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제보] 아는 건 닉네임뿐…밤낮 인터넷 뒤져 도둑 잡았다
경찰, 범인 불구속 입건해 검찰 송치
"법이 너무 약해 미성년 범죄 양산"
(서울·인천=연합뉴스) 김대호 김상연 기자 = 중고 거래에서 거액의 사기를 당한 20대가 닉네임의 단서 하나만을 가지고 인터넷을 뒤져 범인을 잡고 물건을 찾아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범인이 미성년자로 처벌 수위가 낮을 것으로 예상돼 범인을 찾느라 생고생을 한 피해자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2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에 사는 A(28)씨는 중고 거래 사이트 당근마켓에서 1천500만원짜리 롤렉스 시계를 B(18)씨에게 팔기로 하고 지난 2월 27일 오후 9시 그를 자기 집 근처에서 만났다. 그러나 B씨는 잠시 물건을 보자며 롤렉스 시계를 건네받더니 바로 달아나 버렸다. 슬리퍼를 신고 나온 A씨는 절도를 작정하고 나온 B를 따라잡지 못했다.
A씨가 B씨에 대해 아는 것은 당근마켓 닉네임 하나뿐이어서 경찰도 범인을 잡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A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A씨는 B씨의 닉네임에 집중해 당근마켓을 샅샅이 뒤졌고 그가 명품 신발을 판매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번호까지 게시해놓은 것을 알아냈다. A씨는 더 나아가 인터넷 사기 피해자들이 범인들의 휴대전화 번호와 계좌번호를 공유하는 더치트라는 사이트에서 자신과 비슷한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B씨의 사진과 거주지 등 기본 정보를 파악했다. A씨는 여기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소셜미디어(SNS)에서 B씨와 같은 얼굴과 이름을 찾아 그가 범인임을 확신하게 됐다. A씨가 이렇게 B씨에 대한 정보를 모두 파악해내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A씨는 이들 정보를 지난 2월 28일 모두 경찰에 전달했고, 더 이상 도망갈 구멍이 없다고 판단한 B씨는 바로 자수했다. 하지만 B씨는 자수한 데다 미성년자여서 다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게 됐으며, 미성년자라 처벌도 약할 수 있다고 경찰이 얘기했다. A씨는 너무 화가 나 B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시계를 이미 헐값에 팔아넘겼고 그 돈을 다 썼다는 대답을 들었다. B씨는 시계를 누구에게 팔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A씨는 이에 3월 2일부터 다시 자신의 시계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먼저 시계를 거래하고 감정하는 곳들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시계가 매물로 나왔는지 문의한 데 이어 모든 중고 거래 사이트를 계속 검색했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자신의 제품이 매물로 나온 것을 알게 됐다. 즉시 부산으로 내려가 경찰과 함께 시계 매도자를 만났다. B씨가 들고 튄 시계는 처음 500만원에 판매된 후 다시 800만원에 현 주인에게 도달했으며, 이 주인은 1천만원에 물건을 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A씨는 현행법상 시계를 그냥 돌려받을 수 없었고 현 주인이 매입할 때 지불한 800만원을 주어야 했다. A씨는 일단 서울로 돌아왔으며 이런 내용들을 모두 정리해 지난 3월 4일 추가로 경찰에 전달했다.
A씨가 도둑을 잡는 데 하루, 시계를 찾는데 사흘이 걸린 것이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최근 A씨의 조사 내용들을 확인하고 B씨를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물건을 판매한 이후로도 1∼2차례 더 거래가 이뤄진 걸로 알고 있다"며 "장물을 추적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시계를 찾았으나 현재 주인이 범죄와 관련 없는 '선의 취득'을 해서 압수가 어려웠다"며 "B씨가 피해 보상을 받으려면 민사 소송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허술한 법체계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범인이 실형도 안 받고 나만 혼자 손해를 보게 됐다. 이게 대한민국 피해자의 현실이다. 절도 당한 게 죄다. 초범에 미성년자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고 부추기는 꼴이다. 법이 너무 약하니 미성년자 범행이 유행하는 거 아닌가. 피해자가 아무런 보호를 못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주장했다.
dae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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