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빈도 폭우가 퍼붓는다면…플러드 [황덕현의 기후 한 편]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2023. 7. 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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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영화 플러드 중 해일이 타임 브리지를 덮치는 순간 ⓒ 뉴스1 DB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어릴 적 장마는 꽤 운치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면 엄마께서 구워주시는 김치전을 먹으면서 책을 읽거나 가로수나 화단에 있는 나뭇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집중하다가 졸기도 했다. 센 비가 내려도 감탄하면서 처마 밑에 있을 뿐 그게 '큰 걱정'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새는 공포스럽다. '장마철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상청의 초여름 통보문은 '공포 실화로의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장맛비는 1년간 가물었던 논밭을 적셔준다기보다 때리는 것처럼 퍼부었다. 들판은 강이 됐고, 터널은 댐이 됐다. 올해도 안타까운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사상 사고는 인재(人災)지만 앞선 전제조건은 자연의 무서움이다.

전례 없던 폭우는 '극한호우'라는 표현을 탄생시켰다. 기존 '집중호우' 기준인 시간당 30㎜도 앞이 안 보일 정도인데, 극한호우는 시간당 50㎜ 이상의 비가 3시간 가량 올 것을 감안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또 불어나는 물에 영국 토니 미첼 감독의 2007년작 '플러드'(Flood, 대홍수)가 떠올랐다.

플러드는 런던 템스강으로 들이닥치는 폭풍 때문에 강물이 순식간에 역류하면서 도시를 침수시키는 걸 소재로 제작됐다. 전세계 주요 도시 대부분이 강가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 침수 위험성이 있는데, 영화는 조수간만 등을 이유로 건설한 수문의 무용론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런던의 위도는 51.50도로 아시아로 치면 러시아 사할린과 같은 곳에 있다. 해당 위도에서는 통상적으로는 폭풍이 들이닥치기 어렵다.

플러드는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북해 인근의 기압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폭풍이 강도를 잃지 않고 런던까지 유입되는 것을 가정했다. 영화 속 기상학자들은 '예측 모델을 통해 추적하고 있는데, 왜 폭풍의 진로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수상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존 데이터를 토대로 향후 기상 현상을 가정하는 수치 모델로는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플러드 내 영국 런던 템스강의 침수 예상지역 모습 ⓒ 뉴스1 DB

기후변화는 여러가지 극한 기상재해를 증가시키고 있다. 다니엘 스웨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홍수는 기후변화가 야기한 극한의 강우 현상이 빈도와 강도가 상반되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단기간 집중호우에 돌발 홍수가 어디든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는 다니엘 스웨인 교수를 비롯해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미국 오클라호마대 연구 성과를 종합해서 앞으로 범람, 즉 전 지구적인 홍수 가능성이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닷물과 강물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물이 더 팽창하기 때문에 인류가 구축해 놓은 '한계선'을 넘기 용이해진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홍수 사태가 '현란'(flashier)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자연으로서는 현란하겠으나 인류에게는 전례 없는 재난이기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에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강 범람'(River Flooding)을 '기후변화 지표'(Climate Change Indicators)로 만들어서 대중에 공개 중이다.

국내에도 환경부가 치수 목적으로 제작한 '홍수위험지도'가 있다. 다만 100억원을 들여서 만든 이 시스템은 상세 검색이 불가능하고 확대가 사실상 불가능해서 활용에 한계가 지속해서 지적되고 있다. 아울러 국가·지방하천에 대한 지도는 완성됐지만 도심 등의 지도 제작은 지지부진하다. 환경부는 이 지도를 내년까지 보완·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국립기상센터에서 황덕현 사회정책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영화 플러드에서는 연안(沿岸) 공학자가 목숨을 걸고 수문을 제어하면서 최악의 상황에서 런던을 구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게다가 영화는 단 한 번의 재난을 조명했으나 현실은 매년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해 수도권의 500년 빈도 폭우에 이어 이번 충청권 집중호우도 국가하천 설계 기준의 500년 빈도 강우량에 육박했던 걸로 추정되고 있다. 1000년 빈도 이상의 더 강한 기상 재난도 불가피하다는 추정이 나오는 상황에서, 영화 플러드는 기상 재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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