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안내원 ‘보복성 인사’ 종용한 입주자 대표…법원 “배상하라”
3년 전, 서울 강남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던 안내원 두 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습니다.
20년 동안 문제없이 일해왔던 두 사람이 갑자기 이런 처지가 된 원인, 노동청에 낸 진정서였습니다.
그동안 휴게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으니 밀린 임금을 달라며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는데, 9일 뒤 두 사람이 소속된 관리업체는 신규 안내원 채용 공고를 냈습니다. 그러더니 노동청 첫 조사 다음 날에는 두 사람을 대기발령했습니다.
안내원들은 괘씸죄로 인한 부당한 처우라며 회사에 즉각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실장은 "진정을 하면서 이 단지와의 인연은 끝났다", "입주자 대표가 빨리 조치하라 했다"며 근무지를 바꿀 테니 대기하라는 말만 내놓았습니다.
결국 안내원들은 임금 체불과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와 입주자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의 소송을 대리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관리업체에 불법 행위(불이익한 인사 조치)를 지시한 교사자로서, 입주자 대표도 공동으로 불법 행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진짜' 사용자한테 책임을 묻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는 소송"이라고 말했습니다.
KBS는 당시 소송 제기 소식을 보도했는데, 소송을 낸 지 2년 4개월 만에 1심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연관기사] 노동청 진정에 “여기선 일 못해”…강남 아파트서 무슨 일?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60757
결과는, 안내원들의 승리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72단독 류일건 판사는, 아파트 관리업체가 안내원 A 씨와 B 씨에게 미지급 임금과 연장근로수당, 퇴직금, 위자료 등 모두 천5백만 원가량을 각각 지급하라고 어제(21일) 판결했습니다.
또 입주자 대표에 대해서는 위자료 총 5백만 원 가운데 4백만 원을 관리업체와 공동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 "노동청 진정 괘씸하다며 보복성 인사…입주자 대표, 적극 조장"
재판부는 A 씨 등이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한 것이 괘씸하다면서,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관리업체에 "두 사람에게 대기발령 또는 전배(전환 배치)발령을 내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관리업체는 결국 A 씨 등을 용역 계약이 체결된 다른 아파트 안내원으로 전환 배치해 발령하기로 하되, 공석이 날 때까지 대기발령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입주자 대표가 요구한 불이익한 인사 처분을 관리업체가 그대로 받아 들인 뒤, A 씨 등에게 상당한 불이익을 가하는 대기발령과 전배발령을 협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통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A 씨 등이 항의하자 기존 방침을 관철시키려 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이같은 조치가 노동청 진정에 대한 "보복적 조치"로 이루어진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입주자 대표 역시 관리업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서, A 씨 등에 대한 보복 조치를 적극 조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관여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관리업체와 입주자 대표가 불이익한 처우로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격권을 침해했고, 이로 인해 A 씨 등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면서 이에 대한 배상으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총 위자료 금액 5백만 원 중 4백만 원은 입주자 대표가 관리업체와 함께 부담하라고 했는데, 이는 입주자 대표가 아파트 안내원들에 대한 형식적 사용자는 아닐지라도 사실상 '진짜' 사용자였다고 보고 책임을 지운 것으로 풀이됩니다.
■ "휴게 시간 아니라 근로 시간이었다…안 준 임금 줘야"
안내원들이 노동청에 제기했던 임금 체불 사실 역시 인정됐습니다.
재판부는 A 씨 등이 휴게 시간에도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다며, 회사가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아파트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던 A 씨 등의 주 업무는, 입주민을 응대하고 아파트 공동 출입문을 통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안내 방송, 입주민 세대 방문·민원 해결, 배달물 수거, 주차장 민원 확인, CCTV 판독, 정수기 점검 등 각종 부가 업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 등이 휴게 시간을 이용해 이런 부가 업무를 수행해야 했고, 심지어 휴게실에서 쉴 때조차 아파트 지하 각층 주차장 민원 확인 업무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휴게실이 아파트 지하 4층 주차장 공동출입문 옆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A 씨 등에게 주어졌던 휴게 시간은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실근로시간에 포함된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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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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