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사이언스] 헌법과 과학…"'경제발전에 종속되는 과학기술' 바꾸자"

나확진 2023. 7.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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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에는 '과학'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올까? 단 2번 '과학'이 언급된다.

첫 번째는 헌법 22조 2항 '저작자ㆍ발명가ㆍ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조항이고, 두 번째는 127조 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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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나확진 기자 = 대한민국 헌법에는 '과학'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올까? 단 2번 '과학'이 언급된다.

첫 번째는 헌법 22조 2항 '저작자ㆍ발명가ㆍ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조항이고, 두 번째는 127조 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이다.

그나마 이 조항들도 75년 전 1948년 7월 제헌헌법이 만들어질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

헌법에 처음 과학이 언급된 것은 1963년 시행된 제5차 개정헌법에서다.

제헌헌법 [촬영 이충원]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당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과학진흥에 관련되는 중요한 정책수립에 관해 대통령 자문 기구로 경제과학심의회의를 둔다'는 조항에서 처음으로 헌법에 '과학'이라는 단어가 언급됐다.

이후 헌법 개정 때마다 표현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국가가 '경제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을 진흥 또는 혁신·개발해야한다는 기본 형태는 유지됐다.

이 때문에 과학계에서는 과학기술 발전에 발맞춰 헌법상 과학기술 조항에 대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과학기술이 국민의 삶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국민의 기본권으로서의 과학기술 향유와 국가의 과학기술 육성 책임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폭넓게 담을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과학자·공학자 단체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2018년 과학기술인 1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경제에 종속돼 있는 헌법상 과학기술 조항의 개정'을 청원했다.

ESC는 당시 "헌법 127조가 과학발전에 있어 발목을 잡고 있는 조항이 되고 있다"며 "과학기술이 경제발전뿐 아니라 문화융성, 국민복지, 환경과 문화 등 기여할 분야가 넓어지고 있고, 경제의 테두리를 넘어 4차산업혁명 시대의 흐름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헌법이 과학기술을 여전히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관점"이라며 127조 1항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삼도록 명시한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나아가 헌법 9조에 '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을 추가하자고도 주장했다.

이 청원은 당시 국회 개헌 특위에 회부됐지만, 특위 활동이 2018년 6월 30일로 만료되면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로 옮겨졌다.

이후 당시 국회 과방위 신항진 전문위원은 검토 의견에서 "사회가 변화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해 시대가 요구하는 임무도 변화하고 있고,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을 넘어 국민의 삶의 질 향상 등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역할 변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인의 주장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신 전문위원은 다만 "과학기술 관련 규정만을 개정하기 위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향후 국회나 행정부에서 헌법개정안을 마련하는 절차가 진행될 경우 이같은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의견을 토대로 2018년말 국회 과방위는 "청원의 취지는 타당하나 헌법 개정에 관한 사항이므로 위원회에서 논의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며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이후 개헌 논의가 크게 불붙지 않으면서 최근까지 헌법상 과학 관련 조항 개정 논의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정철 국민대 법대 교수는 2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헌법상 과학관련 조항을 바꾼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조항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과학계를 포함해 논의해야겠지만, 경제 발전과 과학기술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공감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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