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기업 입장에선 세금을 깎아주는 것과 같은 경제적 효과를 올리는 셈이죠. 왜 그렇게 싱가포르 정부가 부패척결을 위해 노력해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물론 최근 몇 년만 보면 ‘니어쇼어링’ 효과로 멕시코 FDI가 증가하는 추세이긴 합니다만).

그런 점에서도 이번 이스와란 장관과 옹벵셍 회장의 부패스캔들은 놀랍습니다. 과연 싱가포르 정부가 이번도 철저한 ‘무관용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싱가포르 여당인 인민행동당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또다른 스캔들도 며칠 전에 터졌죠. 바로 국회의장(유부남)과 여당 의원(싱글 여성)이 수년간 불륜관계를 이어온 게 발각돼 17일 동반 사퇴한 겁니다. 물론 이건 부패(뇌물)사건은 아니지만 연이은 스캔들에 집권여당 분위기가 흉흉합니다.

좋게 말하면 정치적으로 안정됐고, 나쁘게 말하자면 사실상 ‘일당 독재’인 게 싱가포르 정치 지형의 특징인데요. 연이은 악재로 1965년 독립 이후 모든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해온 인민행동당의 입지가 혹시 흔들리려나요? 전 세계가 싱가포르 스캔들에 주목합니다. By.딥다이브

9만1100달러. IMF가 올해 4월 집계한 싱가포르의 1인당 GDP입니다. 미국보다 많을 뿐 아니라 홍콩의 1.7배, 일본과 한국의 2.6배인데요. 이렇게 권위주의적인 국가가 이렇게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다니. 참 이례적이라서 흥미로운 국가입니다. 오늘은 강력한 부패척결이라는 싱가포르의 한 단면을 들여다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싱가포르에서 37년 만에 장관과 관련한 부패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재벌과 함께 체포돼 조사를 받는 중입니다.

-싱가포르는 건국 초기부터 부패 척결에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독립기관인 부패행위조사국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성역없는 수사를 벌입니다. 청렴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공무원 연봉을 대폭 올려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주는 것도 부패 유혹에 빠지는 걸 막으려는 목적이 큽니다. 실제 정부의 부패수준은 해외 직접투자 규모와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요. 싱가포르의 부패에 관한 ‘무관용’ 원칙은 계속 유지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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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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