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건강] "좌식시간 세계 최장 한국인…신체활동은 선택 아닌 필수"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한국인의 좌식 시간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긴 편에 속한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국내 19세 이상 성인의 절반이 넘는 54.2%가 하루 중 7시간 이상을 앉아서 지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전 세계 비교 대상 62개국의 평균치(4.7시간)를 약 2시간 이상 넘어서는 수치다.
이처럼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는 건 신체 활동이 그만큼 부족하고, 이는 곧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업무 특성상 앉아있는 시간을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질병의 예방은 물론, 이미 발생한 질환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신체 활동을 더 늘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연세대 보건의료연구소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BMC 공중보건'(BMC Public Health)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좌식 시간이 길고 신체 활동이 적은 여성일수록 만성콩팥병 위험이 높아지는 연관성이 관찰됐다.
만성콩팥병은 3개월 넘게 콩팥의 손상이 지속되거나,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심해지면 투석 치료와 이식이 필요할 수 있는 만성질환으로, 평소 신체 활동과의 연관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성인의 만성콩팥병(중등도 이상) 유병률은 2021년 기준으로 8.4% 정도다.
연구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 참여자 중 콩팥 질환이 없었던 9천534명을 대상으로 하루 중 좌식 시간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눠 만성콩팥병 발병률을 추적 관찰했다.
이 결과 하루 좌식 시간이 12시간 이상으로 가장 긴 여성의 만성콩팥병 발병 위험은 6시간 이하로 가장 짧은 여성보다 65%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남성에서는 이런 통계적인 유의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좌식 시간과 만성콩팥병의 연관성은 경희대 의대 연구팀이 노인의학 분야 국제학술지(Journal of cachexia, sarcopenia and muscle)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연구팀은 40~60대 7천988명을 좌식 시간별로 3개 그룹으로 나눠 사구체여과율 변화를 관찰됐다. 사구체는 콩팥에서 소변을 거르는 최소 단위로, 사구체 여과율은 1분에 소변을 얼마나 거르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사구체 여과율이 60mL/min/1.73㎡ 이하인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하면 만성콩팥병으로 진단한다.
이 결과 하루 중 좌식 시간이 6시간 이상으로 긴 사람의 경우 3시간 미만인 사람에 견줘 만성콩팥병 발병 위험이 최대 19%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팀은 앉아서 생활하는 동안 근육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됨으로써 총혈액량과 혈류 순환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혈류 저항으로 인한 혈관 내피 손상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이런 좌식 생활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신장이나 혈관 구조의 문제로 인해 만성콩팥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방암을 극복한 생존자들이 일반인보다 좌식 시간이 짧은 특징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보건'(Healthcare) 최신호에서 50세 이상 여성 1만73명을 3개 그룹(유방암 생존자, 기타 암 생존자, 암 병력 없는 일반인)으로 좌식 행동과 유방암의 연관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 유방암 생존자의 하루 중 평균 좌식 시간은 6.8시간으로 다른 암 생존자(7.9시간)와 암 병력이 없는 여성(7.6시간)보다 훨씬 짧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유방암 생존자들이 좌식 시간을 줄이는 대신 암 극복을 위해 활발한 신체활동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3.6%로 1993~1995년 77.3%보다 14.3% 증가했다
연구팀은 "앉아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 자체가 유방암 환자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다만, 아직도 유방암 환자의 48.3%는 하루 7시간 이상을 앉은 채로 보내고 있어 좌식 시간을 줄이기 위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좌식 시간을 줄이고 신체활동을 꾸준히 하면 심뇌혈관질환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이순영 교수팀은 국제학술지 '역학과 건강'(Epidemiology and Health) 최근호에서 2009~2018년 한국의료패널조사에 참여한 19세 이상 성인 6천828명을 대상으로 하루 평균 좌식 시간 및 신체활동과 심뇌혈관질환 누적 발생률을 분석한 결과 이런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는 좌식 시간이 길더라도 주 2~3일 이상 신체활동을 꾸준히 실천하면 신체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그룹에 견줘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최대 50%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국내 성인의 약 75%에서 좌식 시간이 증가했으며, 약 10%는 지속해서 신체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연구팀의 지적이다.
이순영 교수는 "재택, 원격근무, 스마트기기의 발달 등으로 성인의 좌식 시간이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신체활동은 감소하고 있어 신체활동을 높이기 위한 개인과 국가 차원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개인의 신체활동 습관은 바꾸기 어려운 만큼 힘이 들더라도 되도록 젊은 시기에 좌식 시간을 줄이고, 신체활동을 늘리는 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만약 좌식 시간을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약간 숨이 찰 정도 이상의 신체활동을 매일 20~30분 정도 규칙적으로 실천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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