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업체·조합 ‘비리사슬’…여전히 움트고 있는 ‘참사의 싹’

이문영 2023. 7. 2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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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토요판S] 커버스토리
광주 학동 참사 2년 <하> 참사의 구조
2007년부터 조폭 출신 정비업자
재개발 개입하며 각종 이권 조정
불법 로비와 재하도급 등으로
49억 철거 공사비가 9억으로 ‘뚝’
연루 업체가 현장 철거도 마무리
언제 어디서 재연될지 모를 비극
광주 학동 참사 2주기인 지난 6월9일 오후 피해 버스와 같은 노선인 운림54번 버스가 철거를 끝낸 참사 현장을 지나고 있다. 광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날벼락은 하루아침에 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2007년 8월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식당에서 두 남자가 만났다. 정비업체(재개발·재건축 컨설팅) 책임자가 철거업체 전무에게 말했다.

“학동3·4구역(동구)에서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사업의 조합장들을 잘 알고 있다.”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가 호남지사장으로 일하는 ‘미래파워’는 두 조합과 계약을 맺고 재개발 업무 전반을 대행하고 있었다.

“조합장들에게 부탁해 철거업자로 선정되도록 해줄 테니까.”

‘그 간부’ 문흥식(현재 나이 62)이 요구했다.

“돈을 달라.”(문흥식 2012년 1월31일 판결문)

철거업체 전무가 동의했다. 3구역과 4구역에서 잇달아 조합이 설립(각각 2007년 7월과 9월)되던 시기였다. 한달 뒤 그 업체의 사내이사가 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문흥식을 만나 5억원을 건넸다. 같은 해 11월엔 회사의 감사가 동구의 고등학교 근처에서 1억5천만원을 줬다. 6억5천만원 모두 현금이었다.

‘그 업체’ 다원이앤씨는 ‘철거왕 이금열’이 사주인 다원그룹의 철거 쪽 계열사(이금열이 2001년 11월 설립)였다. 전무와 사내이사는 그의 첫째·둘째 동생이었고 감사는 고종사촌 동생이었다.

폭력조직 출신인 이금열은 한국 재개발의 ‘핏빛 역사’를 이끈 인물이었다. 그가 현장 지휘 책임자로 일했던 ‘적준’의 공포 철거는 철거민들에겐 잔혹함의 상징이었다. 그 적준을 이어받아 이금열이 설립한 다원은 불법과 탈법을 ‘사업 원리’로 정착시키며 업계를 선도했다. 아파트의 그늘에서 부동산 공화국의 ‘하부’를 떠받쳤던 이금열은 2000년대 초중반 시행과 시공으로 진출하며 그 자신 ‘상부’로의 도약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저지른 횡령·배임·사기·뇌물공여 혐의로 2013년 구속돼 징역 7년(항소심에서 5년으로 감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대 악명 높은 철거업자였던 그가 구속 당시엔 중견 건설사(청구)를 인수·운영하고 주요 금융기관으로부터 6500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는 도시개발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첫째 동생과 고종사촌도 ‘형의 사건’에 연루돼 별도의 재판을 받았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첫째 동생은 항소심 판결(2015년 6월) 두달 뒤부터 경남 창원시의 특혜 지원 아래 6천억원 규모의 ‘창원에스엠(SM)타운’ 건설에 뛰어들었다. 주상복합아파트와 케이(K)팝 문화시설을 결합한 신사업 모델의 파트너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였다.

이금열의 동생들이 문흥식에게 돈을 준 2007년은 다원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키우며 한창 자신감에 차 있을 때였다. ‘큰 꿈을 꾸는’ 형 대신 동생들이 철거업의 전면에 나와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다원이 2004년께부터 광주 학동을 주목했고 학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판결문) 문흥식이 다원에 손을 뻗었다. 조폭 출신이 일군 업계 1위(현재는 하락) 철거업체와, 지역 조폭 출신의 브로커와, 그 브로커와 긴밀히 얽힌 조합 등이 각자의 이익을 좇아 물고 물리기 시작했다.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 4구역 철거 현장 앞에 정차한 버스 위로 “악마의 소리를 내며 쏟아진 하늘”(희생자 김희진(가명)씨의 아버지이자 피해자 김원식(가명)씨)은 적어도 14년 전부터 그렇게 조금씩 갉아먹히고 있었다. 차곡차곡 준비된 참사였다.

준비된 날벼락

“ㄱ(74·1심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3억7천만원 선고·항소 기각)과 공범이 아니고 ㄱ과 같이 받았다는 돈은 나와 관련 없습니다.”

지난해 8월26일 검사가 “무고한 9명이 사망한 학동 붕괴 참사는 다시 일어나선 안 될 비극”이라며 징역 7년을 구형하자 문흥식이 최후진술에서 반박했다. 그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철거공사를 얻게 해주는 대가로 업체들로부터 12억9천만원 수수)를 따지는 재판에서 검사는5억9천만원을 ㄱ과 공동으로 받은 돈으로 봤다. 문흥식은 “(돈을 받아 내게 전달했다는) ㄱ의 진술은 분명한 거짓”이라며 “모든 돈이 ㄱ에게만 건네졌다”고 주장했다. ㄱ을 통해 돈을 줬다는 철거업체 대표들의 법정 진술을 두곤 “나를 끌어들이려는 물귀신 작전”이라며 비난했다. 한달 뒤 열린 선고(징역 4년6개월과 추징금 9억7천만원·항소심 진행 중) 공판에서 재판부는 5억4천만원을 ㄱ과 공동 수수한 금액으로 인정했다.

학을 닮아 붙여진 동네 이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뽕밭과 목장이 있던 땅에 전쟁 피란민들과 살림살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이 찾아와 깃들었다. 그 노후주택들을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2000년대 초부터 일었다. 3구역과 4구역은 시공사(HDC현대산업개발·현산)와 정비업체(미래파워)가 같았다. 철거업체(다원이앤씨와 한솔기업)도 동일했다. 3구역은 2017년 1월에 준공·입주했고, 4구역에선 2018년 2월 조합과 현산이 4630억원의 시공 계약을 맺었다. 문흥식은 정비사업자로 양쪽에 모두 관여했다.

문흥식이 ㄱ을 통해 돈을 건네거나 받는 일은 둘 사이의 오랜 ‘역할 분담’이었다. 그들은 학동에서 “30년 이상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판결문) 선후배였다. 둘 다 조폭으로 활동했으나 몸담은 조직은 달랐다.

ㄱ은 40년 넘게 학동에서 살며 “학동 일대를 무대로 유흥가 갈취 및 폭력행위를 일삼는 패거리 학동파”(조직원 연루 판결문들)의 두목이었다. 3·4구역 조합장과는 친구 사이였다. 학동파는 경찰의 관리명단엔 없는 ‘동네 조폭’이었다. 문흥식은 신양오비(OB)파의 행동대장 출신이었다. 신양오비파는 1984년 결성된 “전국단위 폭력조직(경찰 관리 인원 48명)”이었다. “선배를 보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하고, 선배의 지시에는 무조건 복종하며, 반대 세력이 활동 구역에 침범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고, 조직을 배신한 자에게는 반드시 보복한다”는 행동강령을 따랐다. 2018년 11월 수도권에서 온 원정 조폭 ‘인천간석식구파’와 광주에서 충돌해 25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1998년 4월 ㄱ은 시내 한 다방에서 광주 동부경찰서의 형사(경장·징역 10개월)를 만나 150만원을 건넸다. 도피 중이던 문흥식을 대신한 돈 심부름이었다. 문흥식이 미리 형사에게 전화해 청탁해뒀다.

“(나를 수사 중인) 합수부 형사들(광주지검 강력부에 파견된 형사들)에게 부탁해 검거 활동을 형식적으로 하게 해달라.”

당시 문흥식은 자신이 공급하는 활어를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강제로 떠안도록 상인들을 공갈·협박(1999년 2월 징역 2년 선고)한 일 등으로 수사기관에 쫓기고 있었다. 돈을 받은 형사는 며칠 뒤 문흥식 사건 수사를 위해 검찰에 파견 나가 있던 전남경찰청 형사(경사·해고)와 저녁을 먹었다. “(문흥식 청을 들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부탁한다”며 자신이 받은 돈 중 50만원을 떼어 줬다. 이후 파견 형사는 문흥식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던 중 그가 작성한 ‘경찰 뇌물 장부’ 두 권을 확보했다. 수사팀에 제출하는 대신 집으로 가져가 보관하다 문흥식이 집 앞으로 보낸 남자에게 돌려줬다. 장부를 받아온 남자도 ㄱ이었다.

미래파워 호남지사장이던 2006년 문흥식은 고등학교 친구와 대부업체를 차렸다. 그해부터 2008년까지 최소 72%에서 최대 542%의 이자를 받아 대부업법을 위반(2009년 10월 벌금 500만원 선고)했다. 법정이자율 상한선이 연 66%(2007년 10월부턴 49%)이던 시절이었다. 회사를 만들 때 그는 친구와 작명가를 찾아가 상호를 지었다. 대부업체에 붙인 그 상호를 문흥식은 2007년 1월 설립한 재개발·재건축 대행업체(대표는 아내)의 이름으로 가져다 썼다. 그 회사 ‘미래로개발’을 앞세워 자신이 호남지사장으로 있던 미래파워와의 관계를 재설정했다. 호남지사가 맡아온 학동3·4구역 등의 재개발 업무를 2008년 10월 미래로개발이 승계했다. “학동에서 사업을 하려면 문흥식을 통해야 한다는 말들”(재판 증인들 진술)이 용역계약을 원하는 업체들 사이에 퍼졌다. 2019년 12월 문흥식은 5·18구속부상자회장이 됐다. 그는 5·18 단체까지 금품 수수 논리(“구속부상자회 관련해서 돈이 필요하다”)로 이용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붕괴 참사 직후 미국으로 도피했던 브로커 문흥식씨가 90일 만인 2021년 9월11일 인천공항에서 체포(변호사법 위반 혐의)돼 방역복을 입은 채로 광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난발하는 이익공동체

“학동4구역 조합장에게 청탁해 각종 철거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2016년 봄 다원이앤씨 대표를 만난 ㄱ이 말했다.

“돈을 달라.”(문흥식과 ㄱ의 판결문)

다원 대표가 수락하자 ㄱ이 날을 잡아 문흥식의 사무실로 그를 데려갔다. 다원 대표가 문흥식에게 1억원을 건넸다. 9년 전 일이 되풀이됐다. 몇 가지 다른 점도 있었다.

중간에 ㄱ이 끼어 있었다. 다원이앤씨 대표는 이금열 형제의 고향 후배(46)가 맡고 있었다. 문흥식은 다원의 고소(‘2007년 돈만 받고 약속 어겼다’)로 2011년 구속돼 징역 1년의 실형을 살고 나왔다. 그 ‘악연’도 재개발이 본격화되자 ‘옛일’이 됐다. “특정 브로커를 통해야 공사를 받을 수 있다면 옛일 때문에 돈을 안 줄 순 없다”(다원 대표의 경찰 진술)는 이유였다.

철거업체와 브로커 간의 관계가 그렇게 일방적이진 않았다. 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브로커들이 업체에 접근하기도 했지만 업체들이 브로커들을 부추겨 사업을 추진하고 조합 결성 뒤 이권을 쓸어가기도 했다. 선후는 중요치 않았다. 그들은 이익공동체였다. 공동체인데 너무 많은 공동체가 학동에서 꾸려졌다.

① 철거 공정별로 돈을 주고받은 브로커·업체끼리 팀 또는 라인이 짜였다. 다원은 시공사로부터 일반 철거(건축물 철거)와 조합으로부터 석면 철거, 범죄예방·이주관리·토지수용 용역 등의 수주를 기대하며 ㄱ을 통해 문흥식에게 3억원(5차례)의 돈을 건넸다. 한솔은 일반 철거와 지장물(시설물·창고·농작물·수목 등) 철거를 따게 해달라며 4억4천만원을 4차례에 나눠 두 사람에게 줬다. 미강은 브로커 ㄴ(62·전 조합 이사)을 통해 줄을 댔다. 지장물 철거와 정비기반시설(도로·상하수도·공원 등) 공사 수주를 기대하며 2억1천만원을 두번에 나눠 줬다.

② 브로커 간 접촉 업체들이 교차하며 새로운 결합이 맺어졌다. 미강의 2억1천만원엔 일반 철거를 원했던 양창이앤씨 대표의 돈 1억원이 포함돼 있었다. 미강 대표는 ㄴ(징역 3년6개월에 추징금 2억1천만원·항소심에서 2년으로 감형)을 통해 문흥식과 만난 뒤 ㄴ의 승용차 트렁크에 전액 현금으로 넣었다. ㄱ은 ㄷ(71·부동산업자·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 추징금 5천만원)과 공모해 일반 철거를 기대하는 신명성이앤씨로부터 1억원(2019년 4월)을 받았다.

③ 브로커들은 한 공정을 두고도 경쟁 업체들로부터 동시에 돈을 받았다. 문흥식과 ㄱ은 일반 철거를 미끼로 다원과 한솔에서 따로 돈을 받았다. “계약 성사보다 돈을 받는 것 자체가 목적”(수사 경찰)인 탓이었다. 문흥식은 일반 철거를 바라는 현대환경산업한테도 5억원(2019년 1월)을 혼자 받았다. 짝으로 움직이던 브로커들이 상대 몰래 개인플레이를 했다. ㄱ도 정비기반시설 공사를 얻게 해주겠다며 효창건설 대표에게 5천만원을 혼자 받았다.

④ 브로커들 간에도 ‘힘의 우위’가 있었고 업체들은 ‘더 센’ 브로커를 잡기 위해 돈을 썼다. 미강 대표는 자신이 청탁했던 ㄴ이 돈을 요구하자 ‘문흥식과 만나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다른 업체들(다원·한솔)이 우리보다 더 앞서가는 이유가 (학동에서 더 실력자인) 문흥식이 밀어주기 때문이라고 판단”(법정 진술)했다. 돈(①~②)은 ㄴ과 함께 문흥식을 만난 뒤 건넸다.

“부탁받으면 들어주는 게 업계 관례입니다.”

지난해 6월10일 문흥식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중장비 임대업자 서○○이 말했다. 철거업체들이 브로커들에게 건넨 현금은 허위 매출과 고철 매각 대금으로 조성했다. 평소 거래하던 업체들을 상대로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그 대금을 계좌로 송금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증인은 “(통장에서 인출한 3천만원을 들고) 다원 사무실에 가서 ‘돈 가져왔다’고 했더니 직원이 나와서 받아갔다”고 진술했다. 철거현장에서 수거한 고철을 업자에게 넘긴 뒤 매각 대금 일부를 누락시켜 현금으로 받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브로커 4명에게 간 현금은 모두 16억원이었다. 하늘에도 그만큼 금이 갔다.

2021년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에서 굴착기가 건물 뒤쪽을 파고들며 철거하고 있다. 몇 시간 뒤인 오후 4시22분 이 건물이 앞으로 무너지며 정류장에 정차한 운림54번 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참사의 구조’가 갖춰지자

성공한 로비였다.

브로커에게 돈을 준 업체들이 용역계약을 따냈다. 일반 철거는 한솔이 현산으로부터 49억5800만원에 공사를 받았다.(이 과정에서 현산의 상무가 한솔에 입찰가를 미리 알려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석면 철거는 다원이앤씨와 지형이앤씨가 50 대 50으로 공동 수주(22억원)했다. 거산건설과 한솔, 대건건설은 각각 50 대 25 대 25로 지장물 철거를 공동 수급(28억원)했다. 정비기반시설 공사는 효창건설과 에이치에스비(HSB)건설에 50 대 50으로 분할(95억원)됐다. 양창이앤씨는 범죄예방·이주관리·토지수용 용역을 13억원에 계약했다. 공정별 컨소시엄은 ‘브로커-업체 돈거래’ 난발이 양산한 ‘나눠 먹기’의 결과였다.

토막 난 듯 보이는 계약들엔 ‘이름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지형이앤씨는 한솔 계열사였고 대건건설은 다원 계열이었다. 거산건설과 에이치에스비건설은 미강 쪽 회사들이었다. “지역업체 가산점을 받을 목적으로 해당 지역에 주소지를 설정한 이름”(경찰)이거나 “형사처벌 전력 등을 감추기 위한 명의 세탁 성격”(재개발 비리 전문가)도 있었다.

한솔이 단독 수주한 것처럼 보이는 일반 철거에도 ‘뒷거래’는 있었다. 2020년 9월17일 현산에서 일반 철거를 낙찰받은 한솔은 정식 계약(9월28일) 체결 일주일 전인 9월21일 다원이앤씨와 별도 계약을 먼저 맺었다. 공사 이익금을 70 대 30으로 나누는 이면계약이었다.

“(다원이) 문흥식에게 돈을 전달하면서까지 영업했지만 (입찰에서) 결국 탈락하자 문흥식을 소개한 ㄱ에게 문흥식한테서 돈을 (돌려)받아 달라고 했지요?”

지난해 5월16일 붕괴 참사의 책임을 묻는 재판(현산 등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다원이앤씨 대표는 변호인의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변호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솔의 김○○(대표)가 전화해서 건물 철거의 30%를 인정해주겠다고 했지요?”

“네.”

이면계약에도 브로커들의 개입이 있었단 뜻이었다. 학동3·4구역에서 경쟁·협력한 다원 대표와 한솔 대표는 고향 선후배 사이였다. 그들의 고향인 전남 완도군 금일도는 두 회사 사주인 이금열과 김○○ 형의 고향이기도 했다. 검사가 반대신문을 했다.

“공사 비용 제외하고 수익금을 어느 정도 예상한 건가요?”

“(다원 몫으로) 5억원 정도(실제로는 2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 예상했습니다.”

“(실제 철거는 재하도급 받은 업체가 하니까 한솔은 물론 다원 역시) 이 현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5억원을 가져간다는 거네요?”

“기존에 (브로커 통해) 영업했던 비용이 있으니까 그 비용을 보전받기 위한 겁니다.”

재판장이 물었다.

“(일반 철거 수주 대가로) 문흥식에게 얼마를 전달했죠?”

“1억원을 제시했습니다.”

“1억원을 주고 5억원을 받는 거네요?”

“우리가 영업 활동을 많이 했고, 그사이 물가도 많이 오르고, 공사비도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불법 로비 자금을 회수할 때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야 하고, 자신들이 하지도 않은 공사의 비용 증액분까지 보전받으려면 부당한 액수는 아니란 주장이었다.

한솔은 현산과 일반 철거 용역계약을 체결한 바로 그날 백솔건설에 불법 재하도급했다. 49억5800만원짜리 철거공사가 한나절 만에 11억6천만원짜리 공사로 돌변했다. 평당 공사비 28만원은 4만원으로 급감했다. 한솔 대표는 평당 5천원(총 2억원)을 현금으로 되돌려달라는 ‘백마진’까지 백솔에 요구했다. 결국 학동4구역의 실제 철거비용은 9억원(평당 3만5천원)까지 떨어졌다. 비리 사슬→공사비 삭감→철거 공법 변경으로 이어지는 ‘참사의 구조’가 형태를 갖추자 2021년 6월9일 “지진이 난 것처럼”(굴착기로 작업하던 백솔 대표) 건물이 무너지며 버스를 덮쳤다.

붕괴 참사로 중단됐던 학동4구역 철거 공사가 1년5개월 만인 지난해 11월7일 재개됐다. 연합뉴스

“부자간에 하면 안 되죠, 그런데…”

“조합원들 간에 다툼이 많아 분란을 해결해주는 역할로 (문흥식의 미래파워 고문 위촉을) 요청받았습니다.”

지난해 5월13일 문흥식 재판에 증인 출석한 정비업체 미래파워 대표가 답했다. 문흥식이 2018년 10월 미래파워 고문(당시는 퇴사해 회사와 무관) 자격을 갖게 된 과정을 두고, “조○○이 두번 연락해서 (위촉)해 달라고 했는데, 맞냐”며 검사가 물었을 때였다. 2018년 10월31일 조○○(74)의 학동4구역 조합장 당선에 조력했던 문흥식이 당시 자신을 ‘미래파워 고문’이라고 소개했던 경위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개표 당일 문흥식은 건장한 남자들을 데려와 조합 사무실에 배치했다. 남자들이 조합원들 신분을 확인하며 사무실 출입을 통제했다. 부정투표 논란(조○○에게 유리하도록 서면투표용지 조작 의혹)이 제기돼, 조합 사무실에 일주일간 봉인해둔 투표함을 남자들이 강제 개봉했다. 문흥식에게 미래파워 고문직을 맡겨달라고 부탁했던 조○○이 새 조합장으로 선포됐다. 조○○과 문흥식은 3구역에서도 조합장과 정비업체 책임자로 손발을 맞춘 사이였다.

학동 재개발 비리는 조합에도 깊이 닿아 있었다. 전임 고○○ 조합장(80)은 광주 동구의회 의장(5대 후반기) 출신이었고, 조○○ 현 조합장은 부의장(6대 전반기)을 역임했다. 업체와의 ‘문제적 계약들’ 대부분은 고○○ 조합장 시기에 체결됐다. ‘문흥식 고문’을 끌어들인 선거에서 고○○을 밀어낸 조○○은 3·4구역 이권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이름이 거론됐다.

조○○은 1987년 병무청 직원과 군의관에게 아들의 병역면제 판정을 부탁하며 450만원의 뇌물을 줬다. 그 일로 2001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구의원 신분이던 2012년 1월엔 당시 지역 국회의원의 당내 경선을 앞두고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주민들에게 상품권을 불법 제공(공직선거법 위반)했다. 그해 6월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부자간에 하면 안 되죠.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총회 속기록)

조○○은 2018년 12월31일 4구역 조합원 총회에서 자신의 아들을 조합 이사로 앉힌 까닭을 설명했다. 비판 여론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조합에 대한 고소·고발을 막기 위해서’라며 “법을 전공했고 대학원을 나온” 아들에게 이사직을 맡겼다. 이듬해엔 조합 살림을 책임지는 총무이사로 선임했다. 법을 강조했던 조합장 부자는 학동 참사 뒤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부자의 배임은 3·4구역에 걸쳐 있었다. 조○○은 3구역 분양 종료 뒤 ‘보류지’(예비 물량) 한 채(3억8800만원 상당)를 공짜로 챙겼다. ‘(조합장 등에게) 인센티브 명목의 무상 지급 절대 불가’란 관할 구청의 행정지도를 받고서도 부동산 매매 계약에 따른 매입인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첨부해 구청에 제출했다. “수사가 시작되자 내지도 않은 분양 공고를 사후 조작하다 들통”(경찰)나기도 했다. “조○○이 보류지 값으로 지불할 돈을 조합이 대신 냈고, 그 돈은 조합원 분담금에 가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총무이사인 그의 아들은 시유지인 ‘백화마을’을 무허가 주택으로 둔갑시켜 분양권을 받았다. 백화마을(100가구가 모여 화목하게 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은 광복 이듬해 광주를 방문한 백범 김구 선생이 전재민들(일제에 강제동원됐다 돌아온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돈으로 학동에 조성한 마을이었다. 4구역에도 13가구가 남아 있었다. 문흥식의 후임인 미래파워 호남지사장이 광주시 소유인 주택을 주인 없는 건물로 서류를 꾸몄다. 그 건물에 조합장 아들 등이 살았다고 거짓 인우보증을 서고 분양권을 받게 했다. 그 대가로 아버지 조○○은 미래파워 호남지사장이 아내 명의로 만든 회사에 허위 용역을 발주해 1억9천만원의 부당이득을 안겼다. 조○○이 3구역에서 공짜 보류지를 얻도록 서류를 처리해준 인물도 호남지사장이었다.

조○○이 검찰로 송치(2022년 10월)되는 데만 참사 뒤 1년4개월이 걸렸다. 기소와 재판(지난 6월16일 1심 시작)이 늦어지는 동안 그는 조합장 자격을 유지하며 ‘현산의 시공권 재승인’ 등 학동4구역의 주요 결정들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참사 이후 자신을 향한 의혹들에 침묵(<한겨레>의 취재 요청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조합원들에겐 안내문을 보내 “인터뷰는 우리 조합에 대한 기사를 생산하게 되고 사회적 관심이 유지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시공사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이 학동4구역 붕괴 참사 이후 ‘시공권 재승인’을 호소하며 조합원들에게 제시한 업그레이드 아파트 ‘노블시티’의 소개 영상 일부. 현산은 ‘서울 강남급’임을 되풀이해 강조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비리 연루 업체도 재계약

‘하늘’은 학동에서만 갉아먹힌 것이 아니었다. 학동 참사를 일으킨 범죄·비리는 전국 어느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든 ‘털면 무조건 털리는 먼지’였다. 경찰은 현실적 한계를 토로했다.

“수사를 하면 100%가 아니라 1000% 범죄 사실이 확인될 게 분명하지만, 전면 수사를 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다.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데 의심만으로 수사를 할 수도 없다.”

그사이 ‘이 사업은 원래 그런 것’이란 듯 범죄 전력이 있는 업체들이 지역을 옮겨 다니며 같은 불법을 반복했다. 학동 참사 연루 업체들은 광주 서구 광천동재개발과 염주주공재건축사업에서도 입찰 담합을 저질렀다.

학동4구역에서 ㄱ에게 5천만원을 주고 정비기반시설 공사를 따낸 효창건설은 2017년 2월 삼무개발과 광천동재개발조합의 이주관리 용역을 공동 수주하기로 공모했다. 양창이앤씨에 ‘들러리 입찰’을 요청했다. 양창이 두 회사의 입찰가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도록 해 그들이 최저가로 낙찰받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양창 대표는 5년 뒤 학동4구역에서 ㄴ에게 1억원을 준 일로 검찰에 송치될 인물이었다. 45억원짜리 용역계약은 계획대로 효창과 삼무에 돌아갔다. 삼무는 다원 계열사였다가 분리된 회사였다. 이금열이 2003년까지 삼무 대표를 역임했고 그의 첫째·둘째 동생은 문흥식에게 돈을 주던 2007년 당시 삼무의 이사를 겸하고 있었다.

효창 대표는 2017년 10월과 2018년 1월에도 대건건설을 들러리 세워 염주주공재건축조합으로부터 지장물 철거(38억8천여만원)와 정비기반공사(64억9천여만원) 계약에 성공했다. 학동4구역에서 문흥식·ㄱ에게 돈을 주고 지장물 철거를 수주했던 대건건설의 대표는 다원이앤씨 대표와 동일인이었다. 다원이앤씨 대표는 2018년 1월 효창이 광천동재개발조합에서 기부채납용지 공사(198억3천만원)를 딸 때도 대건건설 이름으로 들러리를 서줬다. 이 일들(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로 효창과 다원 대표는 학동 참사 두달 전 각각 징역 1년6개월(집행유예 2년)과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참사 뒤 중단됐던 학동4구역 철거가 지난해 11월7일 재개됐다. 현대환경산업이 철거를 맡았다. 참사로 기존 업체들과 계약을 해지한 시공사 현산은 지난해 7월 현대환경산업과 일반 철거, 석면 철거, 폐기물 수집·운반 용역을 13억7천여만원에 통으로 계약했다. 이 업체 대표는 참사 전인 2019년 1월 일반 철거 수주를 기대하며 문흥식에게 현금 5억원을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 수주 실패 뒤 돈의 반환을 요구받은 문흥식은 2020년 9월 현산 상무(한솔기업에 입찰가를 알려줘 일반 철거를 낙찰받도록 도운 도시정비팀장)에게 ‘현대환경산업이 다른 사업구역에서 폐기물업체로 일을 잘했다’는 홍보성 문자를 보냈다. 석달 뒤 현대환경산업은 현산으로부터 폐기물 수집·운반·처리 업무를 20억3900여만원에 수주했다. 참사의 원인이 된 비리 연루 업체에 참사 현장 마무리 철거 용역을 준 이유를 현산은 “공사 참여 의사를 밝힌 업체가 해당 기업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조합과 분쟁 중인 몇 채를 뺀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학동4구역에서 사라졌다. 철거(5월 말 기준 94%)가 완료되면 그 자리엔 ‘아이파크’ 대신 ‘노블시티’(현산이 시공권을 방어하기 위해 제시한 업그레이드 아파트)가 들어선다. 9명의 생명을 앗아간 기억을 밀고 ‘고귀한 도시’가 솟는다.

광주/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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