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기들] ① 세상 빛 보자마자 차디찬 냉장고에 갇혔다
지난 8년간 '출생 미신고 아동' 2천123명 전수조사…12% 가까운 249명 사망
[※ 편집자 주 =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2015~2022년 병원에서의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아동이 2천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중 1%인 23명을 추려 아기의 생사를 확인해 봤는데, 이른바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이후 표본이 아니라 전수 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실제 조사해 보니 곳곳에 감춰져 있던 아동 살해·학대치사 사건이 하나 둘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눈 감고 있던 불편한 진실도 마주하게 됐습니다. 신생아를 불법 입양 보내거나 매매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던 것입니다. 연합뉴스는 수원 사건 보도 한 달을 맞아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 조사부터 '출생통보제' 도입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남은 과제에 대해 짚어보는 기획 기사 3편을 송고합니다.]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2천123명.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동'의 숫자다.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 과정에서 이처럼 다수의 아동이 우리 사회의 보호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 표본에 대한 현장 조사가 이뤄졌다.
그 현장 조사에서 온 국민에게 충격을 안긴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먼저 드러났다.
출생 직후 집안 냉장고에 시신 유기된 아기들
이 사건 피의자인 30대 여성 A씨는 2018년 11월 3일 병원에서 딸을 출산하고, 이튿날 퇴원해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목 졸라 살해했다.
그는 딸의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집 안 냉장고에 유기했다.
이로부터 꼭 1년 뒤인 2019년 11월 19일. A씨는 이번에는 병원에서 아들을 낳고, 다음날 퇴원해 아기를 안고 귀가하던 길에 또 목 졸라 살해했다.
그는 아들의 시신 역시 같은 방법으로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
결국 A씨의 범행으로 인해 두 아기는 세상의 빛도 제대로 보기 전에 친모의 손에 목숨을 잃고, 차갑고 어두운 냉동고에서 각각 4년 7개월, 3년 7개월간 유기돼 있어야 했다.
이번 사건은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경기 수원시의 현장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게 됐다.
수원시 측이 가정 방문을 했지만, A씨는 출산 사실 자체를 부인했고, 경찰로 수사 의뢰가 들어간 것이다.
경찰은 지난달 21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 중 A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냉장고 안에서 영아 시신 2구를 수습했다.
A씨는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 나이 어린 3명의 자녀를 두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또다시 출산하게 되자 범행했다고 실토했다.
과거 한 차례 낙태 경험이 있는 A씨는 임신중절술도 알아봤지만, 수백만원의 비용이 부담돼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A씨의 남편은 자녀 살해 및 유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져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이다.
전수 조사 필요성 대두…'지옥문' 열렸다
수원 사건을 계기로 표본 조사가 아닌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실제로 조사에 착수하자 갓 태어난 아기를 살해하거나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유기한 닮은꼴 사건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2015년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기를 친부와 외할머니가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용인 영아 살인', 2019년 병원에서 홀로 출산한 아기를 퇴원 길에 살해하고 하천에 유기한 '대전 영아 살인', 생후 5일 된 아기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거제 영아 살인'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복지부는 지난 18일 출생 미신고 아동 2천123명의 아동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생존 1천25명, 사망 249명, 의료기관 오류 35명이며, 나머지 814명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수사 대상자 중 절반 이상인 494명(60.7%)은 범죄 연루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유형별로는 보호자 연락 두절·방문 거부 232명, 출생신고 전 입양 89명, 출산 사실 부인 72명, 아동 소재 파악 불가 등 기타 101명이었다.
이들 역시 수원 사건 초기 현장 조사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동의 생사가 파악되지 않고 있어 강력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례가 없던 케이스…긴급체포 불승인 결정도
전수 조사의 단초가 된 수원 사건에서 경찰이 피의자 A씨를 영아살해 혐의로 구속하자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형 감경 사유가 있는 법령을 적용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경찰은 A씨가 출산 후 만 하루 이상이 지나 제3의 장소로 이동해 범행한 점, 아기 양육을 포기한 채 살해를 결심할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어렵지 않았던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2년 연속으로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점 등을 고려해 혐의를 일반 살인죄로 변경했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여 지난 18일 A씨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조사가 본격화하면서 뒤늦게 드러난 사건 수사 과정에서는 경찰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를 붙잡아 유치장에 가뒀다가 뒤늦게 석방하는 일도 있었다.
경찰은 2015년 9월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출산해 키우다가 아기가 사망하자 시신을 유기한 혐의(사체유기)로 50대 여성 B씨를 지난달 30일 긴급체포했다.
그러나 사체유기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이미 시효가 끝난 상태였다.
결국 처벌 자체가 불가능한 범죄 혐의로 인신을 구속당했던 B씨는 경찰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검찰의 긴급체포 불승인 결정에 따라 지난 1일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경찰이 면밀한 법리 검토 없이 사안의 중대성만을 이유로 피의자 신병을 확보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 사건 이후 적발한 '부산 영아 암매장' 사건 등에서 경찰은 섣불리 피의자를 체포하지 않고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기도 했다.
아울러 피의자로부터 "아기를 살해했다", "아기가 죽어서 야산에 묻어줬다"는 등의 진술은 받았지만, 시신 매장 시점이 한참 지나 사체를 찾을 수 없는 사례가 잇달아 나왔다.
이 때문에 경찰은 살인 혹은 사체유기 사건에서의 핵심 증거인 시신을 확보하지 못한 채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수사를 마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했다.
유례가 없던 사안이다 보니 수사 과정 역시 매끄럽지 않았다는 말이 수사기관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배경이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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