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가득 찬 수조에서 몸부림치는 배우…관객도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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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홑몸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수조에 갇힌 임산부가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이 연출은 제주 해녀들이 인터뷰 도중 "물질할 때 매일 죽으러 들어갔다 살아서 나온다"고 말한 대목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물속에서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벌려봐도 공기 방울만 나올 뿐 아무런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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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나는 홑몸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수조에 갇힌 임산부가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서는 물건이 하나씩 떨어지고, 물건을 줍기 위해 계속해서 물에 뛰어드는 임산부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공연 '물질'은 수조 속 몸부림으로 시작했다.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 등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을 만들어온 이진엽이 연출했다. 2018년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초연한 뒤 야외무대에서 공연해왔지만, 이번엔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3'의 프로그램으로 실내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 연출은 제주 해녀들이 인터뷰 도중 "물질할 때 매일 죽으러 들어갔다 살아서 나온다"고 말한 대목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공연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이들의 일상이 생사가 오가는 해녀의 물질처럼 위태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대 위 설치된 네 개의 수조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겉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이목구비부터 목의 각도까지 자기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임신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다니는 여성, 자기 몸을 훑는 타인의 시선에 위축된 성소수자, 반복되는 일상에 완전히 지쳐버린 남성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작품은 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들이 경험하는 일상을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수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일상에서 어떤 행동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벽에 기대앉아 사과를 먹던 임산부도, 물속에 편히 앉아 있고 싶은 남성도 시간이 지나면 물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버겁게 홀로 서 있는 이들에게서는 무력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소외된 사람들은 수조 속에 차오른 물로 인해 소통도 불가능하다. 물속에서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벌려봐도 공기 방울만 나올 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을 제대로 보라는 듯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수조 밖으로 던지는 모습은 이들의 절실한 심정을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은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가장 단순한 해결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직접 수조에 빠져들어 말을 건네고 대화를 나누면 된다고 말한다.
극 후반부 객석 주변에 앉아있던 난민 네 사람이 등장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물에 뛰어드는 용감함을 보여준다. 난민의 몸을 딛고 수조 밖으로 나온 배우는 즉석에서 관객을 무대 위로 초대한다.
영문도 모른 채 무대에 오른 관객은 '휴대전화, 지갑 등 귀중품을 넣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박스가 등장하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다. 장난 같은 상황에 모두가 웃기 시작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배우의 모습에 상황은 진지해진다.
철저한 관찰자였던 관객이 사다리를 한 걸음씩 올라 서서히 수조로 들어가는 모습은 울림을 남긴다. 소외된 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물에 뛰어드는 공포를 이겨낸다면 전혀 어렵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홀로 서 있기에도 좁아 보였던 수조에 몸을 담근 난민과 관객은 수조 안에서 친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등을 맞댄 채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물에 편안히 떠오르기도 한다.
'물에 몸을 함께 담그면 서로에게 몸을 기댈 수 있다'는 사실에서 강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공연은 23일까지 이어진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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