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라도 더" 산악구조에 미친 남자…독학으로 전파 연구까지
"산악구조용 앱 전북소방에 무료 제공하고 싶어"
(전주=뉴스1) 임충식 이지선 기자 =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높고 험준한 산을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오르는 이가 있다. 대한산악구조협회 이사로 활동 중인 최종찬씨(48)다.
최씨가 오르는 길은 등산객들의 발길로 매끈하게 다져진 산책로가 아닐 때가 많다. 이동통신 기지국 철탑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헤매기도 하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흔적을 쫓아 수풀이 우거진 계곡 아래를 뒤지기도 한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 '빠르고 정확한 산악 구조'다. 경찰관도, 소방관도 아닌데 왜 이런 일에 매달리는 걸까.
빗방울이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던 7월의 어느 날 전주시 덕진구의 한 사무실에서 최종찬씨를 만났다. 그는 의약품 유통업체인 솔찬약품 대표이기도 하다.
사무실 한쪽에 있는 책꽂이는 감사장과 자격증, 상패로 가득했다. 모두 산악 구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놀란 표정을 지은 기자에게 최씨는 "매번 받는 건 아니고, 가끔 이렇게 주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최씨는 평상시엔 이 사무실에서 평범한 사업가로 일하지만, 산악 구조 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지체 없이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의 활약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마치 정체가 숨겨져 있는 슈퍼맨·스파이더맨 같은 영화 속 영웅의 모습이다.
영화와 다른 건 날아가는 대신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시간을 들여가야 한다는 점이다. 상황이 발생하면 최씨는 골든 타임 확보를 위해 최대한 빨리 구조 현장으로 달려간다. 거래처 사람들과 술자리 중에 전화를 받으면 택시를 잡아타고 산으로 향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산악 구조 이야기를 하자, 둥근 안경 너머로 보이는 최종찬씨의 눈빛이 반짝였다. 입이 마를 정도로 쉴 새 없이 산악구조 경험담이 쏟아졌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에서 산악구조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최씨는 왜 생업과 전혀 관계도 없는 이 일에 이토록 열정과 시간, 돈까지 쏟게 된 걸까.
최종찬씨는 15년째 활동 중인 민간 산악구조대원이다. 그가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건 아이러니하게도 119 소방관 시험에 탈락하면서다. 최씨는 소방관이 꿈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도전했던 소방관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결국 사람을 구하는 일을 취미 삼아서라도 하게 된 셈이다.
최씨는 어린 시절부터 산을 놀이터 삼아 놀았다고 전했다. 산을 좋아하는 최씨에게 산에서 사람을 구하는 산악 구조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일로 다가왔다.
민간 산악구조대원으로 한창 활동을 이어가던 2016년의 어느 겨울날. 전북 진안군 운장산에서 발생한 등산객 조난 사고는 최씨의 산악구조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당시 1400여명에 달하는 인력이 열흘 동안 운장산 곳곳을 뒤졌지만 끝내 조난자를 찾지 못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조난자가 콘크리트로 된 임도를 만났다면 그 길을 따라 내려왔을 것'이라는 이유로 수색 한계선을 임도로 결정지었다. 민간 구조대원 자격으로 전문가 회의에 참여했던 최씨도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수색이 실패로 돌아간 9개월 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등산객은 한계선으로 정했던 운장산 임도를 한참 벗어난 곳에서 백골 사체로 발견됐다.
최씨는 시신이 발견된 지점을 직접 찾아가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아무도 최씨를 탓하지 않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최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몇 번이고 조난자가 올랐던 길을 되짚으며 구조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산악 구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은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기지국 주변을 수색하는 것이다. 최씨는 이때 활용된 '이동통신 기지국 기록'이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당시 신호가 잡혔던 기지국과 실제 등산객이 발견된 위치는 무려 30㎞나 떨어진 곳이었다. 수신 기지국 활용 수색 매뉴얼이 기지국 반경 2㎞였기에 실제 위치가 수색 범위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씨는 전파 연구에 뛰어들었다. 법을 전공한 문과생인 최씨는 이런 기술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연구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정확한 위치 정보도 없이 기지국 철탑을 무작정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지국에서 맨눈으로 보이는 곳들을 수기로 기록했다. 그렇게 몇 년간 홀로 깨치게 된 건 이동통신 전파가 고도차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구조대상자의 위치가 7~8부 능선 등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다고 가정할 때, 멀리 있는 기지국까지는 신호가 뻗어나갈 수 있고, 반대로 기지국의 고도가 낮은 곳에 있으면 가까운 곳에 있더라도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씨는 혼자 하던 연구에 한계를 느끼고, 관련 기관을 찾아 나섰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솔빛시스템이 보유하고 있던 기술력은 최씨가 수년간 쌓아온 데이터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리고 결국 최근 기지국 수신 영역인 '커버리지' 분석을 활용해 요구조자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앱 개발에 성공했다.
실제 최씨는 이 방법으로 한밤중 모악산 8부 능선에서 조난된 고등학생 2명을 혼자 구해내기도 했다. 이때도 이동통신 신호를 수신한 기지국과 실제 이들의 조난 위치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매뉴얼 상 많은 인력을 동원해 기지국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소방과 달리 민간인인 최씨는 홀로 자신이 커버리지 분석을 통해 따로 정한 수색 범위 현장으로 향했고, 그의 분석은 맞아떨어졌다.
이외에도 수많은 구조 사례에서 커버리지 분석을 통한 조난 구조 방법의 적합성이 인증됐다. 그 효율성을 인정받아 현재 중앙소방학교에서 관련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사단법인 대한산악구조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종찬씨는 이 앱을 전북소방본부에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드러냈다.
최씨가 솔빛시스템과 함께 개발한 이 앱은 요구조자가 있을 법한 수색 범위를 정해줄 뿐 아니라, 수색 대원들이 움직인 경로까지 확인이 가능해 불필요한 인력 낭비를 막아준다는 점에서 효율성이 배가된다.
최종찬씨는 "산악구조 현장에 갈 때마다 며칠씩 고생하는 대원들을 옆에서 지켜봐 왔다"며 "이 프로그램이 산악 구조 현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꼭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료로라도 쓸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구조 사례를 통해 시스템의 효율성이 이미 입증됐지만 여전히 관계 법령에 묶여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많다"며 "골든 타임 안에 구조 대상자를 구할 수 있도록 기관별로 입수한 정보가 신속하게 공유되고, 현행되는 수색 매뉴얼도 효율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씨는 앞으로도 자신이 축적해 온 산악수색 시스템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훈련에도 매진할 계획이다. 아무도 시킨 적 없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최종찬씨는 "본업과 구조업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기 위해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있다"며 "누군가는 실속이 없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산악 구조 활동을 열심히 이어가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letswin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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