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마지막일지 모를…'어떤 화가'와의 인터뷰
성산일출봉과 설악, 파리·런던·로마 등 '길 위에서 그리다' 50년 여정 마무리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죽음'을 목전에 둔 한 화가가 있다.
홀쭉해진 얼굴과 앙상한 팔·다리, 그와 다르게 복수가 차 불룩하게 나온 배를 품은 그가 전시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도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에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김철우(68) 작가를 지난 17일 그의 마지막 전시회가 열렸던 서울 종로구 갤러리H에서 만났다.
올해 봄, 가족과 함께 떠났던 베트남 여행이 자신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지난해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완치 소식을 들었던 그. 그러나 완치 소식과 다르게 배가 계속해서 불러와 다시 병원에 가니 복막과 간, 최장, 담도까지 암세포가 퍼져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시한부 삶은 그렇게 시작했다. 항암을 포기한 그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은 길어야 6개월, 장례식 대신 전시회를 택하며 '죽음' 앞에 선 그에게 '이야기 자화상'을 부탁했다.
"무엇이든, 아무거나 다 물어보세요 하하"라고 호탕하게 웃던 그와의 일문일답을 아래에 싣는다. 생에 마지막 인터뷰가 될지 모르는 만큼 편집은 최소화했다.
-언제부터 미술을 했나요,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특별활동에 미술부가 있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집안에 화가도 계셨어요. 내가 그림을 그리면 화가셨던 우리 이모한테 보여줬어요. 이모가 주제도 내주고 그랬어요. 선생님 같은 분이셨죠. 이모는 수유여중 교사셨는데, 우리 어머니한테 '얘는 미술 시켜도 될 거 같다'고 하셨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전부 미술부였어요. 처음 그림을 좋아한다는 걸 안 건 초등학교 2~3학년때쯤이었어요. 상이란게 사람을 격려하잖아요. 미술대회 나가면 상도 받고 그랬죠. 그때는 그게 되게 큰 상인줄 알았죠 하하. 고등학교 가면서 경희대, 수도사대 등에서 주최한 실기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미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시절 조용한 학생이었나요? ▶그냥 보통이었어요. 그림도 그리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랬죠. 하지만 그림 그리는 걸 특히 좋아했어요.
-수업 시간에 몰래 그림도 그리고 그러셨겠어요.
▶그런거 많이 했죠 하하.
-친구들도 그려주고요?
▶그럼요. 그런 것도 많이 했지요.
-어떻게 보면 예술가 집안이었네요.
▶외가쪽은 현직에 계신 화가들도 있었고, 친가쪽은 신학이나 음악 쪽에 계셨어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북분들인데 그당시 일본 유학을 다녀오셨고요. 할머니는 영문학, 할아버지는 바이올린을 하셨죠. 예술적인 요소가 집안에 있었어요. 그게 아마 저한테 은근히 스며들었겠죠. 할아버지께서는 바이올린을 켜시고 그랬어요. 글씨도 쓰셨는데 방에 가면 묵향이 났어요. 그런거 듣고 맡으면 너무 좋았어요.
-미대에 가셨어요. ▶그때 추계예대가 생겼어요. 초창기에 그 학교에 실기가 좋은 학생이 많이 왔어요. 현직에서 그림 그리던 작가들도 공부하러 왔지요.
-대학에서 그린 첫 작품 기억하시나요?
▶그런 건 기억이 안 나요.
-그때도 풍경을 그리셨나요? ▶그때는 교수를 비롯해 대부분 화가들이 추상 일변도였어요. 그런데 돌아가신 지 2주 되셨는데, 조용익 교수님이란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박서보, 하종현 선생하고 모노크롬(단색화) 한창 하시고, 앙포르멜 운동하실 때 같이 했던 멤버였어요. 그런데 추상을 하신 그분이 항상 스케치 도구를 챙겨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랬어요. 제가 다녔던 추계예대가 그런 점이 좋았어요. 3박4일간 전교생이 어느 지역에 가서 풍경을 보고 그리고, 구상과 추상 경계 없이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게 해줬어요. 교수님은 정년퇴직하시고 저랑 같이 그림 그리러 많이 돌아다니셨죠. 그 선생님이 2주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분이 제 실질적인 은사십니다.
-조용익 교수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아주 고집불통이었어요. 하하하. 자린고비셨는데 어디 가면 회비를 걷잖아요? 한 사람 앞에 '5만원' 이야기하는데, 그 분은 회비를 안 내요. 고스톱 쳐서 따가지고 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거죠. 그 양반, 나중에 여러 송사에 휘말리고 그랬는데 그래도 가실 때는 편하게 가셨겠죠.
-대학원 졸업하고는 바로 작가 활동을 하셨나요? ▶미대 졸업하면은 갈 곳이 뭐 있겠어요. 선생님 아니면 시간강사죠. 난 시간강사를 오래 했어요. 19년 했나 그래요. 시간강사 오래 하는 건 전임 되려고 하는 건데, 전임을 못 하는 상황에서 생계는 유지해야 했죠. 그래서 화실을 했어요. 화실을 오래 했어요. 아현동에서 시작해 압구정동에서 했어요. 아프기 전까지는 성북동에서 아주머니들 상대로 했고요.
-이 전시도 미술학원 제자들이 열어주신 거라고요.
▶그때는 서울대, 홍대, 이대 이런 데 많이 보냈죠. 요새 얘기로 '웨이팅'이 있었어요.
-미술계의 '1타강사'셨네요.
▶그런 셈이죠 하하. 화실에서 붓을 놓지 않았어요. 화실하면 붓 놓기가 쉬운데 저는 놓지 않았었죠.
-어떤 스승이셨나요? ▶애들한테 물어보면 맨날 잤다고 그래요. 소파에서 코골면서 자고 그랬대요. 나는 가르치는 스타일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입시생은 조급하잖아요. 한 단계씩 터득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이걸 이겨내는 학생은 좋은 학교를 갔죠.
-사모님한테 들으니 미술학원 하실 때 남학생은 술도 잘 사주고 했는데, 여학생은 그러지 않아서 섭섭하단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통금이 있었잖아요. 통금이 있으면 화실에서 밤 10시에 끝나요. '야 가자' 그러면 이대 앞 잡탕집을 맨날 가요. 금새 밤 12시가 되죠. 그럼 어떡해요. 사내놈들은 새벽 4시까지 마시자 하는거죠. 그런데 여학생들은 그런게 어려우니까. 제가 술을 좋아했어요 하하.
-주량이 어느 정도셨어요? ▶그때는 소주 4~5병 마셨죠. 담배는 1년반 피우다가 끊고요. 산에 다니다 보니 호흡에 안 좋아서 끊었죠. 아무튼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첫사랑은 언제세요? ▶집사람이 첫사랑이에요.
-언제, 어떻게 만나셨어요? ▶몇년도인지는 모르겠는데 꽤 오래됐어요. 대학교 때였어요. 학교는 다른데 전공이 같아요. 미술. 저 사람은 부산이고 난 서울에 있었고. 전공이 같다보니 어떻게 만나게 됐어요.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죠. 그러고는 술 마시다가 혼자 '부산 가야지' 하고 부산가고 그랬어요. 어느날 밤, 그 사람 만나러요. 막차가 서울역에서 밤 11시쯤 있었는데, 그거 타고 그냥 부산에 갔어요. 친구하고 같이 간 적도 한 번 있고요. 가서 내리면 새벽 5시쯤 돼요. 사우나 갔다가 꽃단장도 좀 하고 그러고 만나서 같이 얘기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요. 여기 걸린 그림 중에 '서울역' 그린게 있어요. 그게 내 연애편지에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니까 화가들은 그거 막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쓰고 그런거요. 연애 6~7년 했어요.
-결혼은요? ▶그렇게 만나다가 1984년에 결혼을 했죠.
-여행은 언제부터 다니셨어요? ▶짬나는 대로 다녔어요. 계획이 없어요. 비행기도 검색하다가 싼 거 나오면 잡아서 가고 그랬어요. 숙소도 그렇고요. 그래서 나는 마일리지가 없어요. 맨날 경유하고 그래서요.
-우리나라는 거의 다 가보신거예요?
▶많이 갔는데, 전라도는 많이 못 갔어요. 전라도가 좋더라고요 공장도 없고. 속으로 '개발하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해요. 우리 때는 신혼여행으로 제주도 많이 갔는데, 그때만 해도 테마파크 그런게 없었어요. 그래서 나름 제주도가 참 보물같은 곳이구나 했는데, 1년 후에 가면 달라지고, 또 1년 후에 가면 달라지고 그랬어요. 무엇이든 컨트롤하는 사람이 전체를 보고 해야 하는데, 우후죽순으로 하고 그러니 많이 망가진거 같습니다.
-성산일출봉을 많이 그리셨어요. ▶제가 제주도 가면 항상 거기를 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인데, 아주 잘 생겼어요. 자연도 조금 어리버리한 게 있는데, 성산일출봉은 거의 완벽해요. 제가 바다에 나가서만 못그리고 이쪽저쪽 다 그려봤어요. 진짜 완벽해요. 제주도에서는 성산일출봉이 제일 잘생긴거 같아요.
-성산일출봉을 작품으로 남긴 건 몇 점이나 되나요?
▶셀 수 없습니다. 엄청 많이 그렸어요.
-설악산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설악도 '조화롭다' 이런 곳이에요. 참 좋죠 설악. 묘-한 곳이기도 하고요. 잘 생겼어요.
-수채화를 그리셨는데요. 캔버스에 수채화를 그리기가 쉽지 않은데요. ▶화가들이 많이 와서 물어봐요. 그림에서는 밑칠이 중요해요. 여러 방법으로 하는데, 캔버스는 수채물감을 뱉어요. 그래서 막을 만들어야 해요. 수채물감이 먹을 수 있도록. 10번 이상 밑칠을 해요. 바인드, 본드 종료를 섞어서 안료를 만드는데 농도를 맞추고 건조도 잘 시켜야 해요. 그걸 20번 정도 칠해요. 그렇게 밑칠을 한 다음에 거기다가 붓을 대면, 마치 첫 눈 왔을 때 첫 발자국처럼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농도나 두께가 안 맞으면 바로 거부하죠. 교감이 중요해요.
-호흡이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그림을 외관만 보시는 경향이 있는데 그 안에 그림의 깊이가 생기려면 그런 작업을 해야 해요.
-칠하고 말리고 칠하고 말리고,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요? ▶한 작품 완성하는 데 대략 두 세 달 걸려요. 다 그리고 난 뒤에는 바니시 처리를 해요. 그래서 물이 떨어져도 번지지 않아요.
-왜 수채화를 택하셨나요? ▶가벼움 때문에 그랬을 거에요. 수채화는 가볍지만, 그 가벼운 걸 가지고 어떻게 하면 보는 사람이 가볍게 보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했던거 같아요. 역으로요. 화랑도 수채화는 별로 안 좋아해요. 그림값이 안 되니까. 그게 쉽고 가볍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수채화는 기술이 없으면 못 그리는 그림이에요. 수채화 그리는 작가는 테크니션이 되어야 해요.
-초반에는 굵은 추상도 하셨더라고요. ▶추상은 우리가 젊을 때 안토니 타피에스라고 스페인 작가 열풍이 불었어요. 그러니까 타피에스 그림은 보기만 해도 좋잖아요. 그때 그런 아류의 그림들이 많이 튀어나왔어요. 제게도 영향을 줬는데, 매일 그리면 뭐하나요. 남의 것을 흉내내는 것인데요. 그리고 홍대 대학원을 갔는데 다 모노크롬이에요. 맨날 긁어내고 그러는 거에요. 이런게 잘 안 맞았어요. 남의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니까 '이게 내 그림인가'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거에요. 그래서 내 것을 찾았고 그게 수채화인거죠. 젊을 때는 반짝거리고 확 올라오고 화려하고 이런 걸 좋아하잖아요. 언젠가 지인 집에 갔더니 오래 됐지만 가구에서부터 문짝서부터 집안 소품 하나하나 사람 손떼가 안 묻은 게 없더라고요. 그런걸 제가 참 좋아해요.
-파리, 런던, 로마 등 유럽에 많이 가셔서 그림 그리셨더라고요. ▶건물들이 색다르잖아요. 걔네들은 질서가 없는 거 같은데 질서가 있잖아요. 그리고 합리적이고.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어느 나라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터키가 기억에 남아요. 터키 사람들이 따뜻하더라고요. 전 물가 비싼 곳하고는 맞지 않아요. 하하. 물가 비싼 곳 가면 숙박이나 비행기표를 싼 거로 하고 그랬어요. 보통 가면 한 달정도 머물렀어요. 가면 맨날 그림 그리는 게 아니라 아이스크림도 빨아 먹고, 걷고, 앉아서 놀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휴 괜찮다' 싶으면 그림을 그렸죠.
-유럽을 그린 수채화를 보면 제가 본 유럽인들이 그린 수채화보다 더 유럽을 잘 표현하신 거 같아요. ▶수채화는 영국에서 발달했어요. 언젠가 영국에 갔을 때 왕립아카데미 회원들이 수채화 전시를 하더라고요. 가서 보니 '어후, 수준이 장난 아니구나' 느꼈어요. 우리나라는 약간 취미생들이 많은 데 영국은 전문적으로 하는 작가가 많더라고요. 물감도 영국제를 많이 씁니다.
-해외 가시면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둘러보세요? ▶그럼요.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미술관, 박물관이에요.
-그럼 어떤 작가 제일 좋아하세요? ▶저는 겸재를 정말 좋아해요.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전국을 사생하고 자기 스타일로 표현하고 그랬을 수 있었는지. 겸재 그림을 많이 봤어요.
-가장 최근작은 명동성당을 그린 작품인가요? ▶올해 봄에 황사 달려들 때 그린거에요. 최근에는 베트남 다낭을 식구들하고 갔는데 거기 호이안에 가서 본 노란 노을이 인상 깊어요. 그게 마지막 그림 같아요. 치료차 양평 용문에 있는데 그림 그리려고 해도 의사가 그리지 말라고 해서 못 그리고 있어요.
-지금도 그리고 싶으세요? ▶그럼요. 내 계획이 원래 이탈리아 가는 거였어요. 이탈리아 북쪽에 돌로미티라고 있어요. 거기서 몇달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림도 그리고, 아주 진땡이죠.
-'길 위에서 그리다' 지금까지 전시명이 다 같았어요. 본질에 충실한 제목인데요.(12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이 마지막 13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길 위에서 그리다! 그리고, 멈추다'이다) ▶길이라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잖아요.
-50년 화가 인생을 돌아봤을 때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떤게 있을까요? ▶나는 뭐 신나게 살았죠. 신나게 후회없이.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평생 고생을 해본 것도 아니고 긍정 마인드가 부정 마인드보다 높은 사람이라. 인생이라는 건 끝날 때 되면 뒤돌아 보잖아요. 뒤돌아 보는데 뒤돌아 보는 것은 자화상을 만들기 위해 걸어왔던 궤적이거든요. '나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는 궤적을 만들었으니까 '나는 잘 살았다' 그런 거죠.
-다시 태어나도 화가하실 거에요? ▶모르지요 뭐 하하. 화가가 창작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많아요. 막 노는거 같지만 항상 머릿속에는 그림에 대한 고민, 작품에 대한 고민 이런 걸 하거든요. 스트레스 없이 살지 않을 순 없지만. '아, 잘 살았다' 싶어요. 이번에 전시 열 때 보니까 혼자 산게 아니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나를 지켜줬고 쳐다봐줬고 그런 것의 집합체더라고요. 나는 잘 살았어요. 후회없이.
-두렵지 않으세요? ▶아, 난 두렵지 않아요. 난 평소에도 그랬어요. 술 먹다가 친구들한테 '야, 암이 제일 좋은거여~' 하하. 암에 걸리면 시간이 정해지잖아요. 두렵지 않아요. 이런 소리 까불면서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요. 잘 살았어요. 내가 이제 마지막 이제 이 세상하고 고할 때 제일 걱정되는 게 와이프, 아들…저거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김철우는 여기서 감정에 북받쳤다.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 속에 눈물이 고였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의 감정이 동요된 건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대사'를 이렇게 남겼다.
"저는 자연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릴 수록 자연과 점점 교감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어떤 날은 내가 붓을 잡는 게 아니라 누가 내 손을 잡고 붓을 쥐게 하고 그리는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교감이 참 중요해요. 지금 한창 교감을 느낄 때인데 이제 그렇지 못하게 됐네요. 이상입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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